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를 출발해 사무실까지 가는 길은 대략 네 번의 구간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톨게이트부터 직선도로로 곧게 뻗은, 2차선임이 도로에 표시되어 있는 아스팔트 포장 1구간. 거기에서 포장인 듯 비포장인 듯 구덩이가 여러 곳 파인 바나나구이 노점이 줄지어진 곳으로 한번 꺾고, 다시 꺾어서 나무 각목 조각맞춤의 다리를 건너서부터 시작되는데 차선 표시는 그때부터 없지만 암묵적으로 2차선으로 달리는 2구간. 마을을 조금 지나고 삼거리를 지나 높은 산을 눈앞에 두고 달릴 때까지는 아스팔트 포장이 된 양방향 도로가 이어지다가, 사탕수수(남어이) 할머니댁을 기점으로 왼쪽으로 꺾으면 파쇄석을 깔아 흔들거리는 1차선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길이 3구간. 퇴근시간이 되면 온 동네 소가 다 모이는 드넓은 벌판 한가운데에 설치되어 있는 안내판을 보고 오른쪽으로 꺾으면 파쇄석도 많이 파이고 눌려서 거의 흙바닥 수준인 1차선 도로가 4구간이다.
이 도로를 달리는 건 우리처럼 픽업트럭 등의 자동차, 90% 정도 차지하는 듯한 오토바이, 그리고 가끔 등장하는 경운기가 있고, 달리기도 하지만 도로 위에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있는 개와 소도 있다.
1구간은 사실상 마을은 없고 지방 국도처럼 도로 주변에 민가가 거의 없기 때문에 소와 개의 출몰은 희박하다. 오토바이나 차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서로 자유롭게 추월하며 빠르게 지나가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오리지널로 다니는 종류는 절반정도고, 절반은 기존 차량이나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무언가를 더 실을 수 있게 덧대거나 덧붙인 경우가 많다.
1.5톤 트럭 뒤를 개조해서 좌우로 앉을 수 있게 널판으로 의자를 만들고, 그 위로 철장처럼 올리고 지붕도 만들고, 그 위에 짐을 실을 수 있게 짐칸을 만들어 대중교통처럼 다니는 툭툭도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오토바이 오른쪽에 바퀴 달린 리어카 같은 걸을 연결 해서 짐도, 사람도, 개도 탈 수 있게 개조한 오토바이도 자주 볼 수 있다.
자동차와 달리 오토바이는 속도를 많이 내지 않고 달리다 보니 자동차는 중앙차선으로 추월을 하며 앞으로 달려간다. 그렇다 보니 오토바이들은 추월할 수 있도록 중앙차선보다는 갓길 쪽으로 붙어 달린다.
하지만 1구간을 지나 2구간에 들어서면서부터 다양한 종류의 달리는 것들이 도로 위를 달리고 있어서 속도는 급격하게 줄어든다. 차선은 사라지고 차도 양쪽으로 집들이 도로에 면해 한참 마을 구간으로 진입한다. 그 길목에 들어서면 어린아이들이 툭 튀어나오기도 하고 느릿느릿 오토바이가 차도로 진입하기도 한다. 뉘 집 개인지 알 수 없는 개들이 갑자기 튀어나오거나 어슬렁거리는 구간이기도 하다. 이때부터는 그냥 오토바이뿐만 아니라 리어카 붙인 오토바이부터 해서 집이 어딘지 알 수 없는 들개들이 도로 중앙에 걷거나 반쯤 누워있어서 이들을 피해 달리거나 속도를 최대한 낮추게 된다.
가장 환장의 콜라보는 3~4구간에 들어섰을 때, 제일 앞에 앉아있는 소, 그 옆으로 경운기가 지나고 있어서 사실상 걷는 것과 다름없는 속도 계기판을 보는 것이다.
시속 이십오 킬로. 언제 봤냐 하면,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운전면허학원에서 처음 기능 연습할 때 봤던 계기판 숫자였다. 시속 40킬로로 달리는 일도 없었는데, 시속 이십오키로라니.
생각해 보면 그렇게 급하게 갈 필요가 없기도 하고, 천천히 가도 충분하니까, 속도를 밟아 갈 필요가 있나 싶다.
느긋하게 천천히 가도 목적지에는 도착하니까.
급할 것 없이 조급해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도착하고 그 길로 이어지니까.
나와 딱 열두 살 차이 나는 그 친구는 이미 충분히 잘해왔고 충분히 잘하고, 잘하고 있다.
이미 이룬 게 많지만 같이 있는 친구들과 비교하면서 졸업하지 못한 상태에 불안과 초조함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자신만의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학생의 시간이 길지만은 않은데,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의 사이에서 하고 싶은 것을 누르면서 미루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나는 그의 나이에 방만하게 살았던 것 같은데, 누릴 수 있는 것을 하나 정도는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도 없고, 늦지도 않은데, 남들이 만든 기준과 잣대에 자신도 휘둘리면서 자꾸만 급해지는 건 아닌지...
이미 가는 길을 정했고, 그리 가는 길로 향하고 있는데, 그 구간이 늦으면 어떻고 멈추었다 가면 또 어떤가.
천천히 가다 보면 맛있는 과자집을 발견해서 먹어볼 수도 있고, 처음 보는 과일주스집을 보고 한 모금하고 가다 보면 가는 길이 지루하지도 않고 도착해서 생각했던 것과 다르더라도 여정에 대한 아쉬움이나 후회는 덜할 텐데.
시속 80~90킬로로 달리기만 했던 곳에서의 시간은 조금 잊고, 여기에서 여유가 스며들어서 급히 갈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면 일 말고도 더 큰 걸 얻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