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의 일상

외국 나가면 한국인을 가장 조심해라???

by SueB

흔하게 들리는 이야기 중 "외국 나가면 한국인을 가장 조심해라"가 있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민자들 생활은 고국에서 살아가는 것보다 상당히 힘이 든다. 물론 돈이 많으면 그렇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돈이 많다고 해도 언어와 문화적 차이로 인해 겪게 되는 많은 일들이 마음의 상처로 남는 것이 일상인 날들을 이민자들은 보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상처를 줄일 수 있는 방편으로 어쩔 수 없이 이민자들은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되고 가까이 살게 된다. 멜버른의 내가 살던 동네는 그릭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어 남유럽의 풍경이 흔하게 보인다. 10분만 운전하고 가면 한국인 커뮤니티, 그리고 조금 더 가면 베트남 커뮤니티가 있는 동네여서 주말마다 원하는 음식들을 사 먹기 상당히 편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런 커뮤니티들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지워주는 좋은 환경이지만 동시에 안 좋은 관습들을 여전히 호주에서도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영어가 잘 안 되는 사람들은 자신이 속하는 커뮤니티에 집을 구하고 다양한 정보를 구하게 된다. 또한 불법 이민자들도 그곳으로 향하게 되고 현금을 받으며 최저임금보다 더 적은 돈으로 일하게 된다. 이런 특정 커뮤니티의 회사들은 호주에서 규정해 놓은 최저임금이나 근무환경을 무시하는 데 익숙해 있으며 언어나 비자에 문제가 있을 경우 어쩔 수없이 감수하고 일을 하는 이민자들이 많이 생기게 된다.


학교를 졸업하고 남자 친구와 나는 앞으로 같이 살아갈 나라를 결정해야만 했다. 당시 IMF를 통과하고 있던 한국으로 외국인인 남자 친구를 데리고 가서 정착해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부모님의 반대가 너무 심해서 남자 친구를 부모님에게 소개할 수 조차 없었다.


또 다른 선택은 프랑스로 같이 가는 것이었지만 영어공부만으로도 힘들었던 나는 프랑스어까지 배울 자신이 없었다. 당연히 성인이라면 최소한 자신을 벌어 먹여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것을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다시 프랑스어를 직장생활이 가능한 수준으로 배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남자 친구는 대학원으로 진학을 하고 난 다행히 유학원/여행사에 취업을 할 수가 있었다. 사장은 다른 도시에 있는 본사에서 일하고 나와 일본인 직원 한 명이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을 상대로 학교도 소개해 주고 여행 상품을 파는 멜버른 지점이었다.


취업했다는 기쁨도 잠시, 호주에서는 2주마다 주급을 받는 데 2주 일을 해도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 당황해하며 며칠을 기다리다 사장에게 전화를 해서 문의를 한 결과 "우리는 트레이닝 기간 동안 임금을 주지 않습니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아니 면접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없었고 입사하자마자 유일한 한국인으로 한국손님을 상대해야 하는 데 트레이닝 기간이라니? 참지 않는 성격상 또박또박 항의를 했고 마치 선심을 쓰듯이 500불짜리 수표를 2주 임금이라며 보내 주었다. 그 후 난 주급내역서조차 없이 독촉을 해야 날아오는 500불짜리 수표를 한 달에 두 번 받았고 1년 일을 한 뒤 인상된 금액이 600불이었다. 매년 세금정산을 국세청에 해야 해 사장에게 내 연봉에 세금을 낸 내역을 달라고 수차례 요청을 했었다. 하지만 사장은 바빠서 내역서를 줄 수는 없지만 내가 내는 세금이 많아 내손에 들어오는 돈이 적은 거라며 자신은 약속한 연봉을 지불하고 있다고 우겼다.


Local 경험과 영주권이 없으면 취업이 거의 불가능한 이곳에서 살기 위해서는 그 말도 안 되는 액수의 임금과 사장의 주장을 들으면서도 화를 삭여야만 했다. 약속했던 연봉의 2/3도 되지 않는 돈을 받고 일주일에 6일을 휴가도, 연차도, 병가도 없이 일하며 3년 가까이 버틸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은 내 나이가 30에 다가가자 혼자 사는 노처녀 딸보다는 외국인이라도 남편이 있는 딸이 낫다며 결혼을 허가해 주었고 우리는 친구들과 Registry office에서 간단히 결혼을 등록하고 6개월이 지나서야 신혼 여행겸 신청했던 영주권을 받으러 한국으로 향할 수 있었다(당시에 우리가 신청했던 영주권은 offshore 조건이 있어 반드시 호주 밖에 있는 호주대사관에서 받아와야만 했다).


