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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Jan 09. 2023

유치원은 생지옥이다

나태지옥보다 한수 위

유치원에 입사하기 전 나는

바이럴마케터, 베이커리 전문점, 밀크티 전문점,

어린이 체험관, 테마파크에서 쉼 없이 일을 해왔다.


고용의 형태도

정규직, 비정규직, 파트타이머로 다양했다.

대학을 늦게 진학했기에 최연소 직장인으로,

학교를 닐 때도 파트타이머로 소처럼   왔다.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렵냐고?

감사하게도 아니다. 부모님은 내가 일하는 것을 

사회생활 경험 생각하셨고, 언제든 내가

그만두겠다 하면 경제적 지원을 해주실  있었다.


내가 진학보다 사회생활을 먼저 한 것은,

순전히 일이 재밌어서였다.

이제 와서 넓어진 시야로 보면 일을 하며 얻는

소소한 성취들이 별것 아니어도 날 행복하게 했다.

벅차도록 행복한 건 아니었지만

희로애락으로 충만한 건강한 일상이었다.

그 시절의 기억은 이제는 꽤 흐릿해졌지만

싱그럽고 청량했던 인상으로 기억하고 있다.




어느 날 대학에 진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진학한 전공이 유아교육!

시간이 흘러 졸업을 하고 자연스럽게

여느 유아교육과 학생처럼 유치원교사가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생지옥의 문이 열린 것이다.

앞으로 유치원 교사로서 살아갈 나날이 생지옥인

줄도 모르고 생글생글 웃으며 유치원에 입사했다.

그렇게 빠져나올 수 없는 생지옥에 입문했다.

소소한 일상 대신 매일 버거운 일상이 시작되었다.






사립유치원에서의 첫 해에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어마어마했다.

아무것도 몰랐기에 그게 어마어마한 줄도 몰랐다.

아무것도 몰랐기에 스스로의 자질을 의심했다.

아무것도 몰랐기에 그래도 살아서 나올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몰랐기에 다시 유치원에 갈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공립유치원에 오게 되었다.

당연히 여기가 훨씬 나을 줄 알고 노력해 왔는데

생각과 달리 여기는 빠져나가기도 어려운 곳이었다.

내 발목에는 정년보장이라는 족쇄가 채워졌다.

교육공무원이라는 안정성은

내 삶을 안정적으로 어둡게 만들었다.


아무리 좋은 옷이라도 나에게 안 맞으면 아닌 건데,

이 안정적인 어둠을 박차고 나갈 용기는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적은 인원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만났고 새로운 수업을 준비하는 것이 재밌었다.

혹시 교실 속 시간도 나에게 안 맞는 옷이었으면

단호하게 끊어낼 수 있었을까?


이렇게 망가졌는데도 나는 족쇄를 끊지 못했다.

공무상 질병 휴직을 승인받고 조금은 느슨해졌지만

더 이상 출근도 안 하고 유치원 일과 떨어져 있지만

이 족쇄는 투명색이 되어 내 발목을 조이고 있다.

이제 족쇄에 묶여있다는 것은 나만 알고 느낀다.





유치원을 생지옥으로 표현한 이유는,

나태지옥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느껴서다.

'신과 함께'라는 영화에 나오는 나태지옥은,
인생을 나태하게 허비한 사람들이 그 대가를 치르는 곳이다.
동그란 나태지옥에서 살기 위해 뛰고 또 뛴다
멈출 수는 없다. 멈추면 물에 빠져 죽는다.

유치원에서 1분도 허투루 쓰지 않고 일했지만,

성취감은커녕 아무것도 진전되지 않았다.

사람이 하루 종일 일만 하는데, 직장에서 생명의

의미를 찾지 못하니 당연히 불행할 수밖에.


아무리 열심히 동료들과 힘을 모아 일을 해내도

조금의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이전 상황으로 되돌아가지나 않으면 다행.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가스라이팅에 속아

넘어가기 일쑤였다.


 유치원은 나태지옥이고, 모든 교사들이 나태하지도 않은데 나태지옥을 려야 했다.

중간중간 날아오는 장애물은 날이 갈수록 늘었다.
나태지옥은 뛰기를 포기하면 뛰는 삶을 죽음으로 끝낼  있지만, 유치원엔 선택의 권한도 없었다.

뛰다 넘어져 물에 빠지면,
 의사와는 상관없이 건져져 다시 뛰어야 했다.


내게 유치원은 생지옥이다.
괴로워도 슬퍼도 힘들어도 아파도
 채로 달려야 하는, 멈출  없는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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