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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론즈실버 Sep 14. 2022

#9. '멍-'을 못 때리는 그대에게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전에 '가수 크러쉬가 멍 때리기 대회에서 1등 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쪼그리고 앉아서 초점 없는 눈을 하던 그를 담은 사진과 멍 때리기는 뇌에게 휴식을 주는 거라 생산성을 높여준다던 사족도 함께 기억난다.  


그 이후로였나, ~멍에 대한 수식어가 늘어났다. 불멍, 물멍, 풀멍....

그리고 나도 여러 ~멍에 도전(?)해봤지만, 그중 어떤 멍도 해내지(?) 못했다.

 

글램핑의 꽃인 장작불을 보다가도 불길이 작아지면 득달같이 '장작을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강 표면에 산란되는 윤슬이나 바다의 파도를 봐도 어느 순간 또다시 생각이 나를 슬그머니 파고들었다. 풀멍.....은, 우리 집엔 크고 작은 화분이 30개가 넘지만, 그 어느 식물도 5분 이상 나의 생각의 흐름을 멈출 수 없었다. 물론 이건 산에 가서도 비슷해서 우거진 녹색을 보다 보면 그 아래에서 살아가는 동물들, 저 나무들이 살아온 시간들에 대한 것들, 평소엔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 물음표를 달고 따라왔다. 

어떤 방법으로도 도저히 생각을 멈추지 못했다. 


(가끔 퇴근길에 스쳐 지나가는 정거장들을 멍하니 바라보긴 했었지만, 그건 평온한 뇌가 아닌 지치다 못해 녹아버린 좀비 같은 나였다. 생산성을 높여줄 것 같진 않았다.)  


그러다가, 운 좋게도, 쓸데없이 갑자기 스쳐가는 질문,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 없이 그저 머리를 비울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어항멍.


앞다리를 바삐 움직이고 있는 새우들과 망보듯 바위 뒤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테트라들, 그리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수초들.  


어항을 보다 보면, (특히 눈을 바짝 어항 유리 앞에 대고 시야 안에 물속 세상만 가득 담기면,) 물살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수초들과 예상치 못하게 휙 지나가는 무늬가 빛나는 물고기들, 백색소음으로 마음을 평온케 해주는 여과기 모터 소리와 그 여과기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에 정신이 호로록 녹아버린다. 이 앞이라면 30분도 거뜬하다. 


사실 이런 효과를 노리고 어항을 들인 건 아니다.  주인님(또치, 7살) 때문, 아니 덕분이다. 하루 종일 앉아있는 고양이가 너무 심심해 보였고, 때마침 고양이들에게 어항은 티브이 같은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것도 하필, 내가 티브이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던 주말에, 그 얘기를 들었다. '옳다구나!' 하고선 호갱을 자처하며 수족관 세트를 구매했다. 


이젠, 고양이가 앉아 있을 줄 알았던 어항 앞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내가 앉아있다. 혹여나, 멍을 때리지 못하고 생각과 감정에 항상 휩싸여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항 앞으로 가보길 추천한다. 

그리고 먹여 살릴 식솔들이 곱절 넘게 늘었으므로, 열심히 일 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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