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두 번 죽이는 말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잊히는 것 같아 슬프지만,
절대 발생해서는 안 될 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후
참사의 생존자들이 받게 될 정신적 충격,
그리고 충격으로 인해 발생하게 될 아픔의 연장선..!
이는 분명 예견된 일이었다.
하지만 예견되었음에도 한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지 않은 결과이지 않을까?
정신적 충격을 겪고, 지금도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정신질환자이면서
상담심리를 전공 중인 공립유치원 교사로서,
최근 이태원 참사에서 친구를 잃게 된 고등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저 안타깝고, 또 안타까웠다.
어른들은 정말 극단적 선택을 한 그 아이를
그렇게 보낼 수밖에 없었을까?
참사가 일어난 후,
꾸준히 생존자에 대한 트라우마 지원이 필요함이
강조되어 왔다.
생존자들의 트라우마가, 감히 그 사건을 경험하지
못한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걸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인정했다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사회적인 논의와는 달리,
실제 생존자들에 대한 트라우마 지원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이루어졌을 지에 의문이 들었다.
본인이 필요에 따른
이런 생각이 좀 더 굳건하고
치료를 받겠다 이런 생각들이 더 강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이 발언은 환자이자 교사인 내게 이렇게 들렸다.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내가 대신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태원 참사에 비하면 견줄 수준도 안 되는
미미한 트라우마를 겪은 성인인 나도,
방 밖으로 나오는 데만 3개월이 걸렸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고
솔직히 어떻게 하면 이 24시간의 고통을 끊어 낼 수
있을지, 머릿속에는 부정적 사고만이 가득했다.
그게 바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의 상태이다.
정신적 충격을 받고, 그 충격을 이겨내는 것은
'굳건한 생각' 정도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트라우마를 겪은 상태에서는 이미
정상적인 합리적 사고가 어렵기 때문이다.
인지적 노력으로 스스로 이겨내는 것이 힘들기에,
제도적으로라도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은 아이에게
적극적인 상담과 심리적 지원을 해주어야 했다.
그게 어른들이, 아이를 위해
국가 수준에서,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에게
마땅히 지원해주어야 하는 일이었다.
극단적 선택을 취한 그 가여운 아이에게는
자신이 굳건한 생각으로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먼저 적극적으로 어른들에게 보호받고
심리적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
과연 그 아이에게 트라우마 회복을 위한 지원이,
심리적 개입이 충분하고 적극적으로 이뤄졌을까?
그 아이의 주변에,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친구들의 사고는 네 탓이 아니야"라고 지속적으로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사람이 없었을까?
부모님이 그 역할을 충분히 해주기 어려웠다면
적어도 학교에 상담교사 한 명만 있었더라도,
그 아이처럼 직접적인 트라우마를 경험한 학생을
돌봐줄 수 있었을 텐데.
이번 고등학생의 극단적 선택은
그 아이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
아이를 지키지 못한 어른과 국가에 책임이 있을 뿐.
이제 그 아이의 극단적 선택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한 아이 주변 소중한 사람들의
정신건강이 위험해졌다.
제2의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지 않으면 좋겠다.
지금도 학교에 몰래 숨어서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을 아이들이 있을 텐데 안쓰럽다.
학교의 탓을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잘못이 없다.
나도 담임교사였던 사람으로서,
담임교사는 학급 전체를 총괄하고,
담임교사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에 학급에 있는
개별 아이들의 모든 아픔을 알아채기 어렵다.
극단적 선택의 피해자가 학생이었다는 이유로
학생에 대한 모든 일을 학교의 책임으로 돌리는 건
비약이다.
이렇게 정신적 충격이 난무한,
살기 힘든 세상에서
국가의 미래인 아이들의 정신건강은 반드시 국가가
그리고 어른들이 지켜주어야 한다.
일단 아이들이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진 성인으로
자라도록 지원해야 하는 게 어른의 의무이니까.
아이들의 정신건강과 전인 발달을 위해서!
심리와 상담 분야의 전문성이 보장된 상담교사가
학생에 가장 빠르고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인
학교에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학교는 아이들과 밀접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공간이니 학교에 전문상담교사가 있다면
빠르게 심리적 피해학생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생각이 굳건했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무책임한 태도는 어른답지 못하다.
정신적 충격을 입은 아이들을 가정 차원에서
지킬 수 없다면, 학교에 있는 전문 상담교사라도,
전문상담교사의 역량으로도 부족하다면,
국가 차원에서 아이들을 지켜내야 한다.
그게 마땅히 '어른과 국가'의 책임이지 않을까?
참사로 인한 2차적인 사고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게,
하필 미성년자인 학생이 포함되었다는 게,
모든 것은 예상된 결과였지만 막지 못했다는 게,
어른으로서 교사로서 같은 정신질환자로서
그저 안타깝고 비통할 뿐이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누가 뭐라고 말해도 넌 아무 잘못이 없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