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
죽도록 뛰는 나의 위를 날고 있는 새(?)
나에겐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는 영어로 공부나 일을 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끊임없이 스스로의 능력을 의심하고 주기적으로 남편에게 하소연하며 버티는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내가 자리 잡은 후 나와 살기 시작한 조카는 나를 슈퍼우먼으로 규정짓고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모처럼 전문직으로 편안히(?) 좋은 조건으로 일하고 싶은데... 공부하는 것부터 따라가기 힘들다고 우는 소리를 하는 녀석을 보며 속으로는 '내가 흘린 눈물은 너의 10배가 넘어'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절망하며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 다독 그렸다. '이모도 힘들었지만 하다 보면 도착해'.... 10년이 지나 나보다 좋은 조건의 회계법인에서 당당한 전문가로 일하고 있는 조카를 보며 지금 누군가는 이 녀석을 보면서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저 사람은 쉽게 저 자리로 가서 편하게 일하는데 나는 왜 이리 힘들까라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쉽게 친해지 듯 대부분 친구들은 비슷한 길을 걸어온 이들이었다. 출신국과 피부색들은 다양했지만 대학 또는 대학원 과정으로 유학 와 공부, 일을 병행하며 살아남아 이젠 괜찮은 회사, 괜찮은 직책에 일을 하고 있지만 그들도 꽃길만 걸었던 것도 현재 완벽한 행복 안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공부와 일을 병행하고 돈을 모아 투자하며 시간이 될 때마다 부모님들을 뵙기 위해 고국으로 향한다.
몇몇은 내가 보기엔 천재지만 자신들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긴 중위권 대학에 일하면서 받아본 학생들의 신청서엔 수학 올림피아드가 마치 동네 학원 경진대회처럼 흔하게 이력에 적혀있었다. 마지막으로 일했던 나름 호주 최고의 대학에서는 말을 해 뭐 하겠나 ㅋㅋㅋ
펀딩신청을 하기 위해 보는 교수님들 이력서에는 하버드대가 동네 사랑방이었다. 재밌는 것은 그런 교수님들도 자신이 잘났다거나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 않는다는 것이다. 여전히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까지 공부하며 펀딩을 하나라도 더 챙기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학과에서 새로운 연구실을 만들며 초빙해 온 교수님이 계셨다. 예전에 본국에서 정부고위직으로 일하다가 정부지원 장학금으로 우리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미국에서 연구교수를 하다가 유럽을 한바뀌돌고 우리 학교로 초빙되신 분이었다. 나보다 어린 나이였지만 전공 박사학위뿐 아니라 엔지니어링과 변호사 자격까지 있어 전공과 관련된 정부 정책을 주로 연구하셨으며 새로운 연구실도 미래의 방향에 관한 것이었다.
교수님들의 연구 펀딩을 관리하다 보면 나에게 적대감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회계팀이 감사도 같이 하다 보니 이유 없이 불편해한다. 어떤 교수님들은 '내 펀딩인데 네가 왜 간섭하지'라고 짜증을 내기도 하고 리뷰를 하기 위한 미팅을 피하기도 한다. 하지만 학교이름을 배경으로 지원해 받은 펀딩들은 계약조건에 맞게 사용하고 관리하는 것이 대학의 의무이기에 우리 같은 연구기금 관리 회계사들이 학과마다 있었다.
그런데 이 교수님은 함께 일하기가 너무나 편했다. 호주 세법에 어느 정도 이해가 있어서 내가 요구하는 자료를 반항(?) 없이 넘겨주실 뿐 아니라 나에게서 필요한 도움은 명확하게 요청하였다. 내가 해줄 수 있는 한계와 자신이 해야 하는 부분을 잘 이해해 내가 다 안 해준다고 짜증을 내는 일도 없었다. 나보다 나이 많은 교수님이 자기는 이런 숫자는 관심도 없고 할 줄도 모른다며 울먹이는 경우까지 경험했던 나는 이 교수님의 펀딩을 관리하는 것이 참 즐거웠다.
내가 학교를 떠나고 곧 유럽으로 옮겨가신 그분의 소식은 링크드인에서 주기적으로 볼 수가 있다. 여전히 잘 나가시는데 정말 열심히 살고 계시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누구는 머리가 좋아서 또는 집이 부자라서 라는 말들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성공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노력을 폄하한다. 그런데 내가 본 그들은 정말 열심히 살고 있었다. 한 번쯤 우울이나 공황으로 상담을 받으면서도 감추기보다는 도움을 요청하면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었다.
하긴 남편의 출근시간은 7시였고 난 8시였다. 일하면서 헬스장은 최소 4일을 갔고 추가적인 교육이나 공부도 계속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엄청 성공했거나 부자인 것도 아니다. 그냥 적당히 욕심을 버리고 만족하고 살뿐이다. 나의 위를 날고 있는 새들이 부럽기는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날기 위해 노력했는지 알기에 시기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