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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론즈실버 Sep 14. 2022

#8. 엄마가 내 결혼식에 오지 않겠다고 했다.

엄마에게 언제까지 '엄마의 역할'을 바랄 수 있을까?

엄마와 아빠가 드디어 이혼했다. 내가 23살 즈음부터 별거를 시작해서, 30살이 된 올해 가정법원에서 서로의 관계에 종지부를 찍었다. 


우리 엄마와 아빠는 서로에게 맞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화 방식이 달랐고, 개그코드가 달랐으며, 무던한 아빠에 비해 엄마는 예민했고 감정적이었다. 엄마에겐 알코올 중독인 할아버지와 매일 무엇인가를 던지며 싸우던 할머니로부터 받은 근본적인 우울감이 존재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엄마가 베란다 쪽 샤시쪽을 걸레질을 하며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느니, '죽어야 이 짓이 끝나지.'라는 말을 하는 걸 들었던 걸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우울의 근간엔 그런 말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호시탐탐 올라오는 것 같다. 


그럼에도, 정말 거짓말처럼,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주말 드라마 속 명랑한 주인공이 말하듯, '나도 우리 엄마 아빠처럼 살 거야.'라고 얘기하고 다녔었다. 아빠는 혼란과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우리 엄마를 잘 맞춰주는 사람이었다. 아빠는 간장게장을 만들 수 있었고, 양배추 샐러드를 더 얇고 풍성하게 채 썰 수 있었으며, 김치찌개가 국이  되지 않았으며, 티비를 보면서 빨래 개는 걸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우리 아빠는 미리 대화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이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지자, 정말 신기루처럼 가방 하날 들고 떠나버렸다. 


사실 떠나기 전에 내게 물었었다. "아빠랑 같이 나갈래?"라고. 

그때 나는 수능을 준비 중이었고, 그 와중에 환경이 바뀌는 게 싫었으며, 아빠가 밉기도 했고, 마지막으로 엄마가 걸렸다. 엄마 곁엔 그럼 누가 남지? 

그래서 엄마 곁에 진짜 남기'만' 했다. 그 이후, 나는 내가 독립하기 전까지, 6년간 엄마와 같이 살기'만'했다. 


엄마는 아빠와 헤어진 뒤 아직도 힘들어한다. 엄마는 아빠가 참고 버티던걸 전혀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노부부가 되어서 서로 손을 잡고 길을 거닐 줄 알았었다. 난 이보다 완벽한 동상이몽을 본 적이 없다.

 

아빠가 사라지자, 엄마는 사소한 것들도 해나갈 수 없었다. 매일 울고, 무기력하게 누워 핸드폰만 보고, 밥도 대충 먹고, 그냥 방에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난 이게 2~3년이 갈 줄 알았는데, 내가 수능을 준비해서 대학교에 가고, 4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회사에 다니는 2년간 계속됐다. 나는 엄마를 더 이상 동기 부여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몹시 사랑하는 내 남자 친구와 함께 식장을 고르고, 아빠 쪽의 하객과 부를 친구들을 세어보고. 그리고 추석이 되어 엄마를 만나러 가서, 물어봤다. 

상견례는 언제가 좋으냐고, 결혼식엔 몇 명이나 오느냐고. 


엄마는 내 결혼식에 오지 않겠다고 했다. 

아빠를 보는 게 너무 싫다고 했다. 내 인생을 이렇게 만든 그 사람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그건, 엄마가 아빠와 여자와 남자로서의 감정이고, 나에게 엄마로서의 역할, role을 다 해줄 순 없겠냐."라고.


엄마는 답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엄마를 '엄마'가 아닌 다른 말로 부를 수가 없는데, 엄마가 하나밖에 없는 딸 결혼식에 오지 않겠다고 한다. 나는 배신감도 들면서,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내가 엄마한테 이걸 바라는 게 큰 일인가? 내가 딸이기에 응당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사실은 아닌 것일까?


나는 아빠랑도 돈독하게 주말 데이트를 하는 사이이고, 엄마에게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고 간간이 전화를 한다. 내겐 두 분 다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한 분들이라, '잘 살겠다.'라고 '덕분에 이런 날도 온다고.'말하고 싶었는데 그런 기회가 사라져서 속상하다. 물론 그 자리에 없으셔도 내 마음은 변치 않지만, 아까 엄마와 얘기하다가 벌떡 일어나서 집으로 향했다. 엄마랑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원래도 결심한 바였지만, 정말 아이는 낳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처음 엄마가 돼 보았을 것이고, 엄마가 된다는 것이 이런 걸 수반한 다는 걸 몰랐을 거다. 엄마가 밉고 서운하지만, 사실 엄마에게 받은 것들도 부정할 수 없다. 풀을 가꾸고, 감정적으로 솔직하게 표현하고, 책을 곁에 두려 노력하고,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말을 붙이고 살뜰하게 사근사근하게 구는 성품은 엄마에게 물려받은 거니까.



오늘 엄마를 보고 왔는데도, 엄마가 너무 보고 싶고, 결혼식에 오지 않겠다는 엄마가 너무 미우면서도, 또 방울토마토를 씻고 고구마를 삶아 내어 주는 엄마를 사랑한다. 여자로서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엄마가 애잔하면서도, 엄마의 역할보다 한 여자로서의 상처 때문에 딸의 결혼식에 오지 않겠다고 하는 엄마가 싫다.


마음이 곤란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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