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직장생활

어디서나 힘든 직장생활. 하지만 우선 취업을 하고 고민하자^^

by SueB

호주 멜버른에서 일하면서 한국분들에게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어떻게 호주회사에 취업을 하셨어요?"이다. 20여 년 전 한국에서 신입으로 다니던 직장에서 영어성적이 일정 레벨이상이 되어야만 진급이 가능하다는 조건을 듣고는 영포자였던 나는 더 이상 선택이 없음을 느꼈다. 마침 이해할 수 없었던 직장문화에 힘들어하던 나는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며 과감히 회사를 그만두고 단지 따뜻하다는 유학원의 말을 듣고 케언즈로 날아갔다.


천성이 청개구리인 난 당시 대부분 가던 미국이나 영국은 고려도 해보지 않았고 호주라는 미지의 세계에 그다지 두려움도 없이 부모님에게 통보만 하고 떠나왔다. 물론 결혼할 나이가 다가온 나의 유학을 부모님은 만류하셨지만 2년간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떠나온 나를 말릴 수 있는 수단이 없으셨다.


부모님이 걱정하는 모습은 예전부터 철저히 무시하던 이기적인 나였기에 아무 생각 없이 올 수 있었고 5개월간 케언즈에서의 영어학교 생활은 정말 재미있었다. 영어는 포기한 나였지만 씩씩한 성격 덕분에 적응하는 데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던 케언즈는 장기간 있기엔 너무나 작은 동네였다.


다행히 다니던 영어학교는 여러 곳에 체인점이 있었고 다른 학생들은 대부분 골드코스트나 시드니로 이동한 반면 난 멜버른으로 와서 살아온 세월이 20년을 훌쩍 넘었다. 영어코스와 디플로마 코스를 마치고 멜버른에 새로운 체인을 시작한 작은 한국회사에 일을 하게 되었다. 물론 당시엔 최저 임금도 못 받았으며 주 6일을 일했고 연금이 법적으로 주어져야 하는지도 몰랐다. 병가도 휴가도 없는 회사에서 3년 가까이 다니며 주기적으로 밀리는 주급까지 참을 수가 없어 사장과 크게 싸우고 나와서 다시는 다시는! 한국계 회사에 다니지 않는다고 결심했다.


막막했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2달 뒤 이민자들을 많이 채용하던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여전히 영어실력은 좋지 않았고 모든 업무를 영어로 해야 한다는 두려움에 도망가고 싶었어나 내 컴퓨터 업무 실력을 중요시 여겨 취업이 된 덕분에 상사는 내 영어실력을 문제 삼지는 않았다. 경상도 억양에 케언즈 발음은 솔직히 한국인에게도 호주인에게도 알아듣기 힘듦이 분명했으나 문서편집을 주로 했기에 그다지 힘들진 않았다. 또한 우리 회사는 이민자들 정착교육서비스를 정부에서 계약을 받아서 하던 곳이라 내 영어실력을 많이 이해해 주었다.


하지만 진급은 힘들었고 회사에서 내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교육을 위주로 하는 회사라 공부를 하는 직원들에게 지원금이 있어 숫자에 강한 나는 회계대학원에 진학을 해 공부를 시작했다. 다행히 곧 회사의 Finance Team에 직원 채용 공고가 올라왔고 난 지원을 하고 면접을 한 후 이동할 수 있었다. Part-time으로 3년 과정인 대학원 졸업 1년 전에는 지역의 대학 Finance Team으로 학비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럼 호주직장은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1. 오랜 직장생활 중 만나 본 대부분의 신입(?) 들은 경력이 아주 많았다. 보통 9학년부터 슈퍼마켓이나 타켓같은 리테일 숍에서 일하기 시작해 대학졸업쯤에는 플로어 팀장급인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진상을 상대하는 방법 등 사람들을 대하는 데 익숙했으며 회사생활 적응력도 아주 좋았다. 그래서 가끔 만나는 어린 친구들에게 아무리 힘들어도, 일당이 적어도 일을 꼬옥 하라고 한다. 입학은 쉬워도 졸업은 어려운 이곳 대학생활을 하는 친구들에게 일까지 하라면 힘들겠지만 다른 선택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2. 아무리 작은 가게라도 일단 일을 시작해 봐야 한다. 대학졸업장으로만 취직이 되는 세월은 과거가 되었다. 물론 전공을 살리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전공과 관련되지 않아도 2-3년 일을 하다 보면 전공 쪽으로 옮겨 갈 수 있는 기회가 온다. 난 초반 5년간 전공과 전혀 다른 종류의 직장 생활을 했고 결국 전공 관련일을 15년 정도하고 있다가 은퇴한 마지막 해에는 또 다른 부서에서 일을 했다. 물론 한국에서의 경력도 여기서 하는 일과도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 모든 경력들은 나의 이력서에 나열되어 있고 동료들도 나랑 비슷했다.


