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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Dec 07. 2022

'아이들을 위해'라는 함정

유치원의 가스라이팅

내가 유치원 교사로 재직 중이던 시절,

출근하기 싫은 것을 넘어서 공포를 느꼈던 시절,

'나'라는 인간을 유치원에 온전히 빼앗겼던 시절,


그 공포와 무력함을 미처 다 드러낼 수는 없었지만

그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의 흔한 투정인 양,

나의 말속에는 유치원에 대한 짜증만이 가득했다.

짜증 내던 내게 우리 아버지는

어린이들이 있어서 네가 거기 있는 거야

라고 말하곤 하셨다.




그래. 아버지의 말이 백번 맞는 말이었다.

유치원에 아이들이 있기에,

아이들의 발달을 지원하는 교사가 있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교사였으니

당연히 유치원에서 행해지는 내 모든 말과 행동이

 '아이들을 위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치원 교사에게 '아이들을 위해'라는 말은

모든 것을 정당한 것으로 둔갑시키는 함정이었다.





 시작은 유아교육과 시절부터다.

학창 시절 학업에 대한 압박을 받지 않고 자랐고,

대학생 활보다 사회생활에 관심이 많아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을 선택했다.

내가 그 시절 경험한 직장인의 삶은 나쁘지 않았다.

당연히 출근하기 싫고, 일하기 싫었지만 내 업무만

잘 소화해내면 되니 삶을 뺏길 정도의 스트레스는

없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사회생활을 하던 중,

나만의 '전공'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전공이 취업시장에서 잘 활용되기를 바랐다.

그렇게 나는 조금 늦게 유아교육학과에 진학했다.


그런데 진학한 유아교육과의 분위기는 뭔가 묘했다.

유아교육과만의 문화가 공고히 존재한달까...?

대학 시절엔 지금만큼의 시야가 존재하지 않아

정확히 무엇이 이상한 지 몰랐지만,


행복이나 청춘보다는 우여곡절로 가득했던 20대를

지나고 보니 내가 다녔던 학교의 유아교육과는

'유치원 문화의 고정된 틀을 주입시키는' 곳이었다.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유치원에서 원하는 교사상'를 추구했다.

그 교사상은 애석하게도 아이들의 발달을 유능하게

지원하는 교사가 아니었다.






"그저 말 잘 듣고, 시키는 것 다 하는 교사"

실제 현장에 와서 느낀 유치원에서는

이런 교사가 선호되었다.

이런 교사는 양성과정에서부터 현장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교사로 평가되었다.


정말 원장님 말씀 잘 듣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장님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원에서 추구하는

스케줄에 맞춰 무리하게 하루 일과를 운영하고,

학부모님께 듣기 좋은 사탕발림만 하는 것이

과연 '아이들을 위한' 교사일까?






유아교육계에서는 그렇다.

심지어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공립 유치원에서도...!

유치원 교사들은 양성 과정에서부터 윗사람의

입맛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이상적인 교사 상임을,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말에 속아

교육받아 왔고,

이 문화는 십수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든 지시가 '아이들을 위해'라는 
말로 포장되어 전달되기 때문이다.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아이들을 위하지 않는'
교사가 되는 셈이다.
'아이들을 위해' 일 년 치 사진 앨범을 만들어라!

확실히 학부모님과 유치원 홍보를 위한 일이다.


'아이들을 위해' 아파도 참고 수료까지 버텨라!

아이들은 선생님이 아프다는  귀신같이 안다.
몇몇 아이들은 눈치를 기도 한다.
교사는 아프니 자신도 모르게 예민해진다.
아프면 당연히 힘이 드니 교사의 역량을 백 프로 
발휘할  없다.
교사가 죄의식을 가진다. 당연히 움츠러든다.


'아이들을 위해' 보여주기   행사를 준비해라!

보여주기 위해 아이들은 아이돌 연습생이 된다.
교사는 행사 준비를 위해 이벤트 업체로 잠시
직종을 바꾼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어째 아이들의 즐거움보다 화려하게 보이는 것이 중시된다. 역시 이건 홍보용이다.
교사는 행사 준비로 야근을 해서 피로하며, 덕분에 수업 준비할 시간이 없어 수업자료가 미흡하다.



'아이들을 위해' 온갖  일을  해내라!

유치원 교사들은 결국  해낸다. 그게 문제다.
마당 잡초 뽑기, 수영장 대청소,  나르기, 안무 연습, 물건 포장, 설거지, 빨래,  짓는 곳도 있다.
상식적으로 이게 아이들을 위한 걸까?
 잡일을 교사가  하면 필요 인력이 줄겠지.
그럼 남는 인력비는? 교사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교사의 교육활동 연구시간을 빼앗아 노동을
시키는 격이다.


할 말 하는 교사는 되바라진 인성을 가진 교사다.
'아이들을 위해' 순하고 착한 교사가 되어라!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아이들을 존중하려면,
교사 스스로 개성을 드러내 본 적이 있어야 한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요즘 아이들을 위한' 교사다.


'아이들을 위해' 교사는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

교사는 우리 반 '아이들과 교육'만 책임지면 된다.
'아이들을 위해' 유치원 운영 전반의 일까지 협력하라는 건, 사실상 책임소재를 교사에게 주는 거다
모든 것을 책임지면 교사는 힘들다.
교사가 힘들면, 아이들도 힘들다.


'아이들을 위해' 교육활동을 연구하는 것은

 에너지와 역량이 요구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유치원 교사들은 연구보다는

'아이들을 위해' 지시에 잘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게 이 바닥에서는 바람직한 교사가 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니까.





내가 애정 하는 유아교육의 현장이 이렇다는 게

참 답답하고 씁쓸하다.

언제 복직할지, 복직할 수는 있는건지 모르지만

나는 '말 안 듣고 이기적인 교사'로 살기로 했다.




교사가 행복하면 아이들은 행복할 것이다.
아이들이 행복하면 부모님은 복할 것이다.
부모님들이 행복해하면 기관장도 행복하다.

유아교육과 학생도 생각해낼 수 있는

이 간단한 명제를 대체 어느 유아교육기관에서

경험해볼 수 있을까?

내가 근무하지 않는다 해도,

정말 '아이들을 위한' 유아교육기관의 소식을

자주 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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