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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론즈실버 May 15. 2023

#15. 퇴사가 잘못된 선택이면 어쩌지?

하지만, 직무가 안 맞으면 답은 '퇴사' 뿐인걸요.

 23년 5월 4일 목요일에 '퇴사하고 싶다.'고 팀장님과 면담을 했으니, 어느덧 일주일이 더 지났다. '조금 더 생각해 보라.'는 팀장님과 이사님의 권유로, 두 번의 주말을 보내는 동안 꽤나 골머릴 앓았다.

"내가 하고 있는 짓이 진짜 맞는 걸까? 아씨, 진짜 이게 맞아?" 싶은 생각이 떠나질 않아서.


이유 없는 무덤 없다, 고. 나름 프로퇴직러로서 그때의 순간들은 내가 퇴사를 외치기에 충분했다.  

1. '그래도 대학은 가보는 게 좋다'는 존경하는 대리님의 조언을 듣고 수능 준비를 위해.

2. 보통 7개 해도 많이 하는 건데, 13개가 넘는 밤 근무에 곤죽이 된 정신과 몸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3. 다시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 한 달에 고작 2번 쉬는 근무. 연속 13일 일하는 것에 치가 떨려서 쉬기 위해.

4. 10000통에 가까운 상담 전화와 5만 건의 서류 작업이 참을 수 없이 지겨워서.

그리고 곧 '5. 뜻밖의 로테이션 후에, 영업 직무가 안 맞아서.'가 추가될 예정이다


이 회사에서 영업을 맡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역시 사람일은 모른다고.

 

 인바운드도 아니고, 아웃바운드로 새로운 곳을 영업해 나가는 건 톰크루즈가 바라보는 미션임파서블 아니라, 지나가는 행인 1이 바라보는 미션임파서블이었다. 도무지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로 영업이 안 맞을 줄은 몰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실 '영업'이 아니라, '병원' 영업이 안 맞은 것 같다.


 신규 병원들과 협력을 맺어야 했다. 건강검진이 가능한 다양한 병원들이 우리와 제휴를 맺어야, 고객들이 넓은 선택의 폭에서 더 나은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병원은 의료법의 강력한 방어막 안에 싸여 있어서, 세속적인 것들로 견고히 보호받고 있다. 그래서 회사는 손해를 봐도, 병원은 손해 볼 게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속된 말로, 어쩌면 남들 좋은 일을 하고 있었으니 그다지 어려운 영업은 아니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도 힘들어했던 이유는 내가 간호사였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간호사여서 병원 영업 파트로 발령을 받았는데, 이제보면 '영업'이 싫은 게 아니라 '병원 영업'이라 싫었던 것 같다.


 병원에서 간호사는 꽤나 소중한 자원이기에, 홀대를 당하긴커녕, 고맙단 얘기를 자주 듣는다. 그러다 작은 의원의 안내 직원한테까지 '필요 없다.'는 말을 직설적으로 듣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지간한 데에서 당하는 거절보다 더 뼈아팠다. 환자를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딴 면허와 의료인의 자존심의 문제였다.

 
 그래서 여태껏 다양한 일들을 해봤지만 지금 하는 일보다 더 하기 싫은 일을 만난 적이 없다. 조금 과장해서 월급을 반납할 테니 이것만 하지 않게 해달라고 빌고 싶은 심정인 날도 있었다. 아니, 이 정도면 퇴사 안 하고 배기기가 더 어렵지 않겠는가?


팀장님이 꾸며 주신, 회사 프로필인 제페토 사진.  

 

 이렇게 일이 진저리 나게 싫은 가운데서도 떠나기 미련이 남고 아쉬운 이유는, 꼬박 1년이 지난 이제야 회사에 대해서 알기 시작했다는 거다. 프로세스를 진행하는 방식이나, 또 이럴 땐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알기 시작했는데, 떠나려니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무엇보다 그 사이에 꽤나 친해진 사람들과 헤어지는 게 가장 속상하다. 그래도, 그래도. 이젠 영업을 안 해도 된다니 마음이 편하다.


 맞벌이도 모자랄 판국에 맞퇴사라니. 결혼식 세 달을 앞두고 이렇게 그만두는 신혼부부가 있겠냐만은, '뭐 우리 많이 안 먹으니까'라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무모하게 적성을 다시 찾아 나서려 한다.

(애인이랑 대낮에 수영이랑 요가 다니고, 강아지랑 한없이 걸으면서 산책하고, 평일에 관악산 등산하고, 사람 없는 전시회 가서 시시덕거리고, 우리끼리 우주천하 단타대회 열고, 노곤한 햇볕아래에서 낮잠 자는 것도 퇴사사유가 될 수 있다면, 사실 이게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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