3. 조급해하지 말고 거절을 두려워 마라. 내가 일하던 곳을 통해 멘토링 프로그램의 멘토로 참여한 경험과 조카의 구직활동 경험에 비추어 느낀 점은 어린 친구들이 처음부터 큰 성공을 바라보며 조급함이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또한 실패나 거절당하는 것에 지나치게 상처를 받는 것이었다. 어차피 인생은 장거리 달리기이다. 처음부터 좋은 직장의 높은 지위는 오히려 역으로 상처로 남기도 한다. 살다 보면 upside down의 경험도 하고 지치면 쉬어가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20여 년 전 몇 안되던 동양인으로 유창하지 않던 영어랑 현지경력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의 구직활동은 한국에서 쉽게(?) 취직했던 나에게 충격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가면서 거절에 익숙해지면서 더 이상 상처를 받지도 않고 그냥 구직활동을 할 때마다 하는 경험일 뿐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솔직히 난 가고 싶었던 정부기관에 여러 번 지원을 해서 3번이나 면접을 했지만 결국 입사하지 못했다. 하지만 전혀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았고 그냥 나랑 인연이 없구나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한국에 비하여 부서 이동이나 회사를 바꾸는 것이 자유로운 호주에서는 어차피 내 이력서나 면접을 기억하는 사람이 그 회사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매우 적으니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지원서를 내 보는 것뿐이다. 캐주얼잡까지 포함하면 9개의 회사를 다닌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회사에 대한 충성은 나에게 월급을 주는 그 순간까지 일뿐이다. 따라서 지원서를 내서 연락이 안 온다거나 인터뷰 후 오퍼가 오지 않는다고 상처를 받는 친구들이 이해되지 않았고 거절이 두려워 지원서조차 내지 않는 것은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4. 여기가 아니다 싶으면 언제라도 옮겨도 된다. 난 한국에서 신입사원 노릇만 3번 했으며 멜버른에서도 회사를 자주 바꾸는 편이었다. 한자리에서 3년 이상 같은 일을 해본 적이 잘 없으며 일이 익숙해 지겨워지면 다른 회사나 부서로 이동하였다. 물론 공부를 하는 중이거나 뭔가 새로운 취미활동을 하는 경우엔 회사를 바꾸는 빈도가 적었지만 그래도 95년부터 일을 한 나는 한자리에서 일한 최장기간은 3년 6개월이다.


이런 과정에서 최장 백수기간은 2개월 정도였으며 회사를 바꿀 때마다 금요일에 송별파티를 하고 월요일에 새 직장에 출근을 했다. 물론 이것은 나의 성격문제이다. 남편은 마지막 부서에서 15년 이상 일을 했고 나와 같이 은퇴해 백수 생활을 즐기고 있다. 내가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한국처럼 여러 회사를 다닌 것이 험으로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회사들이 선호하는 편인 이유는 적응력과 학습능력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옮길 때마다 학벌이 올라가거나 성과를 증명해야 하지만 한국의 고등학교 입시공부에 비하면 훨씬 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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