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 이자 휴직기념일
새 학기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유치원을 그만두는 친구들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발 뻗고 숙면했다는 연락을 보내왔다.
드디어 나가기 버튼을 누를 수 있게 된 유치원
단톡방에 쾌재를 부르기도 했다.
그렇게 새 학기와 함께 삼일절이 다가온다.
삼일절, 독립 선언서를 발표한 날이며 국경일이자
이제 나의 휴직기념일이다.
이번 삼일절은 휴직 1주년 기념일이 되는 셈이다.
벌써 휴직한 지 일 년,
처음 휴직원을 낼 때는 과연 내가 일 년이나 휴직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몇 달 쉬고 다시 이 고통스러운 유치원 조직에
돌아오겠지 했던 내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벌써 휴직한 지 일 년,
아직도 유치원 조직에 돌아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
여전히 '부적응'했다는 절망이 남아있고
이제 내 남은 삶은 '약한 내 몸과 마음을 돌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 알고 익숙해졌지만
마음은 이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휴직 일주년이면 씻은 듯이 나아
유치원을 다니기 이전의 나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일 년은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마음의 병이 이렇게 크고 무서운 것이구나
겪어보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깊이를 알았다.
작년 휴직 첫날은 가장 위태로운 날이었다.
손꼽아왔던 탈출의 날이면서도 가장 큰 무언가를
잃은 날. 공허함을 넘어 껍데기만 남은 것 같았다.
일상생활도 어렵던 몸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인왕산을 올랐다.
산 정상에 올라가서 서울의 풍경을 내려다보며
잘 봐, 세상은 이렇게 넓어
세상은 넓고 해 볼 건 많고 가능성은 넘쳐
반드시 살아내 보자.
눈물을 펑펑 흘려 촉촉해진 얼굴로 생각했다.
입술로 새기고, 머리로 새기고, 마음으로 새겼다.
아직도 첫 휴직기념일의 날이 이렇게나 생생한데
벌써 일 년이라니,
일 년이 지난 나는 이제 적당한 일상생활을 한다.
물론 수 없이 겪은 시행착오로 인해 익힌 것이다.
길바닥에 주저앉아도 보고, 숨 막히는 고통을 참고,
내리쬐는 태양볕에 눈앞이 까매지고,
그다지 춥지 않은 날인데도 뼈 시린 추위를 견디고,
기분이 영 아니어도 함께일 때는 애써 웃음 지으며,
그렇게 스스로를 컨트롤하며
적당한 일상생활을 하는 내가 되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지난 슬픔을 이야기하며
꽤나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밝게 이야기한다는 것.
이제는 더 이상 트라우마를 밝힐 때 눈물 흘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나에게 유치원에서의 충격은 그저 '사실'일
뿐이고 그래야만 한다.
그 일이 트라우마가 아닌 사실로 변하길 바란다.
트라우마로 인해 고통받는 것은 나뿐이니까.
그렇게 휴직을 한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은
여전히 쿠크다스 마음과 몸이지만 단단해졌다.
이제는 얼린 쿠크다스 정도는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가끔 부러지긴 하지만 절대 바스러지지 않는다.
우리 유치원의 동료들은 어제도 늦은 밤까지
새 학기 준비를 했다.
아무리 새 학기 준비는 힘들다지만 참 여전해서
마음이 아팠고 트라우마의 버튼이 눌렸다.
내가 그 자리에 없다는 것을 빼고는
그곳의 현실은 여전히 똑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다르다
스스로의 상태를 잘 인지하고, 내 심리상태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인지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살고 싶어서, 걷고 싶어서, 그만 힘들고 싶어서
악바리처럼 운동을 해 평균 이상의 근육량도 있다.
내 작은 장점도 가능성으로 보도록 생각을 바꾸고
도전하고 또 도전한다. 해보고 싶은 게 정말 많다.
이건 누가 봐도 명백히 정신 승리이지만
어쩌면 유치원에서의 충격적인 나날들이
나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된 건 아닐까?
휴직으로 인해 잃은 것도 많지만 덕분에 더 많은
것에 도전하고 가능성을 넓히고 있으니
오히려 아픔이 기회가 된 건 아닐까?
내년 삼일절에도, 그다음 삼일절에도,
내년 휴직기념일에도, 그다음 휴직 기념일에도,
무언가 싱숭생숭하고 마음이 무겁겠지만
일 년을 살아오며 발전한 점을 찾을 수 있기를,
그렇게 점점 애쓰지 않아도
평범한 일상을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