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르는 미래를 기쁘게 '기대'하는 방법.

삶이 내게 놓아준 것들이, 적재적소에 필요한 일이었다고 믿는 것뿐.

by 요주인물


당신은 마주하지 않은 미래에 대해 기쁘게 기대할 수 있나요?


나는 아니다. 아직 내게 오지 않은 것들을 온전히 기대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싶다.

갑자기 맞닥뜨린 상황에서, '이것이 정말 내게 필요한 일이었으며 가장 필요한 때와 장소에 준비되어 있었다.'는 삶을 향한 신뢰. 지금 내게는 다소 멀기에 경이롭게까지 느껴지는, '삶을 온전히 믿기에 어떤 순간이든 삶을 향해 감사만 흐르는', 그런 날이 가능할까?






'내게 왜 이런 일이 있는 거지?'


작년 오월에는 갑자기 상황이 어려워진 회사를 퇴사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선릉역 1분 거리. 너무나 좋은 위치, 완전한 새 건물. 30여 남짓의 인원으로 400억대의 매출을 내는 회사. 복지도 어지간히 좋았다. 그런 회사가 법적 분쟁으로 어려워졌다. 이렇게 회사가 갑자기 어려워질 수 있구나. 회피하듯 여러 종교에 빠져가는 대표. 이보다 좋을 수 없지만 결과로 도출되지 못하는 많은 산출물들. 그 사이에서 나는 뭔가에 떠밀리듯 회사를 나왔다.


내가 퇴사하고, 딱 삼주정도 후에 남은 직원들이 권고사직으로 처리되어 실업급여를 받았다. 물론, 내가 퇴사할 즈음에도 사내에는, 조금만 버티면 권고사직을 받을 수 있다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나는 유일하게, 그즈음 내 발로 나온 사람이 되었다. 알 수 없었다. 무언가가 나를 나가라고 떠미는 느낌이었다. 조금이라도 버틸 수 없었다. ( 풍족했던 건 단언컨대 아니다. 최대 실업급여 수당인 180만 원이 아쉬워서 강아지와 산책 중에 펑펑 울었다.)

KakaoTalk_20260305_072318270.jpg 갑자기 산책 중에 펑펑 우는 나를 바라보는 우리 집 개.



'나는 그때, 왜 이런 말이 흘러나왔을까?'


이후, 좋은 공고를 기다리다가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공감하고 의료기기에 대해 설명하는 직군에 지원했다. 그 회사도 내가 퍽 마음에 들었는지, 인사담당자의 이례가 없을 정도라는 말과 함께 아주 빠른 절차를 거쳐 채용이 됐다. 위치도 전보다 좋아졌고, 급여도 높아졌고, 만족스러웠다. 면접을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꽤 괜~'이라고 친구한테 카톡도 보냈었다.


면접을 보고 집에 오는 길에, 불현듯 마침 비염약이 떨어진 게 생각났다. 앞으로 회사에 다니면 퇴근 인파를 뚫고 오래 기다려야 하니까, 대낮인 4시, 지금 가야지. 3년째 다니고 있는 동네 조그만 이비인후과에 들렀다. 면접 복장 그대로 진료를 받았다. 이제 제법 얼굴이 익숙해진 실장님께서, 왜 이렇게 옷을 예쁘게 입었냐는 가벼운 사담에 질문에 (원래는 주책 같은 걸 싫어해 그런 얘기를 잘 안 하는 편), '면접을 보고 오는 길이고, 저는 사실 간호사.'라고 얘기했다. 그렇게 갑자기 채용 제의를 받았다. 근무 시간은 오후 2시부터 9시까지. 그렇게 그 자리에서 면접을 봤고, 나는 그 자리에서 채용이 완료됐다. 급여는 반토막 가깝게 떨어졌을지언정, 왠지 그 자리에 끌렸다.




'그렇게 나는 또 다른 길을 걷게 됐다. '


사실, 그즈음 내게는 고민이 있었는데, 온전히 주식 트레이딩을 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나를 회사가 아닌 동네병원에서 근무하도록 이끌었나? 여하튼 얼떨결에 나는, 오전엔 주식 트레이딩을 하고, 오후엔 조그만 동네 병원에 다니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처음 간호사가 되어 대학병원에서 일할 때만 해도 전혀,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삶이었다. 그 병원에서 오래도록 다니면서 동 대학원도 다니고, 돈도 꽤나 모은 사람이 될 줄 알았지. 뭐ㅎㅎ





아직 믿을 수 없고, 혹은, 믿고 싶지 않다. 모든 일들은 이미 적재적소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어련하겠는가, 유치원을 졸업하며 그 당시 나로선 단어의 뜻을 이해하기도 어려운 무려 <자주自主상>을 받은 나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을 했고, 이건 반드시 '나의' 노력일 뿐이며 모든 상황은 '내가' 실현시켰다고, 여전히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순간들이 태반이었다. '어쩌다' 흘러나온 말을 통해 일하게 된 직장, '어쩌다' 만난 내가 깊게 시간을 공들이는 요가, '어쩌다' 공부하게 된 주식과 해외선물. '어쩌다' 시절인연으로 만난 친구를 통해 소개받게 된 사랑하는 연인까지.


왜 그때 선택을 했냐고 하면, 자주상을 받은 나답지 못하게 우물쭈물, '그냥 해야 될 것 같아서.'라는 다소 모지리 같은 대답이 나온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그냥 삶이 준 방향에 그저 내다 놓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알고 보니, 삶이 나를 더 잘 알기에 내가 머리를 굴리기 전에 미리 내 길 위에 필요한 무언가를 툭툭 올려두지 않았을까? 그런 마음이 드니, 삶이 조금 기대된다.


경칩에 맞춰 새잎을 내는, 기특하고 귀여운 옥시카르디움 브라질. 오쪼쪼.


오늘은 경칩이다. 이번 봄은 내게 또 어떤 것들을 내 앞에 가져다줄까. 그리고 그것이 혹여 '고난 혹은 고통'일 지언정, 나는 그것을 필요한 일이었으며 이를 통해 가야 할 발걸음이었다고, 언젠가 기쁘게 고백할 수 있을까. 그 마음이라면, 다가오는 봄처럼 미래가 설레고 기대된다.





추신, 여전히 나는 잘 모르겠다. 사랑했던, 그리고 여전히 사랑하는 친구의 어머님의 부고를, 다른 친구를 통해 들었다. 그가 엄마를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온 마음으로 사랑했는지 알기에, 이 글을 쓰면서도, 그에게는 다른 폭력이 아닐까,라는 걱정이 든다. (물론 그는 이 글을 읽을 수 없겠지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부디 지금의 평안함 속에서 살아가길, '어쩌다'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내가 예슬 선생님께 배웠던 것처럼 호흡소리가 귓전에 닿을 정도로 오랜 시간 꼬옥 안아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