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론즈실버 Sep 05. 2024

#42. 항생제, 요가, 인생의 공통점

매트 위에서, 항생제 앰플에 식염수를 섞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세균을 죽이는 항생제를 투여하기 전, 약물을 희석한 후 피부에 주사하여 환자가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반드시 거친다. 꽤나 단순하지만 철저한 과정이다. 만약 알레르기가 있다면 가볍게는 간지러움, 붓기로 끝날 수도 있지만, 심각하게는 호흡곤란이나 저혈압, 쇼크 등 위험한 반응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술 전 교육을 위한 용지를 찍어놨었다. 수술이 이렇게 어렵고 번거로운 거다. 가급적이면 아프지 말아야 한다.


짧게나마 근무했던 외과병동은 특성상 수술이 많았기에, 자주 다뤘던 약물이 항생제였다.

사용하려는 항생제에 다행히 알레르기 반응이 없더라도 막상 환자에게 잘 맞지 않는 경우들이 제법 있었다. 항생제들은 질환에 따라 바뀌기도 하고, 예외적으로 환자에게 항생제가 맞지 않으면 다른 항생제로 바꾸고, 반코마이신 같은 항생제는 용량이 혈중 농도에 맞추거나 체중에 따라 바뀌기도 하고, 또 바꾸고, 또 바꾸고..., 맞는 항생제와 적절한 용량을 찾을 때까지 의료진은 환자를 위해 계속 조정해 나간다. 그리고 마침에 항생제가 잘 맞는다면 환자는 전보다 빠르게 호전을 보이게 된다.


그 경험들을 통해 알았다. 인간은 같은 몸처럼 보일지언정, 절대 같지 않고, 전부 다른 몸을 가지고 있다고. 전 세계인이 우주의 원소와 같은 탄소로 이루어졌을지언정, 모든 인구가 저마다의 아주 독특하고 유니크한 존재라고.




아쉬탕가 1세대라는 달비선생님들과의 워크샵 4일 차.


문득 달비 선생님께서 우리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대개 '어떤' 아사나를 할 때 통증이 생기는 것)을 해결하는 방법을 바라보다가, 그 과정이 항생제를 찾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자세를 하기 위해선 이렇게 하는 것이 대부분 잘 통하더라도, 그럼에도 학생이 편안해하지 않는다면 다시 가장 잘 맞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이 도구도 사용해 보고, 저 도구도 사용해 보면서 말이다.


100명의 손목 통증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증상은 통증으로 동일하지만 이유는 100가지가 될 수도 있다. 손목뼈들의 협착일 수도 또는 애당초 부상이 낫지 않았거나, 또는 어깨, 심지어 목의 움직임, 전거근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하나하나씩 시행해 보는 거다. 사람마다 전부 다르기 때문에.  우선 이 방법을 썼는데도 통증이 있으면, 다른 방법을 써보고, 또 그게 안 맞으면 다른 방법을 찾고. 제자와 함께 자유롭게 통증 없이 움직이는 방법을 찾아보는 거다.


그저 뻗는 스트레칭이 아닌, 어떻게 힘을 써야 하는지 느껴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몸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니.


무릎의 위치도 태어날 때부터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발 위치를 바꿔서 그 사람에게 가장 잘 맞는 방향을 찾는다. 요가를 할 때, 매트와 발날을 평행하게 해야 한다거나, 발이 벌어지면 안 된다고 들었던 나로서는 다소 충격적인 가르침이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정렬이라는 단어 앞에 '개인화'를 붙여야 한다. 신을 위해서라거나 종교가 목적이 아니라면 말이다.


4일 동안 달비선생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Better?' 또는 'Is it feel good?'이고, 내 기억 속, 한 번도 아직 들어본 적 없는 말은 'NO.'였다. 그러니까, 어지간해서는 안 되는 건 없다는 거다. 개개인들이 다른 것뿐이니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인생이라고 다를까? 그저 나에게 맞는 걸 계속 찾아가는 과정 아닐까?

 

우선 커다란 목표가 있는 거다. 항생제를 쓰는 이유가 세균을 없애기 위해서이고, 아사나가 호흡을 잘 느끼기 위한 것처럼.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 세운 목표(지금 나의 목표는 행복이다.)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적절히 조합해 가면서, 조화롭게 테스트해 보는 과정을 거치는 것. 그것이 인생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다짜고짜 자신의 줏대를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이건 되고, 이건 안되고.'라고 말할 수 없는 거다. 그 사람의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 모르니까. 만약 그 사람의 목표를 알고, 정말 그것과 정반대로 가는 경우라면, 주변인들이 염려를 담은 조언정도야 할 수 있겠다만, 또, 그게 답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는 거다.  


문득, 내가 다른 사람에게 무심결에 내뱉는 '아니, 그건 아니야.'라고 하는 말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무례하고 겸손치 못한 지를 떠올렸다.


그리고 회사 다닐 때와는 다르게, 너무 빠르게 지나가버린, '아니? 벌써 금요일이야?'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목요일밤이다.  

이번 주 너무 빠르다. 그 어느 때보다 엄청 힘든데, 엄청 빨라.


작가의 이전글 #41. 좋아하는 사람과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