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늙어간다는 것의 의미
처음 호주 정착 후 10여 년 동안은 살기 바빠 그다지 휴가를 즐기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한동안은 주로 호주 국내여행 위주로 다녔다. 하지만 자리를 잡고 여유가 생기고 나서는 매년 휴가는 한국에서 부모님과 지내기로 남편과 결정을 했었다.
당시 호주로 이민을 와서 같이 살다가 독립을 하신 남편의 부모님과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만나는 상황이라 일 년에 3~4주만이라도 한국 부모님과 보내는 것이 공정(?)할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라도 만나지 않는다면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가끔 동료들이 출근을 하지 않아 물어보면 고국에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갑자기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곤 했다. 연세가 들어가는 부모님이 언제까지 그 자리에 계시리라는 보장은 없는 거니까 기회가 있을 때 챙겨야 할 것 같은 이기적인 내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대구에서 살고 있는 지금은 매년 한 달은 프랑스로 역이민 하신 남편의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온다.
매년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변화의 속도에 놀라곤 했다. 변화가 무진장 느린 호주에 비해 너무나 빠른 변화를 보이는 한국을 올 때마다 적응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호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한국에서는 앱을 이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당시 한국 전화번호가 없던 우리는 카카오 택시를 부를 수도 없고 버스 타는 것도 힘들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변화가 항상 발전이나 편리를 의미하는 것일까? 그 변화에 적응을 못하거나 할 수 없는 이에게는 소외를 경험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외국인이었던 우리의 불편뿐만 아니라 그 변화에 적응을 못하는 나이 든 어른들은 점점 삶이 편리해지는 것이 아니라 복잡해질 뿐이다.
주말 동안 감기 기운이 있다는 엄마를 모시고 병원을 갈려고 부모님 댁에 가서 준비를 기다리다 아빠의 전화기를 살펴보았다. 근데 내가 계약해 드린 액수보다 더 많은 비용이 최근에 나가고 있어 전화해 봤더니 세상에 아빠가 지난 연말에 재계약을 했단다. 아니 인지장애로 오늘이 며칠인지 주기적으로 묻고 있는 아빠가 언제 대리점에 가서 재계약을 했다는 건지? 주중엔 노인복지관에 가시고 토요일엔 우리랑 한의원에 갔다가 점심 먹고 집으로, 일요일엔 집에만 계시는데...
결론은 노인복지관에 대리점 직원들이 봉사(?)의 일환으로 필름 교체나 핸드폰 청소를 해준다며 매년 방문해 계약만기가 되어가는 어르신들에게 재계약을 유도한 것이다. 물론 아빠는 자기가 재계약을 한 것도 전화기가 바뀐 것도 인지하지 못하신다. 전화기는 오직 가족들에게 오는 전화를 받는 용도로 사용하시며 내가 심어놓은 위치확인 앱으로 혹시나 길을 잃으시는 경우에 대비하고 있을 뿐이다.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대기하는 동안 통신사랑 복지센터에 항의를 했지만 이미 아빠가 해 놓은 사인 때문에 취소를 할 수가 없었다. 예전의 비용과 비슷한 서비스로 바꿨지만 이 옵션에는 데이터가 너무 적어 평소엔 데이터를 켜 놓을 수가 없어 위치 찾기 앱을 사용할 수가 없다.
바로 앞동에 살고 매일 한두 번은 방문하는 딸이 있는데도 이런 황당한 경우가 생기는 데 자식들이 없거나 멀리 사는 어르신들의 경우 얼마나 이런 일들이 자주 발생할까? 어떻게 정부에서 운영하는 센터에 개인업자들이 들어와 어르신들을 현혹(?)해 비용이 발생하게 되는 계약을 하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살던 멜버른의 옆집은 큰 땅에 세워진 낡고 오래된 집에 할머니 혼자만 살고 계셨다. 한동안 관리가 되지 않아 집과 잔디는 엉망이었는데 갑자기 젊은 사람들이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왜 이런 변화가 생기는지 궁금했는데 곧 집은 매매로 나왔고 소문에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바로 자식들이 집을 팔았다고 한다. 평소엔 아무도 방문을 않다가 돌아가시고 나니 뒷정리는 전광석 같았다.
대구에서 아빠의 원룸을 관리하며 아빠 또래의 세입자를 들인 적이 있다. 처음 만났을 때는 평범한 앞산에서 자주 보는 건강한 70대 정도로 생각했는데 막상 계약서를 보니 80이라서 놀라웠는데 노인 일자리로 일도 하시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시는 등 너무 건강하셨다. 방뿐 아니라 뒷마당까지 관리하시고 오히려 젊은 세입자들보다 더 깨끗이 사용하시기에 노인들을 세입자로 들이는 것을 꺼려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1년 정도 지나며 그 세입자는 뭔가 이상해져 있었다. 몸이 아프다고 했고 음식을 먹을 수가 없다고 하소연을 하시기에 자제분들과 연락을 하는지 물어보니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구청 복지과에 연락해 관리를 받으셨지만 점점 더 심해지셨다. 복지과에서 자제분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거절당했고 사촌조카사위가 유일하게 반응을 보였다.
하는 수없이 형부 한의원으로 모시고 가서 진단서를 받아 등급을 신청해 드렸고 다행히 2번째 시도에 등급을 받아 친구가 운영하는 주간보호센터에 보내드렸는데 한 달 만에 개인의 자유시간이 없다며 집에 오는 요양보호사를 원하셨다. 친구는 자신이 도와줄 이유가 없었지만 업계에서 평판이 좋은 센터에 연락해 요양보호사를 알선해 줬지만 자꾸 교체를 요구해 결국 포기하고 구청 복지과에 관리를 부탁드렸다.
결론적으로 6개월 만에 요양원으로 가시며 조카사위가 와서 방정리를 했다. 정말 황당한 것은 그 조카사위가 나를 의심하며 혹시나 내가 보증금을 제대로 내주지 않을지 걱정하며 왜 자신이 이 더운 날씨에 고생을 하며 방정리를 해야 하는지 나에게 짜증을 내는 것이었다.
난 무슨 죄로 구청에 연락하고 등급 받아 드리고 친구까지 동원해 도우려고 했는데 똥, 오줌 묻은 장판, 커튼에 대한 보상은 커녕 의심의 눈초리와 짜증을 받아야 했는지...
다양한 노인들의 마지막을 목도하며 자식이 있으나 없으나 그다지 차이가 없는 현실에 나 스스로 미리 나의 마지막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비싼 실버타운이 아닌, 그렇다고 싸구려 요양원도 아닌 그냥 중산층의 노인들이 독립된 집에 살며 식사와 청소 등을 도움받으며 살 수 있는 대안 거주시설을 찾고 있다.
호주에 있는 50+ 실버타운같이 타운하우스 전체가 50이 넘은 사람들만 구매가 가능하며 각자 독립된 집에 살면서 타운하우스 내에 관리실과 간호사가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이 생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