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교육학과에서부터 지금까지
나는 '유아교육과에 가서 유치원 선생님이 될 거야'라는 마음으로 유아교육학과에 진학하지 않았다.
부끄럽게도, 주변에서 유치원 교사가 잘 어울린다기에 '그럼 유치원 교사 자격증 하나 따 놓을까?'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유아교육학과에는 정말 누가 봐도 '유치원 교사스러운' 친구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순하고, 친절하고, 다정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만나고 있는 친구들 중에서 유아교육학과 친구들의 비중이 아주 크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때부터 유아교사의 '스테레오 타입'이 틀에 박힌 것 같다.
자유분방한 교사, 자기주장이 강한 교사, 책임감으로 교사를 하는 사람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건데!
애초에 유아교육과에서부터 그저 아가들을 사랑하고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는 순둥이들이 가득하니!
그렇게 어색한 대학 첫 학기를 보내던 어느 날,
'영아 발달' 수업에서 난 큰 충격을 받았다.
어느 정도였냐면....!
나는 이 친구들과 한참을 달라도 다르구나
나 유아교사해도 되는 건가?
라는 충격과 나 자신에 대한 의문이 가득해질 정도였다.
교수님께서는 영아 발달 수업에서
신생아들의 '모로 반사' 영상을 보여주신다며
신생아의 영상을 재생해주셨다.
사방에서 너무 귀엽다며 폭발적인 반응이 쏟아져 나왔고, 나는 굉장히 당황하고 문화 충격을 받았다
왜냐면 나는 그 신생아 영상을 보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기'때문이었다.
오히려 저 조그만 아기가 대체 뭐가 귀엽단 거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유치원 교사 4년 차인 지금도 그건 여전하다.
나는 지나가는 아기를 보면 귀엽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부모님께서 참 힘드시겠다는 생각만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 아이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솔직히 5세 담임 때는 좀 힘들었다.
5세는 귀엽다는 게 최고의 장점인데 그렇게 귀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우리 반, 내 제자라는 책임감과 교사로서의 사명감으로 한 해 를 보냈다.
아이들을 사랑하지는 못했지만 한 명 한 명 '존중하며' 교사로서 최선을 다한 한 해를 보냈기에,
아이들이 귀엽지 않았다는 게 부끄럽지는 않다.
하지만 6, 7세 담임 시절에는 아이들이 진심으로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아무래도 교사로서 사명감으로만 임할 때와 달리,
내가 덜 힘들었다. 다른 건 그거 하나뿐이었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귀여워한다 해도, 나는 엄마가 아닌 교사이니 교사로서 해줄 수 있는 건 같았고,
그래서 다행이었다.
문제는 5세를 맡으면 '내 마음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교사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5세 수준에 맞게 인내심을 가지고 교육하지만, 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이 5세 아이들이 커서 6세가 되면 지나가면서 마주칠 때마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거다!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답은 '대화'였다.
5세는 사실 대화보다는 '발화'가 주된 말하기 패턴이다. 발달 특성상 그러하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커서 대화가 된다?
그러면 난 아이들과 더욱 친해지고 이 아이들은 내게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아이들과 소통할 때 가장 행복하다
는 걸, 4년 차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난 아직도 지나가는 아이를 보면 전혀 귀엽지 않다.
육아 예능을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분명 아이들의 '예쁜'모습만 편집한 것일 텐데도 아무 느낌이 안 든다.
대신 나와 소통하며 친해진 6,7세 아이들, 피아노 학원에서 지나가다 인사 주고받고, 조금씩 대화해본 초등학생 아이들은 너무 귀엽다.
아이가 귀엽지 않은 것은,
그래서 5세 반 담임이 유독 힘든 것은
그저 나와 5세반이 비교적 '맞지 않았을'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아이가 귀엽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죄의식을 내려놓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