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정신없이 근무하다가 점심 시간에 틈이 생기면 나는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곤 한다. 무심한 성격을 가진 나는, 의식적으로 시간을 정해놓고 전화를 드리지 않으면 연락하는 것을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임금이 책정되지 않는, 이 공인된 휴식 시간에 나는 슬며시 휴대전화를 챙겨서 자리를 뜬다.
자주 통화한 연락처 목록에 아내 다음으로 어머니가 자리를 잡았다. 나는 '어머니' 세 글자가 차지하는 좁은 영역에 손을 올리고서 푸른색 통화버튼을 찾아 눌렀다. 통화 연결음은 금방이라도 나와 어머니를 이어줄 것 같다.
"여보세..."
"아들!"
전화 너머로 먼저 들려온 것은 어머니의 목소리에 가득 담긴 반가움이었다. 점심때면 걸려오는 나의 전화를 어머니는 매번 선물을 받는 아이처럼 신난 목소리로 받는다. 나는 늘 그랬듯이 점심은 드셨냐고 물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서로에 대한 애정과 사랑의 결실로 아이를 가졌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막 결혼했을 때, 어머니의 꿈은 아버지를 닮은 아들 둘을 낳아서 사는 것이었다고 했다. 실제로 어머니는 아들 둘을 낳았고, 아버지는 당신이 어머니의 꿈을 이뤄준 사람이라며 장난스레 거들먹거리시는 것이 벌써 30년째다.
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든 것은 아이였지 내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는 '아이'라는 밀봉된 상자 속에 들어있다가 어머니가 포장을 열어보자 드러난 존재인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당신들께서 만들어 보낸 선물을 스스로 받고는 지금까지 그것을 반복하고 있다.
"그래요, 운동도 하시고 점심도 잘 챙겨드세요. 혼자 드신다고 대충 드시지 마시고."
"그래 아들, 전화해줘서 고마워."
사랑한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사실 전화를 한 것은 어찌보면 다소 의례적인 것일 수도 있다. 평일 오후에 전화를 드리기 시작한 것은 4년 전 어머니의 요구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어머니와 한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도 어머니는 전화를 주길 바라셨다. 나는 그것이 다소 의아했지만 어머니의 요구에 따라 점심을 먹고 난 시간이면 매일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때 어머니께서 바라셨던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어머니는 어느새 당신께서 전화를 달라고 하신 것을 잊어버리신 것 같다. 그러니까 이제 내가 드리는 전화는 어느새 물든 가을 단풍이며, 땅을 보고 걷다가 무심코 바라본 맑은 하늘과 같은 것이다. 마치 잊고 있던 이에게서 온 손편지를 받으시는 것처럼 어머니는 나의 전화를 받으시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어머니가 만들어서 스스로에게 보내는 선물과 같다.
나는 다음으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은 저녁에 무엇을 먹을까, 직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다 하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일상을 매일 공유하는 것은 가족으로서 누리는 특권이다. 나는 이 특권을 아내와 함께 누리면서 아내를 처음 만난 순간을 공연히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1년 반동안이나 주변인의 위치에서 관계를 지속해왔다. 그 1년 반 동안 아내와 나는 서로에게 밀봉된 상자같은 존재였다. 포장을 뜯어보기 전까지는 그 상자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도 모르고, 그 상자 속에 좋아할 만한 것이 있는지, 싫은 것이 있는지는 더더욱 모를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포장을 뜯어보기로 마음 먹었고 열어보았다. 그 속에는 지금의 아내가, 그리고 지금의 내가 들어있었다.
공상이 많은 나는 때때로 '내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라는 주제로 몇시간이고 깊고 자세히 상상한다. 그때마다 그 상상 속에서 나는 항상 멋진 일을 하고, 많은 재산을 가진다. 하지만 상상 속의 나는 매번 아내와 결혼하는 것에 실패한다. 내가 아무리 재산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한들, 아내에게 접근하여 연애를 시작하는 것에 중대한 결함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 결함은 바로 상상 속에서는 우리가 가졌던 1년 반의 시간이 부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변인으로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서로를 지켜봐왔다. 우리는 그 시간동안 서로에게 닫힌 상자였지만 그 속에 안 좋은 것이 들어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검증을 한 것이다. 그러니까 과거로 돌아간 내가 가장 만들고 싶은 미래의 나는 바로 지금의 나인 것이다.
집에 들어가면 여전히 아내는 매일 보고 같이 있으면서도 현관까지 나와 들뜬 마음으로 안긴다. 나는 아내가 매일 나의 직장으로 보냈다가 반송을 받는 선물과 같다. 그리고 아내가 만들어주는 지금 내 삶의 형태가 바로 닫힌 상자 안에 있던 선물의 본 모습이었다.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선물이다. 그 존재 자체로 이미 받았고 계속해서 받고 있는 선물일 수도 있다. 또는 닫힌 상자로 존재하면서 포장을 열어줄 손길을 기다리는 선물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닫힌 상자로 존재하면서 자신을 선물로 받아줄 사람을 기다린다. 그리고 자신을 선물로 받아준 이에게 다시금 자신을 안긴다.
오전 11시를 막 지나는 이른 시간이다. 나는 바쁘고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한 편 다시금 어머니께 선물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되뇌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언제 점심시간이 되려나..."
조용한 사무실에서 홀로 이죽거린다. 이 작은 읊조림은 어머니와 아내에게 보내는 선물에 동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