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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론즈실버 Jul 13. 2023

#30. 강아지는 수평공간, 고양이는 수직공간

다 큰 고양이와 강아지가 같이 살 수 있나요?

 성견 성묘 합사하는 건 정말 어렵다고들 하는데, 우리 집 고양이는 다소 우발적으로 다 큰 개와 함께 살게 됐다. 물론 강아지를 데려오기 위해, 나는 계획적으로 퇴사까지 했지만서도 고양이 입장에선 뜬금없었을 거다.


 강아지를 구조해 오기 전부터 정말 많은 인터넷 서칭을 했다. 어디엔가.... 뭔가.... 비법이 있을 것 같았다. 초등학교 때 친구가 되는 필수 코스로, 집에 가는 길에 학교 앞 분식점에서 컵 떡볶이를 같이 먹던 것처럼, 반드시 치트키 같은 게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런 건 없었다. 사회화가 끝난 강아지와 고양이가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같이 어렵다'는 글이 즐비했다.


 그때, 희망을 얻었던 유일한, 유튜브가 있었다. 강아지는 수평공간에서 지내고 고양이는 수직공간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점만 잘 이용하면, 그러니까, 공간 분리를 해내면 된다고 했다.

그 말에 우리는 강아지를 데려오는 시기에 맞춰 부랴부랴 캣타워를 주문했다.


캣타워대신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아있는 고양이. 캣타워는 절대 사용 안 함.


우린 잊고 있었다. 우리 집 고양이는 캣타워를 오를 수 없다는 걸!



 

 강아지와 마찬가지로 고양이도 길거리 출신이다. 어릴 적 애인이 하던 가게에 들락날락하다가 기어코 눌러앉았다. 간택 전에, 이미 TNR을 한 이후였기 때문에 그의 왼쪽 귀는 TNR징표가 남아있다.


 그리고 고양이의 매력포인트라는 꼬리가 없다. 아예 꼬리가 잘리거나 작은 게 아니라 꼬리가 꺾여서 동그랗게 휘어져있다. 얼핏 듣기로 근친 교배가 많으면 유전자 질환으로 그럴 가능성이 높다던데, 여튼 꼬리가 짧뚱해서 그런지 균형을 잡는 게 영 신통찮다. 그래서 고양이를 처음 키우는 나는, 고양이들이 다 바닥생활을 하는 줄만 알았다.  


 그는 턱시도 고양이답게 조신하고 소심하지만, 상냥하며 애교가 넘친다. 아빠다리를 하고 있는 집사들 다리 사이에 틈이 보이면 재빨리 사이에 와서 앉아 골골 송을 부른다. 그래서, 볼리를 데려오기 전, 태교 하는 심정으로 골골 고양이를 붙잡고 얘기했었다.

"너도 길거리 생활 해봐서 알잖아. 길거리 선배인 네가 이해해 줘. "




 결론적으로 캣타워는 사람 짐 놓는 곳으로 변하다가, 결국 침대 아래 서랍으로 퇴출당했다. 우리 고양이는 책상도 오르지 않는 진정한 땅바닥 고양이였다.


 그래서, 도대체 고양이는 강아지와 '어떻게 친해졌냐'라고 물어보신다면, 사실 1년 3개월이 넘어가는 지금까지도 친해지진 않았다. 동물농장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진귀한 장면처럼, 서로에게 그루밍해주지 않는다. 아직도 강아지가 가까이 가면 고양이는 '어디 개가 가당찮게 다가오냐!'는 것처럼 화를 낸다.


초반에는 눈만 마주쳐도 일방적으로 고양이가 개한테 화를 냈다.





 우리가 시간을 들여 진행한 순서는 다음과 같다.

담요로 안전문 사이의 시야까지 차단한 공간 분리(3주 이상) → 천천히 아주 천천히 빠르지 않게 얼굴 만나게 해 주기(3주 이상) → 공간의 분리 (1달 이상) → 천천히 만나게 해 주기(1달 이상) 씩 순차적으로 시간을 들여 '너네는 같이 살 운명공동체이며, 거부해도 집세는 인간들이 내고 있으므로 너네는 거부권이 없다.'는 걸 상기시켜 줬다.


 솔직히 , 애인과 내가 합사가 가능했던 사유로 생각하는 건, 고양이의 소심한 성격 덕분이다. 만약 고양이가 강아지를 쫓아가서 해코지하는 성격이었다면, 이렇게 같은 공간에서 사는 건 어려웠을 거다.


진정한 흑백. 겨울 난로 앞에선 이런 진귀한 장면도 보여준다. 아주 가끔.


 처음엔 우리가 좋자고 데려온 건 아닌지, 이기적인 인간의 행동은 아니었을지, 많이 뒤돌아 봤었다. 하지만 좁은 침대에서 인간 2, 개 1, 고양이 1가 뒤엉켜 자더라도, 비올 때나 눈 올 때 같은 지붕 아래서 피할 수 있는 걸 위안을 삼으려 한다.


그리고 혹시, 유기견이나 유기묘를 입양하려는데 다른 종류의 동물을 이미 키우고 있다면, 먼저 함께 살고 있는 동물의 성격을 객관적으로 관찰해 보시라고 덧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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