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트라우마 버튼을 찾았다
어제는 2주에 한 번, 병원을 가는 날이었다.
2주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어떤 증상이 있었는지
평소처럼 이야기를 나누는데 내 목소리가 떨렸다.
힘들어요... 잠 좀 자고 싶어요.
잠을 잘 못 자는 건 우울증을 얻은 뒤로 꾸준했지만
최근 묘하게 조금씩 수면의 질이 낮아졌고
결국 잠을 너무 못 자니 하루가 버거웠다.
일상생활이 점점 고되게 느껴졌다.
주치의와 상담 후 약 한 알이 추가되었다.
정확히는 먹던 양의 용량을 늘려 한 알이 늘었다.
덤덤하게 내가 감당해야 할 부작용들을 여쭤보았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먹던 약물의 용량을 늘린 거라 겪어오던
부작용들이 좀 더 심해질 수 있음을 주의받았다.
솔직히 지금도 약 부작용들이 삶의 질을 낮춘다.
여러 방면에서 조금씩 생활에 불편함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을 늘리는데 동의했다는 건
약 부작용보다 우울증 악화가 훨씬 고통이니까.
약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고통을 줄일 수 있다면
부작용 따위는 감내해야 하는 것이니까.
조금씩 무기력해지고, 가라앉기 시작한 건
2월부터였다. 정확히는 인사이동 발표부터...!
나에게는 소름 끼치도록 싫은 결과가 발표되었고,
주변에서는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그게 되면 환자일 리가 없었다.
스스로를 설득하고 달래며 결과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는 건 내 착각이었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내 우울은 하강곡선에 접어들었다
버거운 몸과 마음 때문이었는지
고민하던 대학원 휴학을 단숨에 결정해 버렸다.
연구 분야를 고민한다는 허울 좋은 핑계를 댔지만
진짜 이유는 단순했다
'힘들어서' '이 상태로는 무리여서'
설상가상으로 근무하던 유치원의 학급이 줄었다.
누군가는 이 유치원 소속에서 제외되어야 했다.
날 그냥 소속기관이 없는 채로 내보내도 괜찮은데
제발 이 유치원 소속에서 제외시켜 주면 좋겠는데
파견 가시는 다른 선생님께서 제외되었다.
난 여전히 이 유치원 소속 교사였다.
휴직 상태로는 전보 신청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안정적인 내 자리는 기간제 선생님이 계시고
나는 언제든 병이 나으면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그 자리로. 꼭 그 자리로.
트라우마 유치원의 그 자리로.
휴직으로 근무를 면제받았지만
여전히 **유치원의 소속이라는 투명 족쇄가 발목에 채워진 느낌, 족쇄는 점점 세게 조여 오는 느낌.
소속만 달라져도 증상 완화를 기대해 볼 만한데
여전히 이름만으로도 아찔한 유치원의 소속이라니
버튼이 눌린 것이었다.
트라우마의 버튼.
우리 유치원의 선생님들은
여전히 예전처럼 살고 계셨다. 어쩌면 더 심하게!
해가 갈수록 트라우마의 흔적이 커져가는 유치원
상황을 보며 점점 더 희망을 잃었다.
이미 기대하는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직 일말의 희망이 남아있던 모양이다.
그렇게 새 학기가 돌아왔고 새 학기 시작이라는 건
휴직하고 한 해가 지났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2월 한 달간 눌려버린 트라우마 버튼은
내 미래를 보여주는 듯했다.
복직은 트라우마 속으로 다이빙하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점점 시들어가고
지금 나는 많이 아프다.
이제는 경력직 환자이니까 내 하강곡선을 눈치챌
수도 있고, 내 트라우마 버튼을 찾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참 슬프다.
트라우마 버튼이 '눌려야만'
버튼이 눌려서 '고통스러워야만'
내 트라우마 버튼을 찾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참 막막하다.
우울의 하강 곡선에 접어든 나를 돌보려면
당분간은 꽤나 힘들게 지낼 것이 예상된다.
참 절망스럽다.
내 트라우마 버튼은 '소속 유치원'이고
이건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돌아가려면 버튼을 누르는 수밖에 없음을 알았다.
버튼을 찾았는데 피할 수 없고 눌러야만 한다.
아직 한참 남았지만
버튼을 눌러야 하는 날이 오게 될 테니 두렵다.
이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를 지키려면
자야 한다.
이제 늘어난 약을 복용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