한국과 프랑스를 가야 했던 우리는 장기간의 휴가가 필요했고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휴가를 이번에 사용한다고 신청을 하고 한국으로 떠났지만 사장은 "우리 회사에서는 노는 사람에게 임금을 준 적이 없다며" 주급을 주지 않았다.


다시 멜버른으로 돌아와서 항의를 했지만 밀린 주급은 받지 못했고 이제 영주권도 있고 경력도 있는 상태라 더 이상 참을 필요가 없는 나는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 물론 법적으로 보장된 연금을 넣어주지 않은 회사를 국세청에 신고하고 임금 미지불에 대한 것은 노동청에 신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문제는 그동안 Full-time으로 주 6일을 일했으나 사장은 국세청과 노동청에 나를 Casual part-time이라고 보고했고 따라서 내가 받아낼 수 있는 밀린 임금은 그다지 많지가 않았다. 하루하루 근무 기록표가 없어서 주 6일을 일한 것을 증명하기도 힘들었고 같이 일한 일본인 직원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받아야 하는 액수보다 훨씬 적은 그 금액조차 사장은 지불하기를 거부하며 법무사를 통해 나를 고소하겠다며 협박하였다. 결국에는 그 돈의 일부인 2000불을 주겠으니 이번 일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다는 서류에 사인하라고 연락이 왔다.


사장이 주장한 Casual part-time으로 노동청이 계산해 준 밀린 임금은 8000불이었으나 보통 노동청이 고발을 해 법원으로 가는 다른 케이스들에 비해 적은 액수여서 노동청에서는 나의 예전 회사로 밀린 임금지불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준다고 했다. 내 담당자말로는 대부분의 회사들은 그걸로 충분하며 밀린 임금을 납부한다고 했다.


아주 가끔 그 공문을 무시하는 독종(?)들이 있는데 슬프게도 내가 일했던 회사가 그중 하나였다. 노동청에서 더 이상 진행이 힘들어 그 서류를 받아 개인변호사를 선임하려고 상담만 했는데 250불짜리 청구서가 집으로 날아왔다. 이런 식으로 변호사 비용이 청구가 된다면 길어질 수도 있는 이 민사소송을 감당할 현금이 없어서 법적으로 끌고 가는 것도 포기해야만 했다. 결국 사장이 나의 침묵 대신에 제의한 2000불을 거절하는 것이 그나마 남아있던 내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이직을 할 때 절대로 한국회사에 이력서를 내지 않았다.


슬프게도 이런 나의 경험이 호주 이민자 사회에서는 전혀 특이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한 경험을 한 한국인 이민자들이 많이 있고 그 후 20년 뒤 내 조카가 영주권을 받기 전에 일하던 한국인 회사도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그놈의 스폰서비자가 뭐길래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려먹으려 하다니 ㅠㅠㅠ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나간 후 그 회사의 본사와 지점에서 일하던 동료들은 최저임금과 연금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사장은 호주 국세청과 노동청에 더 이상 주목을 받고 싶지 않아 울며 겨자 먹기로 최소한의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고생은 했지만 조카 역시 경력을 인정받아 영주권을 받았고 현재 호주회사에서 행복하게 일하고 있다. 연봉이 그전 회사의 2배인 것이 그 행복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뭣보다도 항상 일을 잘해줘서 고맙다고 하는 상사의 칭찬이 예전의 주눅 들어 일하고 있던 한국회사와 가장 다른 점이라며 조카는 감사히 일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취업이 힘든 이민자들의 특성상 가지고 온 돈을 다 쓰고 나면 새로 이민온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프며 접근을 해서 사기 치며 살아가는 사람들, 이민 초반에 힘들어하길래 열심히 도와줬는데 고마워 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요구해서 한국사람들에게 정이 떨어진 사람들, 젊은 열정이라기엔 무모하게 돈도 없이 와서 한국 교민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일부 배낭족들, 유학생활에 적응을 못해서 약/술/도박에 중독이 돼서 주변인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사라지는 학생들 등등 다양한 부정적인 경험들이 커뮤니티에 떠돌면서 이야기들은 과장되고 결국 "외국 나가서는 한국인을 가장 조심해라"란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나 혼자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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