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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Dec 23. 2022

공무상 재해 승인 유치원 교사

의도치 않은 유니콘

공무원의 공무상 재해란, 아래와 같다.

공무원의 공무 집행과 관련하여 발생한 질병 또는 부상, 그리고 그 부상 또는 질병으로 장해를 입거나 사망한 경우 공무상 재해로 본다. 다만 공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없는 경우에는 공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

나는 공무상 재해를 무려 '정신질환(우울증)'으로

승인받은 교사다


근무 지역에 도는 말로 내가 정신질환으로 공무상

재해를 승인받은 두 번째 교사라는 카더라도 있다.

그렇게 나는 공무상 재해(질병)를 얻은

'공상 공무원'이 되었다.




공상 공무원이 된 이후로 나는 더 마음 편히 아프고

치료와 내 삶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큰 감사함은, 죄책감이 줄었다는 것이다.

사람 간의 모든 일은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모든 이의 생각과 행동의 결과가 얽혀 이루어진다.


항상 나에게 찾아온 아픔이 나 때문만이 아니라고,

나만의 잘못이 아니라고 되뇌었지만

유치원에서의 사건 이후로 병을 얻고

능력을 잃고, 삶이 완전히 망가진 건 나뿐이니...!

솔직히 억울한 마음도 컸지만 억울해할수록

오히려 화살은 나 자신에게 돌아왔다.


그렇게 끝없는 자기 검열과 죄책감에 빠져 살았다.

쉽게 부정적인 사고로 연결되는 우울증 환자답게





하지만 공무상 재해 승인 이후로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이건 국가가 인정한 거야."

"내 잘못 만으로 이렇게 된 게 아니야."

"교육공무원으로서 근무하다 생긴 사고일 뿐이야."

"국가의 보상을 받으며 당당히 쉬어도 괜찮아."


난 더욱 마음이 편안해졌고,

몸은 출근하지 않은 자유 상태였지만

마음은 항상 죄의식과 유치원에 얽혀있던 상태에서

벗어나 진짜 자유를 얻은 기분이다.


지금 내 자리에서 하고 싶은 것들이

화수분처럼 퐁퐁 떠올라 상상만으로 마음이 놓인다.

나 아직 안 죽었구나.
절망할 것 하나 없다!!!!!!!!




더 충분히 쉬고 고민할 시간이 주어졌다.


재해를 인정받고, 공무상 요양을 얻게 된 덕분에

나는 '공무상 병가 180일'을 추가로 받게 되었고,

최대 휴직기간도 무려 1년이나 늘어났다.

일반 질병휴직은 최대 2년이지만,

공무상 질병휴직은 최대 3년이다.


덕분에 나에게 주어진 휴직 기간이 길어졌고,

병이 낫고 복직할 수 있겠다는 희망도 생겼다.

그리고 설령

유치원에 대한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증상이 완화되어도 복직은 어렵다는 소견을 받으면

근무지를 옮기는 방법을 찾거나.

건강하게 근무할 수 있는 다른 일을 고민해 볼

충분한 시간이 생겼다.


남들이 보기에는 세금 아깝다고 여기겠지만

교사의 당연한 권리다.

나도 휴직 중이지만 성실히 세금 납세 중이고,

일하다 피해를 입은 근로자에게 보상을 제공하는

산재나 다름없는 공무원만의 권리이다.


솔직히 다들 임용 시험에 목을 매는 이유도

이런 권리를 얻기 위함이 아닌가?


더 당당히 쉬고,
이 몸 상태로 할 수 있는 정도로만
도전하며 내 미래를 충분히 고민해볼 거다.




의도치 않게 희망의 '유니콘'이 되었다.


공립유치원을 포함한 공립학교에서 정신질환을

이유로 공무상 재해를 인정받은 건은 찾기 드물다.

왜냐하면 정신질환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으니까'

정신과 의사도 치료와 요양에 필요한 기간을

확언할 수 없고,

신체질환처럼 눈에 자료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이유 정신질환으로 공무상 재해 신청을

해도 승인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공립유치원에선 공무상 요양제도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르는 선생님들도 많다.


유초중고를 통틀어 가장 몸을 많이 쓰는 직군이라

공무 중에 다치는 일이 흔하지만,

아픈 것도 죄가 되는 유치원의 조직문화가

병가 내는 것조차 마음이 무겁게 만들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의 경우는 특히 더 상황이 좋지 않다.

교사가 정신질환이라는 소문이 나면,

교사 자질이 없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기에

그리고 퇴직하는 그날까지 정신질환으로 휴직했던

교사라는 꼬리표가 평생을 따라다니기에..!


정신질환이 있는 교사들은 대부분 남몰래 참으며

방학이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거나,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면 질병휴직을 한다.

심지어는 "너만 힘드니? 우리 다 힘들어"라는 조직

분위기에 휩쓸려 몸이 고장 날 지경이 될 때까지

자신에게 정신질환이 생겼음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현장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울증 교사임을 당당하게, 어쩌면 뻔뻔하게 밝히고

공무상 재해까지 승인받은 내 행보가

'유니콘'같은 존재가 된 모양새다.


가끔 내 영상과 글들을 주변 교사들이 보고 있다는

말을 친구로부터 전해 들으면 깜짝 놀라곤 한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취미로

그저 나답게, 유치원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난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영향력이 있다니....!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제 나에게 아주 작고 소중한 영향력이 생겼으니

더 뻔뻔하게 우울증 교사의 투병기를 드러낼 거다.


혹시, 나와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선생님이
계시다면 용기와 위로를 드리고 싶다.
"당신도 쉬고 치료받을 권리가 충분하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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