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내 몸에 적응을 못 했다
유치원 근무 시절, 심각한 식이장애를 겪은 나는
당시 정상적인 식사를 하지 못했다.
고작해야 고구마 으깨 먹기
밥 반 숟갈을 백번 씹어 삼키기
그나마도 이건 집에서나 가능했다.
내 무의식이 집 밖은 모두 위험하다 인식한 건지,
출근해서는 겨우 액체 정도나 마실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긴 식이장애가 시작되었다.
'먹는 즐거움'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의무적으로 씹어 삼키는 끼니는 살기 위함이었고
조금도 행복하다거나,
기본적 '식욕'이 채워진 느낌이 들지 않았다.
물론 식욕 자체가 없었기도 하다
휴직을 하고 몇 달이 지난 후에야 적은 양이지만
일반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쉰 지 곧 1년이 되어가는 지금은 꽤 많이 나아져
바깥에서 소수의 사람을 만나
밥도 먹고, 디저트 타임까지 가질 수 있다!!!
그렇게 조금의 살이 붙었지만, 더 이상 찌지 않는다.
왜냐하면 과장 조금 보태서,
'밥맛없는 언니들'에 나가도 될 정도로 먹기 때문에!
그래도 아예 못 먹던 시절에 비해서야,
눈치 보며 억지로 먹고 토해내던 시절에 비해서야,
매우 행복하고 건강한 소식좌의 삶인 건 틀림없다.
하지만 조금밖에 먹지 못한다는 건 분명 사회생활
에서 눈치가 보이는 일이었다.
다행히 휴직 중이며, 아무 사람이나 만나지 않고,
편안한 소수의 사람들만 만나기 때문에
밥맛없게 조금만 먹어도 주변에서 다 이해해주어
요즘은 불편함 없이 대인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래도 아직 사회생활이 무리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내가 44 사이즈라는 것을
이전의 삶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사람이라는 것을
내 몸은 66 시절보다 많이 약하다는 것을
내가 아직도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직도 옷을 살 때 매번 사이즈를 실패하거나,
피팅룸에 수없이 드나들며 여러 사이즈를 입어본다.
손바닥만 한 옷, "이걸 누가 입어?"싶은 xs옷.
그게 내게 맞는 사이즈였다.
프리 사이즈는 체구가 작은 44들에겐 어울리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결국 입지 못하는 옷.
호기심에 들어간 자라 키즈 매장에서 큰 사이즈의
옷이 내 것처럼 딱 맞는 걸 보고 현타가 왔다.
아 나는 정말 작은 존재가 되었구나
살이 갑자기 많이 빠지면 추위를 탄다더니,
44 사이즈로 살아가는 겨울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도 안 한 것 같은데 너무나도 춥다.
이미 남들이 티셔츠를 입을 때 아우터를 입었고,
부쩍 추워진 요즘은 내복에, 경량 패딩을 여러 겹
껴입고 그 위에 또 롱 패딩을 입는다.
그래도 나가면 추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사이즈뿐만 아니라 체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안 그래도 24시간 중에 일부만 정상적으로 지낼 수
있는 저질 체력에 추위까지 더해지니,
바깥에 나가지 않아 더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난 이 겨울을 어떻게 버텨내야 할까?
언제쯤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을까?
얼마나 더 나아져야
하루를 온전히 내 삶으로 살 수 있을까?
식이장애의 나비효과,
막연히 날씬하고 예쁘고 행복할 줄만 알았던
44 사이즈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다.
사이즈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잘 먹고, 건강해야 행복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