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약에 지배당하는 걸까
얼마 전 대학원 학기가 마무리되는 과정 중에
한 학기 동안의 피로가 몰려온 것인지
아니면 우울증의 악화인 것인지
하루 종일 누워 또 무기력함에 휩싸이게 되었다.
누워서 자고 깨고를 반복하며,
그렇다고 푹 잔 건 절대 아니었다. 조치가 필요했다.
이번 무기력이 찾아오기 전,
상태는 좋았다. 이 정도면 세상 살만 하다 생각했다.
당연히 아직 남들보다 에너지가 적어
하루를 12시간밖에 제대로 쓰지 못했지만,
알차게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놀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내가 '꽤 나아진'것으로 착각했다.
완벽한 착각이었다.
약이 과해서 지나치게 늘어지는 게 아닐까?
집중이 오랜 시간 되지 않아. 뇌가 너무 느려
약을 줄여야 하는 걸까?
고민 끝에 지난주에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렸고
본인이 최근 상태가 좋았다고 느꼈다면 현재
상태에 약이 너무 과해 힘들 수도 있다고 하셨다.
우리는 '파록스씨알정' 한 알 감약에 도전했다.
파록스씨알정은 공황 증상을 억제하기 위한 용도로
복용하고 있었다.
주로 대중교통이나, 사람이 아주 많은 실내에서
숨이 답답하고 옥죄는, 구역감이 느껴지고, 눈앞이
잠깐씩 뿌예지곤 하는 공황 증상을 겪고 있었는데
이젠 종강했으니!
신촌까지 멀리 버스를 타고 이동할 일도 없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일도 훨씬 적을 것이고,
일주일의 대부분은 집과 집 근처에 머물 것이니
파록스씨알정 감약을 도전한 것이다!
결과는 대 실패다.
집, 집 근처, 한두 명의 친구를 동네에서 소소하게
만나는 일 정도는 약이 없어도 충분히 가능했다.
문제는 좌석이 꽉 찬 대중교통, 사람이 많은 복합
쇼핑몰을 가는 것 등이었다.
모두 내게 맞춰달라고 하기에는 친구들이 불편을
감수해야 했고, 나도 슬슬 약을 줄여나가고 싶어서
지난 주말 친한 친구와 복합 쇼핑몰을 다녀왔고
들어가자마자 내 모든 에너지는 빨려나가고 말았다
사실 친구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조차
귀로는 듣지만 뇌로는 잘 들어오지 않았달까.
생각보다 약이 없을 때의 나는 많이 약했다.
그리고 여전히 공황 증상이 고통스러웠다.
다행히 친구들이 양해해주어 쇼핑몰 밖으로 나와
시간을 보냈고, 외곽 쪽을 검색해 찾아간 카페에도
사람이 꽤 많았지만 그 정도는 괜찮았다.
집에 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또 미미한 공황 증상을 느끼며 생각했다
약 한 알의 힘이 이렇게 대단하다니
내가 지금 복용 중인 약들이 새삼 무섭게 느껴졌다.
나는 겉으론 많이 괜찮은 듯 보여도 사실 아니었다.
약이 나를 잘 조절해주고 있었을 뿐.
약에게 나 자신도 깜빡 속고 있었을 뿐이었다.
오늘 나는 다시 병원 진료를 예약했다.
파록스씨알정을 처방받기 위해서.....!
집에서 혼자 또는 가족들과만 있으면 괜찮지만
이제 더 이상 우울증으로 내 일상을 잃고 싶지 않다.
약의 무서운 힘을 빌려서라도,
할 수 있는 만큼의 활동을 하고, 성취를 얻고,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넓게 보고 싶다.
약에게 지배당한 삶이지만,
어찌 보면 약으로 해결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약을 줄이겠다는 내 조급함은 어쩌면
내 몸 상태를 배려하지 않는 행동일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