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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Nov 16. 2022

실수하면 입시비리다!

공포의 공립유치원 유아모집

공립유치원 교사들에게

(다 바쁘지만) 언제가 제일 바쁘고 힘드세요?를

묻는다면 11월이라는 대답이 많이 돌아올 것이다.


어찌 보면 의외의 결과다.

가정의  5월이 역사적, 전통적으로 유치원 교사들이 바쁜 시기가 아닌가??

물론 11월 말고 다른 월이 더 힘든 교사도 있을 테고,

다 힘드니까 못 고르겠다는 반응이 많을 것 같다.





11월이 유난히 힘들고 바쁜 이유는  하나다.

유초중고를 통틀어 오직 유치원에만 존재한다는!!

다른 일과 급이 다른 초대형 블록버스터 행정업무

유아모집

처음학교로를 통한 유아모집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처음 학교로 시스템이 오픈하기 전인 10월 말부터,

재취원 수요조사를 시작으로

유아모집의 길고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다.


재취원 여부를 조사하고 서약서와 증빙서류를 받고,

증빙서류의 진위와 누락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서류를 외울 기세로 보고  살펴본다.

옆반 선생님과 바꿔서 여러 번 또 확인한다.

학급수가 많은 유치원은 다 같이 모여 한번 더 확인!


서류 확인을 잘못했다가는, 서류가 한 장이라도

누락되었다가는 대형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의도치 않은 입시비리랄까....






재원생의 재취원 여부, 어느 과정으로 재취원하는지

증빙서류를 완벽히 갖추었는지 확인이 되면

겨우 처음 학교로 모집요강에 올릴 '모집인원'을

계산할  있다. 조금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기에 

교무부장을 비롯한 모든 교사가 초예민 상태...!


이 사연을 들으면 보통 이런 반응이 돌아온다.

입학처 일을 왜 교사가 다 해?

그러게나 말이다...

이걸 왜 교사들이 수업 준비를 미루고 하는 건지

평생 이해 못 할  같다.





그렇게 재취원 과정이 끝나면. 이제 진짜 시작이다!

모집 요강을 만들기 위해 유치원의 모집 전형을

회의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

어떤 가정의 어린이를 우선순위로 선발할 건지,

방과 후 과정 증빙 서류는 어떤 방법으로 받을지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 있는 모집요강의 글자,

숫자, 하나하나를 회의를 빙자한 통보로 결정한다.




담당자(우리 유치원은 교무부장이다)는

이 모집요강을 눈이 새빨개지도록 글자 하나,

숫자 하나, 점 하나 유의해서 작성한다.

그리고 원감, 원장님의 결재를 거치는데,

단어와 조사와 줄 간격을 수정하라는 요청이 온다.

우리 유치원은 내용을 통째로 바꾼 적도 있다.


수정하라고 해서 수정했는데,

수정한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모든 책임은 담당자 몫이다.

결재 과정에서 직접 수정하시면 기록이 남는데,

굳이 교사에게 고쳐서 다시 결재받으라고 하니까^^

수정시켰다는 기록이 없다.....





처음 학교로 시스템에 모집요강을 탑재했다면 !!!

, 일이 끝났다는 게 아니라 모집요강은 이제  이상 손댈  없다는 이야기다!!! 수정 불가

만약에 그 모집요강에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가 상당히 커졌다면....

시킨 대로 일한 죄뿐인 선량한 담당자는 이다.

교육공무원인 교사는 철밥통이긴 한데,

꼬리가 잘리는 철밥통 기차다.

일 생기면 꼬리칸이 안녕인 건 공직사회 공식 룰...!





이제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질려서 더 이상 읽기 싫으실 것 같다.

글 쓰고 있는 나도 질리기 때문이다...... 징그럽다....



이제 교사들은 공무원답게 '유아모집 내부규정'을

수립해야 한다.

물론 작년 버전이 있지만 대대적으로 수정한다.

올해 모집요강을 고쳤기 때문....

