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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론즈실버 Sep 14. 2022

#7. 머무름, 그 치열함에 대하여

정지비행은 오히려 앞으로 날아가는 것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하다.

 여태껏 네 번의 이직을 했다. CJ CGV, 이대서울병원의 병동 간호사, 건강관리협회 검진센터 내시경실, 국,내외 제약사의 외주 회사, 그리고 헬스케어 스타트업까지.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경력에도 실제로 업무 경력은 이제야, 고작 5년이다. 거의 1년마다 이직한 셈이다. 한 곳에서 진득하게 버티지 못한 이유를 돌이켜 생각해봤다. 왜냐면, 또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근질거렸기 때문에. 아니 이직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나는 머무르는 것을 당최 참지 못한다.


그것이 실질적인 공간이든, 아니면 업무상의 진전이든, '머무름'은 나를 뒤처지는 것처럼 느끼게 해서, 온몸 가득 불안감이 스며들게 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서있는데 주변만 뒤로 흘러가는 것을 느낄 때, 나도 그 흐름에 맞춰 걷고 싶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일하다 보면 계절이 바뀌었고, 내가 제일 좋아해서 자주 입는 옷들이 바뀌었고, 차가운 음료에서 따뜻한 음료만 먹게 됐고.  이렇게 모든 게 변했는데 나만 그 자리에 박혀있는 듯한 기분이 들면, 나는 이 기분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정수기의 자리가 익숙해지고, 아침에 출근할 때 어느방향 지하철을 타야할지 고민하지 않고, 여자화장실과 남자화장실의 위치를 확인하지 않으며, 점점 내 자리에 도착해 편안함을 느낄 때, 나는 주로 그때 퇴사를 생각한다.

아무래도, 모든 업무는 같은 업무를 반복한다. 항상 프로세스가 있으므로, 그 반복하는 일의 주기가 다를 뿐. 그런데 나는 그 일이, 내 자리만큼 익숙해지면 그때, 퇴사를 다짐한다. 머무름은 내겐 뒤쳐짐 같았으므로. 나는 지금도 당장 한 걸음씩 성큼성큼 앞서고 나가고 싶은, 그 마음 때문에.


이제는 심지어, 회사에 있는 물고기들조차 익숙한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 3개월 만에!



그러다, 머무름도 엄청난 힘이 든다는 걸 머리 서기를 하며 배웠다. 그저 머무르기 위해선 관성뿐만 아니라, 그 요령을 깨닫는 데에도 노력과 시간, 때론 두려움을 넘어서는 용기가 필요하단 걸.


주변 사람들에게 '너 왜 이렇게 정수리가 비어가?'라는 얘기를 들을 만큼, 올여름동안 시르사아사나에 온 몸을 던졌었다. 다리를 끌고 와 땅에서 두 발을 떼는 데까지는 무난하게 성공하고, 등의 힘과 복근의 힘으로 어거지를 부려 몸을 비스듬하게 세워놔도 그 상태에서 머무를 때면 온몸이 후들거렸다. 진득하게 그대로 버티지 못했다. 사실, 비단 머리 서기뿐만 아니었다. 한 발로 서서 중심을 잡는 브륵샤아사나나, 곧게 앉아있는 단다아사나도 그대로 머물려면 온몸이 하나하나 신경을 집중하고 호흡을 끊임없이 이어가야 했다.


 답보하고,  자리에 박혀 있는 것만 같던 머무름은, 나를 관통한 시간이 주는 선물이었고 노력에 대한 댓가였다.


멋들어지고 우아한 비즈니스 매너, 삶이 한순간이기에 그만큼 소중하단 자각, 내시경 술기를 깔끔히 해내던 야무진 손재주, 배려의 한마디로 목소리마저 펴지게 할 수 있게 하는 다정함.

당시엔 몰랐지만, 뒤돌아보니 모두 머무름이 준 선물이었다.


정지비행을 하는 벌새는 1초에 80번씩 날갯짓을 한다.  다른 새들보다 더 날개의 가동범위를 크게하면서, 원하는 자리에 멈춘다. 나 또한 머무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게 아니다.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열정을 쏟고 있었다.


이제는, 계절의 바뀜이, 회사에서의 익숙함들이 두렵지 않다. 나는 훌륭하게 머무르고 있으니까!

(사실 퇴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쓴 글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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