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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Dec 21. 2022

29.9살을 보내며 생각합니다

20대는 이 정도로 충분해

교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어린 나이도 많은 나이도 흠집이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를 밝히는 것이 항상 어색했다.


나는 현재 29.9세다

내가 처한 특수한 상황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아쉽기보다는 후련한 마음이 더 크다.

20대는 이 정도면 충분히 즐겼고 이뤄냈고 아팠다.




나의 20를 돌이켜보면

살아온 날보다 '버틴'날이 훨씬 많게 느껴진다.

오히려

'우울증'라는 꼬리표를 달고 정신질환자로 살아온 

29살의 1이 내 삶을 '살아온' 느낌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정해진 듯한

 '나이에 맞게 이뤄내야 하는 과업' 

나를 맞추면 맞출수록 나는 시들곤 했다.

' 이렇게 피곤하고 사는 게 팍팍하지?'

라는 생각을 달고 살았다. 빛나는 20대의 청춘에!

항상 이 질문의 답은 '나는 몸이 약하니까'로

귀결되었지만, 그건 진짜 정답이 아니었다.


인생에서 제일 아프고 했던 스물아홉 살에

나는 가장 아프지만 가장 행복한 한 해를 보냈으니!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면 대학을 가고,

대학을 졸업했으면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하고,

안정적인 직장에 자리 잡은 뒤에는 적응하면서

착실히 돈을 모으고, 배우자가 될 연인을 물색하는

것들이 대한민국 20대의 과업인 것처럼 느껴졌고,


정해진 과업의 범위를 넘어가는 행동은

스스로의 삶에 의문을 남겼다.

대학 진학보다 취업을 택했던 스무 살에

안정적인 교육공무원에 적응하지 못한 몇 년 동안

나는 '이상한', '사회에 부적응한' 사람이었다.

내가 스스로를 부정한 셈이기도 했다.




우울증으로 도저히 직무 수행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러 휴직했던 올 한 해,

사람들은 휴직 급여를 받으며 일을 안 하는 내게

시기와 질투를 하기도 하고

솔직하게 나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으로 아픔을

해소하는 나를 보고 '위로받고 싶어서 안달 난 관종'

정도로 여기기도 했다. 난 위로 필요 없는데...!


솔직히 이 정도로 심각한 우울증이면 타인의 작은

위로 정도로 큰 도움을 받는 건 아니기에,

당연히 신경 쓰지 않으려 애썼지만

그 시기와 질투들은 나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참 내 마음대로 아프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었다.




그렇게 내 머릿속은

'사는 게 너무 고통이다'

'사는 게 너무나 버겁다'

'살고 싶지 않다'에서

'더 이상은 살지 못하겠다'로 서서히 악화되었고


솔직히 고백하건대, 극단적 사고를 한 적이 많았다

더 솔직히는 시도해 본 적도 있다.

워낙 겁과 두려움이 많아 소심하게 시도한 탓에

아무도 모르게 나만 더 아프고 잘 살아났지만...!



그렇게 삶을 놓을 시도까지 하고 나니

오히려 세상에 두려울 게 없어졌다.

사회에서 정해둔 나이에 따른 과업쯤이야

가볍게 무시할 수 있게 되었고!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



비합리적 사고의 반복, 이런 생각을 인지하고 바꿔

합리적 사고를 나에게 주입하기의 반복은

스스로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다.

완벽하게 자아 성찰을 위한 한 해를 보냈달까.


그래서 가장 아팠지만,

가장 나를 위한 한 해,

나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한 해가 되었다.

나에 대한 의문이 풀릴수록, 마음은 가벼워졌고

남들의 몇 배로 에너지를 충전해 외출하는 날에는

몸은 힘들어도 진심으로 그 순간이 행복했다.




이제 나는 내 삶의 방향성을 알 것 같다.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기

누군가는 아직 어려서 뭘 모른다고,

세상은 그렇게 이상적이지 않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이 방향이 가장 현실적이다.

현실적으로 나를 살리며 살아가는 방법 

나는 정해진 틀에 나를 맞출 때 가장 행복하지 않다.

행복하지만 않으면 다행인데, 건강을 잃는다...!




앞으로의 명확한 목표는 없고 당연히 계획도 없다.

그저 순간순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
그게 무엇이든 일단 해보면 언젠간 뭐라도 
되어 있겠지. 그리고 꼭 뭐가 되어야 하나?
나는 이미 나로 존재하는데.....!

굶어 죽지 않겠냐고?

아마 그렇진 않을 거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끝장을 보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나의 20대는

치열했고, 쉬지 않고 달렸고, 이루어냈고, 지쳤고,

결국엔 크게 넘어졌다.

바로 일어나 걸을 수 없도록 크게 넘어진 탓에

긴 휴식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어쩌면 크게 넘어진 게 오히려 축복일 수도.

덕분에 20대의 시행착오들이 그저 젊음의 고통으

로 끝나지 않고, 나에 대해 아는 기회가 되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며칠 남지 않은 나의 20대를

아쉬워하기보다 후련하게 보내고 싶다.

그리고

단단해진 몸과 마음으로 맞이하는
30대가 기대된다!

30대의 나에게,

부디 낫기를 바라고 다시 아프지 않길 바란다.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그럼 아마 아프지 않을 거야.

기대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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