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나만 어려운 건 아니겠지?
브런치를 쓴 이후, 무려 서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책을 받았다. 애정 어리게 읽고 나름의 독후감도 제출했는데, 그 이후 다시 한번 북콘서트 초대장을 받았다. 사실, 이제야 솔직하게 말하건대, 한창 업무와 결혼준비에 시달리고 있던 나는, 북 콘서트가 있던 전전날, 담당자님께 메일을 보내려 했다.
"담당자님, 초대해 주신 성의는 너무나 감사하지만, 저 못 갈 것 같아요. 일이 너무 바빠요. 이런 시간이 지금 제게 사치일 것 같아요."
메일을 썼다 지웠다 하다, 같이 가려던 애인한테 참석 의사를 슬쩍 다시 물어봤다. 혹여나 가기 싫은 내색을 비추면 그의 탓으로 슬쩍 돌리며 안 가려고 했지, 만.
내 브런치는 네 XX 협찬 블로그가 아니니까 쓰고 싶은 대로, 내 맘대로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책이 안내하는 시 읽는 방식이 내게는 조금 어색했다. 내게 시는, 아주 짧은 시간만에 다른 세상으로 보내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낯선 단어들과 음률, 다양한 표현들은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그래서 나대로 이해하고 느끼고 싶었는데, 책 속의 여러 설명들이 울타리가 되어 단정 짓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강의가 끝난 뒤엔 시를 읽는 새로운 방법을 알게 됐지만.)
사실, 이렇게 솔직하게 쓸 수 있는 이유,는. 정재찬 교수님의 북 콘서트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정말 너무 좋았다. 제게 제안 주셨던 담당자님 어디 계세요? 그쪽으로 절 좀 하겠습니다. 2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혼이 쏙 빠질 정도로 북 콘서트에 빨려 들어갔다. 강의가 얼마나 좋았냐면, 한양대 학생들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북콘서트 당일 아침에 미뤄뒀던 연락을 해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혼한 엄마에게 '엄마, 상견례 와줄 수 있어?'라고 카톡을 지웠다, 썼다, 했다. 누군가에겐 당연했던 일이 내겐 그리도 어려웠다. 말을 해야 하는데, 엄마가 안 온다고 할게 눈에 선해서, 차마 연락을 할 수 없었다. 역삼역 에스컬레이터를 올라오며 어쩔 줄 몰라서 살짝 눈물도 났다. 결국 연락을 하지 못하고 회사를 출근했다.
엄마가 원망스럽진 않았다. 그저 삶이 '고되다.'고 생각했다. 아마 애인이 '장모님의 부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쉬운 내색을 비쳤다면, 가파르게 감정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을 거다.
교수님의 어머니는 치매 걸리셔서 골똘히 천장을 응시하며 노후를 보내셨다고 한다. 사랑하는 엄마가 겪는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는 와중에 교수님은 '어머니도 마지막 공부를 하고 계시는 거다.'라고 생각하시니, 조금 견딜 만 해지셨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 '아, 나도 공부하는 중이구나. 그래, 공부는 원래 어렵지. 하물며 어려운 만큼 성장하겠지.'라는 메시지로 다가왔다. 상견례 일정을 어떻게 잡는지 배우며, 이혼한 엄마가 자존감이 떨어져 다른 누구에게 자신 보여주는 걸 꺼려하는 걸 배우며, 이 모든 시간을 나이 들어가는 '사람'으로서 배워가고 있구나. 배우는 중이라서 이렇게 지지부진할 때도 있고 숨 턱 막히는 구간도 있구나.
북 콘서트 동안 시를 통한 심리 치료를 받은 기분이었다. 시가 위안의 글이 될 수 있다니. 강의를 듣는 동안 어금니 꽉 깨물고 울음을 참는 시간도 있었고 박수 치며 갸르륵 웃는 시간도 있었다. 모두 시 덕분이었다.
추신
시와 있는 힘껏 떨어져 살고 있는 애인은, 강의가 끝나고 '시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만은 아니며 일상과 가까울 수 있다.'는 소감을 남겼다. 이 정도면 교수님은 거의 '시 영업 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