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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Jan 11. 2023

유보통합된다며???

전설이 현실로 다가오는 요즘

내가 유아교육과 학생이던 시절부터

전설적으로 내려오는 네 글자가 있었다.

바로 '유 보 통 합'

유아교육기관인 유치원과 보육기관인 어린이집을

통합한다는 것!


현실에는 없는 전설처럼 내려오던, '유보통합'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가 되고,

이제 동기들이 하나 둘 높아진 경력과 호봉으로

고민하는 이 시기에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다.

아니, 다가오고 있다.




유아교육학과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유치원 정교사 자격증과, 보육교사 자격증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 나 역시 그렇다.



유치원 정교사 교원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양성 과정의 수업을 듣다 보면 보육교사 자격증

취득 요건은 거의 갖춰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린이집으로 실습만 한 번 다녀오면,

자격증 두 가지를 가지고 졸업하게 된다.

이걸 우리 교수님은 '가성비'라고 부르셨다.

"유치원 교원자격증 따려고 수업 들었는데, 실습만 갔다 오면 보육교사 자격증까지 덤이잖아 이렇게 가성비 최고인 학과가 어딨 니?"

그렇게 내 인식 속에서 보육교사 자격증은

'그저 덤으로 얻은' 높은 가성비의 결과물 정도였다.

졸업 후 1년 간 학과사무실에 보육교사자격증도

수령하러 가지 않을 정도로...



누군가에겐 간절했을 보육교사 자격증이

나에게는 그저 종이 한 장일뿐이었다.

왜냐면 내 진로는 '유치원 교사'였기 때문이다.


유치원교사로서의 정년이 보장되는 유일한 곳,

공립유치원에 온 뒤로 보육교사 자격증은

이제 가지고 있을 이유조차 없는 종이가 되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쩌면 보육교사 자격증이 아니라
보육에 대한 전문성이 필요 없는 게 아닐까?




나는 정년까지 만 3-5세 유아의 교육을 맡을 것이고

만 3-5세 유아교육 분야의 전문가다.

(물론 나는 복직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하지만!)

유아들도 아직 어리기에 교육을 하는 과정에서

돌봄이 수반될 수밖에 없지만,

보육 전문성에는 관심 없었다. 안중에도 없었다.


적어도 현재 나는 분명 보육에 대한 전문성이 없다.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자격증이 있지만 보육업무를 수행할 능력은 없다.

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유아교육이 좋다.


당장 나를 0-2세 영아반의 교사로 투입한다면,

나는 아이가 울어도 왜 우는지 모를 테고,

기저귀는 갈 줄도 모르며,

왜 영아들이 함께 놀지 않는지를 알면서도 답답할

게 틀림없다.

말이 통하지 않지만 언어발달을 지원해주어야 할

텐데 어찌할지 모르겠고,

평소 아이가 거부 반응을 보이면 말로 설득하는데

말이 안 통하니 그 무엇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른이 될 것이다.

'보육교사'의 역할은 수행하지 못한 채...



나는 내가 영아 보육에는 소질이 없다는 것,

성취감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어린이집 실습에서 영아반을 담당했고 나는 절대

이 일은 못하겠다 결심했기 때문이다.



반면 유치원에서는 수업을 창의적으로 설계하고

아이들의 반응이 좋으면 참 기분이 좋았다.

아이들과 시시콜콜 나누는 사소한 대화도 즐겁고,

생활 중에 아이들을 단호하게 지도할 때는

에너지도 많이 써야 하고 머리가 깨질 것 같지만,

지도 후에 달라진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교사로서의 만족감이 피어난다.


그렇게 나는 평생 유아만 가르치고 싶었다.

그래서 보육교사 자격증을 없는 존재 취급했고,

아예 유치원에 말뚝을 박게 임용고시도 치렀다.

그리고 만 3-5세 유아교육에 필요한 전문성을 혹독

하게 길러왔다.

유아교육 및 발달 관련 이론 숙지는 기본,

교육청 멘토링 프로그램도 참여하고,

셀 수 없을 만큼 연수를 듣고 교육 서적을 읽었다.



그런데 요즘 '유보통합'이 현실로 다가올 것만 같아,

애써 쌓아 온 내 유아교육 커리어가 묻힐 것 같아,

한 순간에 '교사'에서 아이 돌보미가 될 것 같아,

솔직히 너무 두렵고 불안하다.

더 솔직히는 정신질환 관련 증상도 악화되었다.


물론 영유아기 교육은

미래 인적자원을 위한 투자의 개념으로도,

아이들이 자라 행복한 국민이 되기 위해서라도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영유아 교육의 발전을 위해 체계적으로 유보통합이

실시되는 게 세월의 흐름에 따른 긍정적 변화라면,

내가 유아교육만 하고 싶다고 해서 거스를 수 없는

법이다.


그런데 언뜻 봐도 지금의 유보통합은 겉만 통합,

내부의 문제들은 모두 현장의 혼란으로 떠안게 될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든다.

뭐랄까 본격적으로 교육이 '유보통합'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지고, 어른들의 이해관계로 이루어지는 것

같은 불안한 예감.




물론 나는 영아반을 맡기 싫고,

유아들을 위해 유아교육 전공실력만 가지고 선발된

공립유치원 교사가 영아의 보육을 맡아야 한다면,


임용고시를 치러 선발된 교사와

온라인 학점은행제로 취득한 보육교사 자격증을

지닌 교사가 같은 선상에 서게 된다면,

마음속에 작게 품고 있는 복직의 꿈을 버리고

당장 의원면직 서류를 쓰러 갈 것이다.


이런 내 마음을 기득권(교육공무원)의 이기적인

행태로 보는 것이 타당할까?

유아를 가르치고 싶어 유아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의

교사가 되기 위해 자격을 갖추고,  정당한 과정을

거쳐 교육공무원의 지위를 얻게 된 것인데

이 마음을 기득권층의 이기심으로 생각한다면

그것도 공정하지 않은 것이다.

공정하게 얻은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니까.


자격을 갖추고, 노력하고 능력을 갈고닦아

정당한 과정을 통해 얻게 된 지위를 주장하는 게

이기적이니 내려놓아야 한다 요구한다면.


이건 공정이 아닌 공산이지 않을까?

왜 많이 노력했는데 똑같이 나눠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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