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공무원 생활을 은퇴하면서 아빠는 작은 원룸건물을 퇴직금과 대출로 구입해 생활비를 감당하셨다. 하지만 연세가 80이 넘어가며 건물 또한 낡아 생활비는 커녕 유지비도 힘들어하셔서 건물매매를 원하셨다. 그동안 집매매 후 아빠의 잘못된 선택, 주로 주식으로 돈을 날리는 것을 보아온 엄마의 반대로 부부싸움은 심화되고 호주로 까지 수시로 하소연이 날아왔다.
직장생활에 지쳐 은퇴를 준비하고 있던 우리 부부는 한국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도우며 살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20년 동안 대출이 줄지가 않고 오히려 늘어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대출이자는 7%로 가까워 들어오는 돈 반이 나가는 구조였다. 낡은 방들은 10년 전보다 월세가 2/3 가격으로 내려가 있었고 그마저도 잘 나가지 않고 있었다. 다행히 그 누구와도 상의를 거부해 왔던 아빠는 나에게는 관리를 100% 넘기고 신경을 끊으셨다.
나의 목표는 대출금과 부모님 생활비 확보였고 그러기 위해 남편과 함께 직접 퇴실한 방들의 청소와 수리를 했다. 다행히 저렴하고 깨끗한 방들로 부동산의 문의가 많아지면서 공실은 1주일을 넘기지 않게 되었다. 호사다마라 했나? 6개월 정도의 노력과 그 후 6개월 정도 좋은 시간이 지난 후 옆집에 빈집으로 남아있던 건물의 철거가 시작되었다.
주기적으로 원룸 근방으로 산책을 다니던 아빠는 철거를 위해 우리 건물 마당에 심어 놓은 옆집의 철기둥들과 담벼락 위를 다니는 공사장 인부들을 발견하고 쓰러지셨다. 전화를 받고 갔을 때 인부중 그 누구도 책임자를 알려주지 않았고 벽에 붙어있는 표지에서 시공사 전화번호를 발견하고 전화했지만 건축주의 연락처 제공을 거절했다.
하는 수 없이 기존 주소 건축물대장을 확인하고 건축주 외 공동 소유자(가족관계) 2인을 대상으로 내용증명을 보내고 나서야 며칠 뒤 시공사대표가 연락이 와서 이제는 시공계약을 했기에 자신이 이문제를 대리하여 처리할 수 있다며 만남을 요청하였다.
옆집공사 신축으로 인한 우리 건물 피해 원상회복에 관련하여 합의 동의서 내용을 협의하고 시공사 대표, 건축주 그리고 내 사인이 된 동의서를 나누어 가졌다. 나는 옆집 신축이 빨리 마칠 수 있도록 담벼락, 우리 건물 대문 제거, 마당 사용 허가 등 다양한 추가적인 배려를 해 주었다.
6~8개월이면 끝난다는 공사는 2년 7개월이 지난 지금도 진행이 되고 있으며 임대가 불가해진 1층의 방들 월세를 지불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연체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도중에 시공사 대표가 연락두절이 되거나 공사장 인부들이 우리 마당에서 건축자재 쓰레기를 버리는 등 문제들이 발생했고 태풍이 오는 날에는 가벽이 기울어지고 마당 배수관을 막아버려 주기적으로 마당의 물을 빼러 가야만 했다. 현재는 다가오는 겨울 동안 동파가 될까 봐 가스연결을 하고 주기적으로 빈방들 청소를 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뿐만 아니라 지하타공할 때는 우리 건물이 흔들렸으며 2 ~3층에 살고 있는 다른 세입자들의 항의와 그중 일부 세입자들은 퇴실하는 등으로 인해 빈방으로 있는 기간이 늘어나 막대한 경제적인 손실을 입고 있었다. 옆집방향으로 창이 있는 방들은 3층에서 5층으로 올라간 건물높이 때문에 햇볕이 전혀 안 들어오고 있어 세입자들의 퇴실이 더 잣아지고 있다. 단순 월세 감소만 문제가 아니라 빠져나간 보증금으로 인하여 대출을 늘려서 가족에게 빌리고 내 돈으로 일부 막고 있다.
동의서를 작성하기 전 구청에 민원을 넣었으나 당사자간의 합의를 권유만 할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고 현재 옆집의 건물은 마감이 되어가나 우리 건물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구청은 민사로 해결하라고 했다.
이렇듯 대구 정착한 이후로 예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아주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다. 2년 7개월 동안 모든 피해를 참아주고 있었지만 그쪽 건축주는 전혀 책임을 질 생각이 없는 모양이며 여전히 우리 집 마당은 파헤쳐져 있고 대문은 사라진 상태이다. 어쩔 수 없이 변호사를 선임함으로써 해결을 보려고 하는 지금도 이 문제가 해결될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 우선 변호사 선임료와 감정비등 법원 관련 비용들이 아빠 통장에 남아있지 않아 매년 생활비만 가져오는 우리의 호주통장에서 추가적인 돈을 가져와야 할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들과 울화들로 계속 밤에 잠도 못 자고 억울함에 미칠 것 같은 상태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한정되어 있고 그래서 화병이 나는 것 같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 체육센터에서 트랙을 달리면서 떠오르는 생각은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가는 방향이 중요하지.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달리다 보면 언젠가는 도착해 있지 않을까? 이 둥근 트랙처럼 달리다 보면 어쩌면 제자리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나의 건강이나 체력은 좋아지지 않을까.
그동안 내용증명, 합의서, 직접적인 항의, 민원, 국토부 분쟁조정요청 등 차근차근 한 단계 높여 이 분쟁을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법적인 강제성은 없는 결말이라 이제 민사소송을 시작해야 한다. 비용뿐만 아니라 세간에 떠돌던 이웃과의 소송 전이란 것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의 선택은 보이지 않는다.
건물 공사 전 구청에서 이웃들에게 편지를 보내 상황을 설명하고 이의가 있으면 제기하라고 미리 정리를 하는 호주에서 성인시절의 대부분을 살아온 나는 구청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답변과 강제성이 없는 분쟁조정만 가능하다는 국토부의 답변을 이해할 수가 없다.
한국이라는 곳, 대구라는 이곳은 내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통하지 않는 곳일 수도 있고... 또 그 상식이란 건 결국 내가 살아온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것일 뿐 세상은 다양하고 사람들 또한 너무나 다양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좀 더 마음의 안정을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