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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Feb 18. 2023

어른도 놀이터가 필요해

너희들의 마음을 알았어

'놀이터'

어른이 되면 쉽사리 가지 않는 장소지만

유치원 교사에게는 아이들과 바깥놀이를 하러 가는

친숙한 장소다.


나는 바깥놀이를 좋아하는 교사였기에 기회만 되면

무조건 놀이터에 나가려 했지만,

사실 교사 시절 나에게 놀이터란 가장 긴장되고

불안한 장소였다. 사고가 크게 일어나는 곳이기에!

유치원에서 가장 좋아하면서 가장 힘든 장소,

놀이터는 유치원 교사 해봄에게 그런 의미였다.




최근 친구와 서울숲에 갔다.

사람 없는 평일 낮의 서울숲은 고요 그 자체!

그곳에서 놀이터를 만났다.

본능적인 이끌림으로 우리의 발걸음은 놀이터를

향하고 있었다.


시작은 미끄럼틀이었다.

보통의 미끄럼틀을 2개 이어 붙인 정도의 길이

계단에 맞추어 바로 옆에 설계되었기 때문에

중간에 한 번의 텀이 있는 모양이었다.

딱 봐도 스릴 있어 보였다.

서울숲 놀이터


역시나 빈 놀이터에서 이걸 타고 있는 사람은

한 무리의 대학생 같아 보이는 성인이었다.

그 학생들의 환호성이 없었다면 아마 나와 친구도

감흥 없이 '놀이터가 있구나'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놀이공원에 가면 어트랙션을 즐기는 사람들의

신난 비명소리로 놀이공원에 머무는 다른 이들이

덩달아 두근거리듯이, 내 마음도 설렜다.

다 큰 어른이지만 저건 한번 타 보고 싶었달까?


친구에게 타고 싶다는 간절한 눈빛을 보내고,

미끄럼틀을 타던 학생들이 가고 난 뒤

기다렸다는 듯이 겉옷을 풀어헤치고 가벼운 몸으로

미끄럼틀을 탔다. 친구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연신

사진을 찍어주었다.


미끄럼틀을 타며 비명을 지르는 나도,

그런 내 모습을 찍고 있는 친구도,

그 순간만큼은 아무 걱정도 무게도 벗어던졌다.

아, 이게 바로 진정한 카타르시스구나!

그래서 유치원 교사 시절, 아이들이 그렇게도

바깥놀이만을 기다려 왔던 거구나!


아이들의 마음이 새삼 와닿으며 나는 폭주했다.

어린아이처럼 조합놀이대를 누비고, 그물을 타고,

미끄럼틀을 탔다.

물론 다 큰 어른이 어린이 놀이시설을 이용하는 게

민망하고 부끄럽고, 시설 안전에도 우려가 되는

부분이다!


다행히 이 놀이터는 튼튼하고 넓게 지어졌고,

장애인도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되어 있고,

제한 없이 어떤 특성의 사람이든 이용할 수 있도록

유니버설디자인이 잘 적용된 곳이었다.

적어도 내가 본 놀이터 중에 가장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다행히 내 체구가 작아서 요즘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나도 안전하게,

기구도 안전하게 실컷 놀다 올 수 있었다.


가방이며 패딩이며 다 바닥에 집어던지고 한참을

소녀처럼 까르르 웃으며 뛰어놀았더니

나를 짓누르던 답답한 공기가 잠시나마 사라졌다.

이 느낌이 바로, 그렇게 마르고 닳도록 공부했던

놀이의 '정화'기능이었다.


조합놀이대에서 실컷 놀고, 이제 그네를 타려는데

고요했던 놀이터가 더 이상 고요하지 않았다.

우리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발길을 이끌었는지

몇 무리의 성인들이 더 와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다들 아이처럼 해맑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놀이는 아이들에게 있어 삶이고, 배움이고, 치유다.

그런데 어른들에게는 다를까?

놀이터에서 실컷 놀며 알게 되었다.




어른에게도 때로는 순수한 즐거움만으로 놀이하는

'놀이터' 필요하다는 .

실컷 놀이하고 나면 어른이라는 삶의 무게가

잠시나마 잊히고 가벼워진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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