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의 일상

2021년 5월에 쓴 글

by SueB

FIRE! Financially Independent & Retired Early!


내가 50이 되는 해 같이 은퇴를 하기로 남편과 약속했기에 우선적으로 Long Service Leave를 이용해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11월 호주에서 한국으로 이사를 했다.


2주 격리 후 우리가 정착할 집을 구하고 있다가 보니 내가 다니던 대학교에서 희망퇴직 기회가 생겼다. 호주 직장에선 퇴직금이란 개념이 전혀 없지만 회사의 사정상 정규직 직원들을 줄여야 할 때 신청자들에게 조금의 위로금 형식의 돈을 지급한다.


어차피 휴가가 끝나면 사표를 낼 계획이었던 나는 너무나 좋은 이번기회를 놓칠 수 없어 바로 퇴직신청을 했고 나의 계획을 알고 있었던 상사는 축하해 주면서 신청을 받아들여 줬다. 남편은 공무원인 덕분(?)에 코로나로 힘든 이 시기에도 인원감축 계획은 없단다.... 아마 1년의 Long Service Leave가 끝나면 사표를 내야 할 것 같다.


부모님에게서 경제적 독립을 가장 먼저 선언했던 막내딸이 서울에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갑자기 호주로 떠나버린 것이 22년 전인데 이번엔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자기 손으로 그만두고 일자리도 없는 대구로 내려온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어 힘들어하셨다.


하지만 부모님은 같은 아파트에 정착해 필요할 때마다 남편을 대동해 나타나 다 처리해 주고 사라지는 딸이 근처에 살고 있어 너무 좋아하신다. 물론 우리가 어떻게 먹고사는지 걱정하는 말들을 하시지만 자식이 없는 덕분에 그동안 벌어둔 돈으로 사치만 않는 다면 죽을 때까지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다는 것을 믿기 힘드신 눈치이다. 자꾸만 남편이 한국에서 한국말도 못 하는데 직장도 없고 친구도 없는데 힘들어하지 않는지 물어보신다.


20대에서 40대까지 정말 열심히 나를 위해 살아왔다. 공부하고 일하고 아님 일하면서 공부하면서... 그 둘을 동시에 하고 있지 않는 기간엔 왠지 모를 불안에 걱정하며 하다못해 취미생활이라도 찾아 전투적으로 해야 했던 시간들...


아무리 열심히 해 학벌을 높여놔도, 회사에서 능력을 증명해 놔도 적당히 여유롭게 살아온 2-30대 호주인들이 쉽게 성취하는 진급이 나에겐 너무나 힘든 것이었다. 나보다 학벌도 낮고 능력이 없는 그들은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약한 나를 뛰어넘어 쉽게 쉽게 올라가 어느새 나의 매니저급으로 가 있었고 결국 그들의 일은 내가 다해주고, 그들은 관리자로서 나를 관리하였다.


그러다 더 이상 참기 힘들 때 난 다른 직장으로 진급이 아닌 진급을 해 넘어가 버렸다. 돈과 대우만 나아진다면 타이틀이 무슨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그리고 남은 것들은 아파오는 몸, 주기적으로 상담이 필요한 정신뿐이었다. 물론 50대에 은퇴할 수 있는 경제력까지....


국에 정착 후 내 삶에서 처음으로 주기적으로 피부관리를 받으며 몸에 좋은 집밥을 신선한 재료로 해 먹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나누어 주는 음식재료들이나 집에 필요한 물건들이 넘쳐나고 음식재료 쇼핑과 산책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한다. 또한 아침 시간에 최대한 게으름을 만끽하는데 물론 눈은 평소처럼 비슷한 시간에 떠지만 침대에서 미기적 거리다 남편이 태워주는 커피를 마시고 핸드폰으로 읽고 싶은 뉴스를 다 본 후 침대에서 나오는 생활을 즐기고 있다.


남편도 아직까지는 이 시간들을 즐기고 있다. 일주일에 2번가는 한국어 학원을 위해 하루에 2-3시간을 예습, 복습을 하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곡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다. 물론 나랑 산책 가고 쇼핑하는 것도 나보다 더 좋아하며 갑자기 함께하게 된 대가족의 일원이 된 것을 즐기고 있다.


예상을 했듯이 주위의 부탁으로 어린 학생 두어 명의 영어공부도 도와주고 있는데 그들의 변화를 바라보며 행복해하고 있다. 나의 조그마한 contribution이 다른 이의 삶에 큰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우리는 그것을 보람이라고 하나보다.


초등학생 때부터 이모부(남편)와 편하게 영어로 대화하던 조카들과는 달리 6학년에 올라가는데 ABCD만 알고 있다고 걱정하는 학생의 엄마 말에 남편이 영어공부를 도와주기로 했는데 그 학생이 한 달 뒤 80점이 넘는 영어 성적표를 가지고 왔다. 평소 2-30점대였던 학생이 갑자기 80점대, 90점대 그리고 100점, 2달이란 아주 짧은 기간 안에 변화를 만들어 냈고 학생의 선생님은 그 엄마에게 연락을 해왔다. 대체 학생이 요즘 어떻게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원어민과 하는 영어 과외란 말에 선생님은 간단히 수긍을 했고 그 친구의 자신감은 다른 과목 성적과 함께 계속해 쑥쑥 자라났다. 그리고 그전에는 힘들 것 같아 포기했던 중학교에 쉽게 갈 수 있는 시험결과를 만들어 냈다.


​처음 부탁을 받았을 땐 단지 그 학생의 중학교 때 삶이 걱정이 돼서 하기로 했다. ABCD만 외우고 갔던 중학교에서 영어 선생님은 Good Morning을 가르쳤고 바로 다음시간에 시험을 쳐서 성적이 낮은 아이들의 종아리를 때렸다. 단 한 번도 선생님에게 성적으로 맞아본 적이 없었던 난 자존심이 상했고 다시는 영어공부를 하지 않기로 맹세를 했다.


만점에 가까운 국어와 수학성적을 가졌지만 반 평균도 안 나오는 나의 영어 성적 덕분에 나는 학창 시절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대학에서도, 취업을 하고 나서도, 영어는 나의 앞길을 막았고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호주로 그동안 번돈을 다 들고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 날아가야 했던 나는 이아이가 나와 같은 미래를 경험하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다.


단지 그렇게 시작했는데 의외로 더 잘해주는 이 친구를 보면서 남편은 자신의 인생에서 보람이란 걸 느끼고 있다. 아주 작은 자신의 도움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경험이며 동시에 내가 혹시나 누군가에게 잘못을 했을 때 그 또한 얼마나 크게 잘못된 영향을 줄 수도 있지 않을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경험이 되었다. 다시 한번 다짐하자. 내가 살아가는 동안 세상에 좋은 foot print만을 남기도록 노력하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대구에서의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