이쯤 되면 유치원 이름을  '수정 유치원'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유아모집 시즌 내내 교무실은 콜센터다.

전화소리가 뇌를 울릴 기세다.

교무실에 있는 누구든 문의사항 전화를 받게 된다.

네가 받네 내가 받네 할 찰나도 없이 정말 전화가

많이 오기 때문이다....


물론 문의사항에 답변할 때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정확하게 답하지 않으면 민원 받는 건 순식간이다.

그래서 우리 유치원은 답변사항을 파일에 입력해

공유하곤 했다....

표면적으로는 문제 발생 시, 같이 해결하기 위해

작성하는 파일이었지만, 범인 찾기에 가까운 느낌.

역시 꼬리칸은 서러워





안 그래도 힘들고 업무가 대형인데,

스트레스까지 어마어마했던 유아모집은

내가 휴직한 올해, 더욱 과열 양상을 띠게 되었다.

교사들은 유아모집 홍보 현수막, 배너, 팜플랫,

전단지, 영상 등 온갖 홍보 아이템을 직접 제작한다.

수업 준비 대체 언제 하는지.... 의문이고 짠하다!

그 의문을 넘어 관리자는 대체 뭘 하는 건지도 함께.




작년부터 유아모집이 정원에 비해 현저히 안 되면

학급 감축을 실시하겠다는 경고가 날아왔고,

올해 그 경고가 현실이 되었다고 한다!


교육청은 유아모집이 안 되는걸 유치원 탓으로

교육지원청에서는 뭐라도 더 하라며 독촉하고

관리자는 학급이 감축되는 것이 교사의 문제인 양

교사들에게 홍보할 방안을 내놓으라 한다.

역시 공직사회의 철밥통 기차란.....

출생인구수가 적어 유아모집 인원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데, 역시 또 꼬리칸 교사 책임인가 보다.




공립유치원 교사들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유아모집과정을 다시  씻고 봐도 유아교육이랑은 

하나도 상관없어 보인다.




유치원처럼 모집요강을 내고 전형에 맞게 모집하는

대학교는, 입학처가 따로 있다.

대학 입시의 특성상 순위를 정해야 하기 때문에

교수들이 전형 과정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지만

교수들이 입학업무를 한다는 건 상상도   없다.


그런데 왜 교사들은 입학업무를 하는 걸로 모자라,

모집요강 수립, 홍보, 책임까지 져야 하는 걸까?

그리고 이게 당연하다는 게 정말 놀라운 일이다.






교사의 역할은 법령에 따라 교육하는 것,

원장의 역할은 유치원 운영 총괄

원감의 역할은 원장 역할 보좌, 유치원 운영 관리다.


교사와 관리자는 애초에
하는 일과 직급이 다른 사람이다!

관리자는 교직생활 중에 승진점수를 채울 만큼

업적들을 남기고, 석사 학위 이상은 필수,

각종 교육청 사업에 참여하며 성과를 내며

교육경력도 어마어마하고, 평정까지 잘 받아야

앉을 수 있는 엄청난 자리다.


그 엄청남의 대가로 관리자라는 빛나는 명예와

무거운 책임을 함께 져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명백히 유아모집은 교육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유치원 운영 관련 행정 업무다.


교사들은 교수들이 입학 과정에 일부 참여하듯,

필요시 유아모집의 일부 과정을 담당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의 공립유치원은....

관리자는 본인에게 민원이 튈까 규정을 이리저리

바꾸기에만 혈안이고,

실무도 교사, 서비스(상담)도 교사, 홍보물 제작 및

홍보까지 교사의 몫이다.

심지어 이제는 유아모집 미달의 책임까지 넘긴다.





이건 마치 회사로 치면
인사팀 팀장급이 해야 하는 큰 업무를
재무팀 사원이 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책임도 사원 몫.

그저 시킨 대로 열심히 했는데

입시 비리를 저지른 공무원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야말로 '공포' 유아모집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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