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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Apr 27. 2023

친구 같은 선생님의 함정

통제가 없는 교실의 최후

초임 시절의 나는 엉망진창 그 자체였다.

초임 유치원교사들이 으레 그렇듯,

교실에서 내가 주도해서 20명이 넘는 아이들을

컨트롤하고 그 와중에 하나하나 교육한다는 것은

매일 끝이 보이지 않는 암벽을 오르는 것 같았다.


막막했고, 이게 맞는 건지 스스로를 의심하고

우리 반만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나 때문에‘




그나마 유일하게 자부심을 느끼던 것은,

아이들과 스무 살도 차이 나지 않는 나이를 앞세워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친구 같은 선생님에는 큰 함정이 존재했다.


나는 친구 같은 선생님이 아니라
그냥 나이 많은 ‘친구’였다.


친구 선생님의 교실은 어느 순간부터 생활지도와

수업이 불가능한 지경이 되고 말았다.

아이들은 교사를 ‘만만한 친구’로 인식하는 듯했고

이제 와서 교사가 아무리 통제 가능한 분위기를

만드려고 노력해도, 교사의 권위가 한 번 무너진

교실에서 분위기를 바꾼다는 건 쉽지 않았다.


매일 다툼이 일어나는데 중재가 되지 않고,

질서가 세워지지 않으니 사회적 기술을 배울 수

없었다.

대집단 활동 시간에 선생님 말 무시하기는 기본,

선생님이 당황하게 어떻게든 활동 방향을 따르지

않았다. 그리고는 자기들끼리 킥킥 웃곤 했다.


그때 알았다. 이건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걸!

나는 어른이고 너희는 어린이다.

나는 교사고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다.

아이들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치려면 친구는 안 된다.


‘친구 같은’ 선생님도 결국 선생님이니

선생님의 권위가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늦었지만 그제야 교사의 권위를 세우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선을 넘는 행동을 할 때

좋게 웃으며 넘기는 게 아니라, 단호하게 침묵했다.

아이들이 평소와 다른 내 모습에 놀라며

나에게 주의를 기울이면,

그제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차분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교육’을 할 수 있는 학급 분위기를 만들기까지

여러 달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어른인 친구’가 ‘친구 같은 선생님’이 되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아이들은 달라진 선생님의 모습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고, 결국 계속해서 지도는 되지 않았다.

‘무섭지 않은데 뭔가 힘이 느껴지는’ 카리스마를

몸과 말투에 지닌다는 건 나에게 힘든 변화였다.


생전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었던 적이 없으니...!

나를 갈고닦았다.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무섭게 혼내보기도 하고, 살살 달래 보기도 하고,

칭찬 스티커로 강화시켜 보기도 하고,

사소한 것을 모두 통제하기도 했다.

결국 내가 지쳐 나가떨어진 채 방학이 되었다.





방학이 끝나자, 큰 마음을 먹고

안 되는 것은 미리 단호하게 말해주고
그 외에는 자율성을 부여하기

의 방법으로 학급을 운영하기로 결심했다.


신기하게도, 2학기 첫날

절대 있어서는 안 될 행동을 단호하게 알려주고

약속을 지키며 자유롭게 놀고 즐겁게 지내자고 했다.


드디어 아이들이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조금의 카리스마가 생긴 것이다.

물론 아이들이 방학 동안 자랐기도 했다.

조금씩 생활지도가 되고,

대집단 활동도 물 흐르듯이 진행되었다.

아이들이 다투거나 다치는 일도 크게 줄어들었다.



이제는 어디 가서 ‘친구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 보기보다 호랑이 선생님이에요. “라고

말하곤 한다.

호랑이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의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어야

‘친구 같은’ ‘선생님’이 될 수 있다.

한 끗 차이로 ‘친구’가 되는 순간, 선생님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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