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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Nov 18. 2022

육아 난이도 최상 딸내미

너 같은 딸은 절대 낳지 말아라

내가 태어난 후,

우리 엄마는 하던 일을 그만두셨다.

물론 엄마는 당시에 일하는 게 질려서 그만하고

싶었다고 하셨지만,


우리 엄마가 경단녀가 된 이유는 딱 하나다.

딸의 육아 난이도가 최상이었다.

나는 너무 돌보기 어려운 아이라,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까다로운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주변 환경의 변화에 몹시 예민했고,

예민했기 때문에 일명 '등 센서'가 아주 잘 작동해서

재워서 눕혀 놓음과 동시에 울어재끼는,

아주 엄마를 힘들게 한 딸이었다.




나는 당시 외갓집의 유일한 손녀딸이었기에,

(지금도 날 빼곤 모두 남자 사촌들 뿐이다)

예쁨을 한 몸에 받았고,

이모, 삼촌, 숙모 할 것 없이 날 예뻐해 주셨지만


육아 난이도 최상인 나는

엄마, 할머니, 막내 이모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안기거나,

몸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울어재꼈다고 한다.





까다로운 기질의 나는 예민할 뿐만 아니라

겁도 아주 많고 낯도 심하게 가렸다.

타고난 기질이다 보니 지금도 그렇게 다르지 않다.

그저 어른답게 괜찮은 척하는 방법을 익혔을 뿐!


처음 가 보는 공간에는 아예 들어가려 하지 않아서

엄마를 꼭 붙들고 엉엉 울기 일쑤였고,

친숙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엄마 뒤로 숨었다.

"비켜주세요"라는 말을 못 해서 혼자 가만히 서서

울고 있는 일은 일상이었다.





이런 까다로운 기질의 내가

겁이나도 꾹 참고, 낯설어도 웃으며 다가가고

여러 사람이 불편해도 하나도 티 내지 않고,

상대가 누구라도 하고 싶은 말은 똑 부러지게 하는

작지만 단단한 어른으로 자라난 건


다 엄마의 덕이다.

우리 엄마의 인내심은 바다와 같이 끝없고,

순한 기질에 따뜻하고 다정한 성격, 아름다운 말투,

조금도 모나지 않은 고운 마음을 가졌다.

 이런 엄마를 '마더 구레사'라고 부른다.

엄마의 성이 구 씨라서 이렇게 붙여보았다...!





솔직히 우울증으로 휴직을 한다는 게 두려웠다.

요즘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자신들이 불리한 상황이 되면,

내 정신질환을 이유로 나를 깎아내린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비정상인 사람인 것처럼...!


이런 두려움을 말하지 않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역시 엄마는 다 아는 법!

마더 구레사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아빠는 네가 교사를 그만두는 것도 좋아."

그렇게 용기가 생겼다.

우리 엄마 아빠가 괜찮다는데 뭐 어쩌라고!!!!!!





그렇게 나는 지금 내가 교사인데 '우울증'환자라는

것을 당당하게 밝히고, 오히려 더 드러내며 산다.

누구라도 이렇게 당당한 모습을 드러내야

몰래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수많은 선생님들도,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나를 보며 마더 구레사는 요즘 행복해하신다.

비록 많이 아프지만, 유치원 다닐 때보다 훨씬

당당하고, 겁내지 않고 하고 싶은 것들을 도전하는

모습이 기특하다고 하셨다.

엄마는 네가 겁내지 않고 이것저것 도전하는 모습이 훨씬 보기 좋아.
앞으로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유치원 교사, 공무원 싫으면 그만해도 돼.
너는 그만 참아야 덜 아파질 거야....!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닮은 딸은 절대 낳지 말아라
힘들어.
엄마는 내 딸이 그만 힘들었으면 좋겠어



나는 더 이상 힘들게 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엄마가 힘들게 키운 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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