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연속으로 기운이 가라앉는다. 누가 건드리면 톡 터질 것 같아서 아닌 척 애써 참기를 몇 시간, 다행히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울컥 올라오는 덩어리를 누군가를 만나서 밥을 먹으며 풀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제안은 아쉽게 거절하고, 달리지 않으면 넘어가지지 않을 것 같았다. 숨이 차오르고 심장이 뛰면서 산소가 온몸에 퍼져야 해소될 것 같았다. 밤에 들어오자마자 뛰러 갈 채비를 마쳤는데, 이어폰이 0%가 되어 있었다. 정말 아뿔싸였다. 조금만 충전하면 한 시간 정도는 쓸 수 있을 테니 십여분 정도 기다렸다. 어찌어찌 충전을 하고 드디어 장시간인 15분 두 번 뛰기를 선택했는데, 업데이트되어서인지 여태 들은 적 없던 설명이 추가되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불과 이틀 전 아침에는 1분 뛰고 걷기를 반복했는데 갑자기 15분 뛰기로 넘어가서 몸이 놀랐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장시간 뛰는 걸 목표로 연습하고 있었던 터라 몸도 알지 싶어서, 오늘은 좀 생각을 비워내야 하니 마지막 코스로 가기 위해서 장거리로 골랐다. 다행히 거리는 한산했고, 차도 그렇게 많지 않고 드문드문 노상식당 덕분에 어둠도 무섭지 않았다. 팍세 호텔 블록까지 쭉 뛰어가도 15분의 절반 밖에 되지 않았다. 한 바퀴를 돌아야 15분 정도가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조금 쉬었다가 두 번째 달리기 중에 고질적인 오른쪽 무릎이 찌릿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보호대를 차고 있어도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보니, 통증을 최대한 견디면서 가는 방법 말고는 달리기를 지속할 수 없었다.
15분씩 두 번 달리기가 끝나고 다리가 저릿저릿했다. 새로 여기로 오면서 봤던 마사지샵이 생각났다. 편의점 가는 코너쯤에 있는 이 가게는, 밖에 발바닥에 모든 신체의 장기가 있다는 입간판을 내어 놓고, 마사지라는 글자 말고는 모두 라오어로 쓰여 있었다. 한 번씩 안을 힐끔 훔쳐봐도, 인기척도 없고, 손님이 있는 걸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렇지만 제일 가깝다 보니, 받아보고 괜찮으면 계속 가보는 것도 고려하던 차에, 여러 가지가 복잡한 심경을 떨고 싶어서 씻고서 방을 나섰다.
8시가 넘은 시간, 가게 불은 켜져 있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여러 번 인사를 하며 들어가자, 선글라스를 쓴 남자분이 나오고, 뒤이어 눈이 사시인, 몸이 조금 불편한 남자분이 느릿느릿 인사를 하며 나왔다. 한국에서만 듣던 맹인 관리사인가 싶기도 하면서, 맹인이라면 남자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까 하는 중에 조그마한 여자분이 등 위에서 쑥 나타났다. 그녀 역시 눈은 사시였고 어딘가를 응시하는 듯했는데, 다행히 앞은 어느 정도 볼 수 있지만 눈만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얼마인지 물으니 6만 킵이라 했고, 내가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으니 만 킵짜리 여섯 장을 보여줬다. 다른 가게에서는 인쇄된 메뉴가 있어 원하는 것을 고르고 가격도 알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마사지는 종류도 많은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 지도 막막해서 일단 다리만 받고 가야겠다 싶었다. 새햐얀 형광등과 나름 설치된 노란 가림천을 걷고 단 위에 있는 매트에 누웠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줬지만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몸에 바르는 데 쓰는 거 같은 크림으로 보이는 이 통 저 통을 가져다 보여주며 괜찮냐고 하는 듯해서 그저 끄덕거리며 된다고 했다. 긴 바지를 입고 누웠더니 처음에는 바지를 걷어올리고 했는데 아무래도 무릎에 바지가 걸리다 보니 무리가 있었나 보다. 선글라스 남자분은 코끼리가 그려진 반바지를 가져다주었다. 대충 쳐진 가림천 뒤로 허둥거리며 바지를 갈아입고 다시 누웠다. 여기저기를 누르며 물어보는데 괜찮냐고 하는 것 같았다. 눈앞에 모기가 날아다니자 ‘늉~’이라고 했더니 그들이 웃으며 어떻게 모기를 아는지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여러 곳을 누르는 손길이 놀라웠다. 여기저기 쑤시고 뭉치고 했던 것을 무조건 세게 하는 것도 아니면서 완급조절을 하면서 종아리와 정강이를 이완시켜 주었다. 다른 가게에서는 그냥 눌러서 문지르기만 하는 느낌이라면, 이 분은 관절 사이사이 마디마디를 짜릿하게 누르면서 풀어주었다. 무릎 사이를 누를 때 정신없이 아팠지만 왠지 다 받고 나면 통증이 사라질 것 같은 기대가 생겼다. 아무 소리 나지 않던 가게 안은 누군가가 라오 음악을 틀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전통 리듬에 부르는 가수는 음정과 박자를 밀고 당기며 불협화음인 듯 화음인 듯 미묘한 줄타기를 하며 반주와 녹아들고 있었다. 그 노래를 따라 부르기를 오랫동안 하더니, 갑자기 기타 연주 소리가 시작되었다. 쿵짝쿵짝 거리는 음악에 깔리는 기타는 팝이나 클래식 계열이었다. 그러다가 기타 연주소리만 들리기 시작했다. 꽤 오래 연습하셨는지 여러 곡이 멈춤 없는 하나의 곡으로 시작하고 끝났다.
어쩌면 적막 속에 나를 위해 배경음악을 틀어준 것 아닌가 싶었다. 혼자 온 외국인 손님을 위해 여러 이야기를 전해 보지만 나는 알아듣지 못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는지 영어를 할 줄 아는 분과 통화를 시켜주었다. 다리, 1시간 6만 킵. 그렇게 알아듣고 시작했는데 시간은 꽤 많이 흘렀고, 야무진 손끝이 힘이 빠지지도 않고 최선을 다해 내 다리를 올렸다 접었다 오므렸다 해주었다. 혹시 불편하진 않은지 계속해서 그녀는 확인하는 듯 물었다. 이러나저러나 못 알아들으니, 나는 계속 괜찮다고 했고, 정말 괜찮았다.
이곳저곳을 누르는 손끝이 무작정 아픈 것이 아니라 정말로 시원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한 곶에서쯤은 이 부위를 풀어줬으면 했는데, 이 분은 제대로 그 부분을 꾹꾹 누르며 풀어줬다.
돌아오는 길, 시간을 확인해 보니 두 시간 동안 해주었다. 그리고 금액은 똑같이 6만 킵을 받았다.
분명 달리기가 끝난 후 오른쪽 무릎이 찌릿했는데 거짓말같이 괜찮아졌다. 물론 한밤중 길거리의 개들이 울부짖는 소리에 발을 헛디디지만 않았어도 무릎은 개운해진 게 유지되었을 텐데, 잘못 딛자마자 돌아와서 아쉬웠다.
만약에 외관을 보고 들어갈 생각을 안 했거나 들어갔는데 눈이 향하는 방향이 달라 제대로 못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돌아갔다면, 나는 이렇게 개운한 경락 마사지를 오랫동안 받을 수 있었을까?
멀리 있었다면 한 번도 안 갔을지도 모르는 이 가게가 숙소 가장 가까이 있는 덕분에 오늘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다행이다.
탁탁- 모기 잡히는 소리, 탁탁-전기불로 뛰어드는 모기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