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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일 Oct 21. 2023

오늘은 그냥 가져가세요

몇 달 전 누군가는 껄끄럽게, 누군가는 애써 웃으며 호텔 직원과 헤어졌다. 그렇게 3달 정도가 지나고 새로운 이들과 함께 다시 이곳을 찾았다. 첫 날 만났던 프런트데스크 직원은 처음 보는 듯했다. 다행히 몇 달 전 그렇게 떠날 때 있었던 사람은 아니라서 마음이 편했다. 내가 받은 방은 지난번에 받았던 방의 건너편이었다. 익숙한 복도. 몸이 기억하는지 순간 원래 머물던 방의 손잡이에 손이 갔다. 아차차. 거긴 지금 다른 손님이 머물고 있지.

육중한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자 꾸릿한 하수구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난번도 이 정도로 심했었나 싶지만 어쨌든 다른 동료들이 대충 다른 방을 받고 이미 들어간 터라 마땅히 방도 없다. 캐리어를 밀고 들어가니 침대 옆쪽 모서리에는 거뭇거뭇한 곰팡이가 슬어 있고 푹신한 소파 위에는 무엇인가 묻었는지 얼룩덜룩하다.

하- 여기에서 세 달을 머물러야 하나. 화장실로 가 보니 하수구 덮개 없이 바로 배관이 보인다. 이러니 냄새가 방에 가득했겠구나 싶어 둘러보지만 하수구 덮개는 화장실에 없다. 낮이었지만 앞 방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미 다른 선택을 오늘은 할 수 없다. 건넌방의 화장실은 어떤지 잘 알고 있다. 변기 물을 내리고 나면 한 동안 폭발음 같은 터지는 소리가 한동안 계속 난다. 그래도 방을 뒤덮고 있는 쿰쿰한 냄새보다는 그 소리가 훨씬 낫지.

하룻밤을 보내고 퇴근길. 아무래도 이 방에서 몇 달을 살면 서글퍼질 것 같아 1층 프런트데스크로 간다. 오늘도 첫날 봤었던 그 직원이었다. 나는 그에게 앞 방으로 바꿀 수 있냐고 물었고, 그는 지금은 누가 있으니 내일은 가능하다고 했다. 가능하다면 당장 바꾸고 싶었지만 할 수 없다.

내일로 약속을 하고 다시 방으로 향했다. 여전히 쿰쿰한 냄새는 그대로고 모서리의 하얀 벽을 타고 올라갈 듯한 곰팡이까지 방이 얼마나 안 좋은지 알만했다. 내 마음을 모르는 앞방 사람들은 목청이 떠나가라 떠들며 새벽을 꼬박 흥겨움을 복도 가득히 분출해 냈다.

다시 돌아온 호텔, 오늘은 외부에서 온 손님들과 저녁 약속이 있어 재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출발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약속의 오늘 밤이었다.

프란트데스크에 앉아있는 사람은, 뜻 밖에 방을 바꾸어주겠다는 직원이 아니라, 이전에도 늘 퉁명스러운 표정인, 그 남자직원이었다. 다른 동료들과는 한 번씩 마찰이 있기도 했고, 워낙에 굳은 표정이라 상냥함은 보기 어려운 그가 앉아 있다.

나를 기억하겠지? 중간에 우르르 호텔을 떠났던 나를?

피할 수는 없고 여기에 머무는 이상 그와도 잘 지낼 필요는 있다. 지난번에도 열쇠를 두고 방문을 열지 못하면 귀찮은 내색 없이 방키를 내어주거나 방에 키를 두고 왔다고 할 때마다 그는 표정 없이 방문을 따 주고는 떠났다. 그에게 상냥하게 인사를 하면 다른 라오스 사람들처럼 안부를 건네거나 활짝 웃거나 하는 기색은 없다. 사무적인 응대뿐. 그에게 방을 바꾸는 이야기를 하자 마스터키와 내가 갈 방의 카드키를 챙겨 같이 올라간다.

엘리베이터 안, 그는 말이 없다. 어차피 그가 말을 해도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다.

팔을 휘휘 저으며 내가 이 방 짐을 지금 옮기겠다는 시늉을 하자 앞방 문을 열어주고는 자리를 비켜줬다. 며칠 동안 방에서 생활하다 보니 이런저런 집기들이 책상과 방바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캐리어를 드르륵 밀고 재빠르게 이방 저 방을 옮겨 다니는 걸 본 그가 움직였다. 바닥에 있는 라면포트, 책상 위 화장품이며, 이것저것 번거로운 것들을 내 대신해 주었다.

우리 사이는 나쁘지 않았구나?

저녁 약속을 한 일행과 로비에서 만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제 환전도 했고 해서 지갑에는 돈이 두둑했고, 혹시나 회식 도중 중간에 사라질 수 있는 기회를 위해 주머니에 10만킵을 두 장 넣어뒀었다.

나에게 베풀어 준 호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는 순수한 행동이었겠지만,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말로만 고맙다고 하는 것보다 그와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짐을 옮겨준 그 직원 앞으로 스윽 가서 10만킵 하나를 건넸다. 나에게도 작은 돈이 아닌, 사실상 만 원짜리를 건넸다. 그는 무안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한 뒤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매일같이 비가 오고 저녁에는 향이 강한 음식을 자주 먹다 보니 음식냄새가 옷에 금방금방 베였다. 이 전에도 호텔과 세탁물 비용으로 심정이 상한 적이 있어서 사설 세탁소를 찾아가 맡겼지만 경제가 어려워진 상황에  거기도 무한대로 저렴하게 운영이 힘들었는지 가격이 두 배 이상 뛰어 있었다.

이럴 것이면 굳이 여기 가지 오지 않아도 되었지.

빨래가 하루 이틀 쌓이면 점점 빨래비용도 올라가니 그냥 호텔에다 티셔츠 하나, 바지 하나를 맡겨보았다. 옷 담는 봉지도 없이 급히 맡기고 나니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이틀 째 지나니 물어봐도 아직은 없다는 건지, 아무튼 없다는 답변만 받고 그다음을 기약했다.

이 전에 다른 분의 빨래 한 봉지를 통째로 잃어버린 일도 있다 보니 혹시 내 것도 그렇게 되는 것 아닐까 싶어 퇴근길에 빨래 두는 곳에 가 보니 내 것으로 보이는 봉지가 있었다. 자리에 앉아있는 직원은 내 짐을 날라주던 그 사람! 고맙다는 말을 하며 얼마냐고 묻자, 그는 쿨하게 그냥 가라고 했다.

이야! 이런 날이 오는구나! 경고한 동맹관계 같은 사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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