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론즈실버 May 09. 2023

#14. 그 어렵다는 성견성묘 합사 하기

시간이 약이란 말은, 정말 어지간하면 유효하다

그러니까 작년 4월에 길가에 버려진 강아지를 구조해 왔다. 그리고 나는 한 일주일간 밤마다 괴로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집에 원래 살고 있던 고양이가 생각보다 극심하게 괴로워했기 때문이다.


길냥이였던 고양이 또치께서는 약 8년 전 남자친구를 기꺼이 간택해 주셨고, 그 이후 나와 오빠가 함께 한 집으로 합친 이후부터 쭈욱 함께 살고 있었다. 느긋하고 게으른 우리 집 고양이는 카펫이 깔려있는 거실에서 뒹굴 거리는 걸 가장 행복해했다.


턱시도 야옹이 또치. 어릴 적 가정교육을 받지 못해, 냥펀치를 날릴 때마다 발톱을 더 세운다. 짜식.


그런데 강아지가 집에 오자마자, 또치는 작은 침실 방에서 한 3일간 나오지 않았다. 정말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식음을 전폐한 채로, 화장실도 가지 않고 침대 구석에 몸을 말고서 누워만 있었다. 구조해 온 강아지는 진드기가 잔뜩 붙어있어서, 베란다에 감금된 채 격리기간을 갖고 있었고, 고양이를 위해 커튼을 치고 있어서 집 안에서는 보이지도 않았는데도, 그 인기척마저 고양이는 두려웠나 보다.  그 당시 강아지도 눈치를 보고 있었는지 (기세등등한 지금과는 다르게) 꼬리를 잔뜩 다리 사이로 숨기고 짖지도 않는, 얌전한 순둥이었는데 말이다.


또치에게 너무 미안했다. 나 좋자고, 내 마음 편하자고 강아지를 데려온 건 아닐까. 물론, 강아지를 구조한 건 너무 좋은 일이지만, 그것도 사실 내 이기심 아니었나. 우리 집 또치가 소심한걸 너무 간과했구나. 평생 저렇게 방에서 안 나오면 어떻게 하지.


그래서 일주일 동안 밤마다 눈물을 흘렸고, 매일 밤 사과하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했다. 침대에 함께 있을 때면 항상 골골송을 불러주던 그는, 다시는 부르지 않을 것처럼, 그렇게 동상처럼 마음의 문을 닫았다.

 

무슨 인기척은 있는데, 두려워서 다가가지 못하는 또치


진드기가 다 떨어진 볼리가 베란다 격리에서 벗어나, 또치와 처음 얼굴을 마주하던 날, 고양이는 정말 다신 못 볼 걸 본냥,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볼리 한번, 우리를 한번, 볼리를 다시 한번 그렇게 쳐다봤었다. 볼 수록 이(리)쁘단 뜻의 이름을 가지게 된 '볼리'를 만나게 된 건, 너무 기쁘고 행복했지만, 여전히 나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처음 커튼 뒤에 있는 볼리를 본 날


네이버에 [강아지고양이합사], [성견성묘합사], [고양이강아지 키우기] 같은 키워드를 쳐대며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내가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고양이와 강아지가 잘 지낼 수 있는지 있는 힘껏 찾아봤었는데, 그때 다들 하는 말은 '시간이 약이다.' 같은 느낌이었다.


믿을 수 없었고, 또 믿기지 않았다. 저렇게 보기만 해도 뒤로 자빠지는 고양이와, 사리분간 않고 달려드는 개가 어떻게 시간이 지난다고, 바뀔 수가 있을까. 다들 어린 강아지와 고양이는 희망적이라는 글뿐이던데, 내가 데려온 볼리는 족히 1년은 넘긴 개였으며 고양이는 8살의 성묘인데. 시간이 약이란 말을 이럴 때 써도 되는 걸까.


되더라. 시간이 지나니, 사실 길게만 느껴졌지만, '고작' 1년이 지나니, 되더라. 1년이면 족했다.

텅 빈 집에 서로의 엉덩이를 맞대고 침대에서 서로 자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CCTV에서 본 순간, 지금 하는 어쭙잖은 고민들은, 어지간하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내가 한건 시간을

들인 것 밖에 없었기 때문에.

주인이 없을 때 서로를 의지하는 모습에, 코 끝이 찡 했다.


때론, 지금이 끝인 것 같고, 더 이상의 나아짐 같은 건 없는 것 같은 순간들이 올 때가 있다. 이거보다 좋아질 일은 없다고, 나빠질 일만 있을 거라고, 장담하는 순간도 생기기 마련이다. 허나, 그건 모르는 일이다. 시간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지는, 현재에 있는 나는 모른다.  

지금 하는 절망과 마음의 고난도, 훗날 언제 그랬냐는 듯, 위로받는 순간이 올 수도 있으니,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은 시간에게 맡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는 너희들에게 늘 고마움뿐이야.


작가의 이전글 #13. 이쯤 되면 사주나 MBTI가 맞는 것 같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