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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May 01. 2023

만능 노동자, 유치원 교사

유치원 교원의 노동

오늘은 근로자의 날이다.

근로자의 날과 유치원 교사는 전혀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교원은 법적으로 근로자가 아니어서다.


유아교육법에 따르면 교사는 법령에 따라 해당

유치원의 유아를 ‘교육’하는 사람이다.

고용보험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사립유치원 교사는 사학연금을, 공립유치원 교사는

공무원연금을 납부한다.


법적으로는 근로자가 아니고, 교원인데

어째서 노동자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그것도 만능 노동자.




짚고 넘어가자면, 법령에서는 대부분 ‘근로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근로’는 근면성실하게 부여된

일을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반면 ‘노동’은 보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느낌이다. 나는 노동이 더 마음에 든다.

그래서 오늘 글에서는 ‘노동’이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하고자 한다.




근로자의 날에 유치원이 휴업하는 사례는

‘재량휴업일’ 단 하나의 사유일 뿐이다.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지만, 조리사님과 기사님 등

유치원의 교직원이 노동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재량휴업일이 아닌 유치원의 교사라면,

오늘도 많은 교사들이 교육활동을 하고 있다.




얼마 전, 홍승은 작가의 책을 읽었다.

작가는 자신을 노동자로 소개하며 ‘강연 노동자‘와

‘집필 노동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유치원 교사가 노동자라면 어떤 노동자일까?

내 머릿속에 스친 첫 번째 생각은 바로 ‘만능’이었다.


무엇이든,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결국 해내고 마는

사람들이 유치원 교사들이다.

유치원에서 교사생활을 하며 얻은 각종 잔 기술들로

어디 가서 밥은 절대 굶을 것 같지 않을 정도?

유치원 교사들이 뭉치면 불가능은 없다.


내가 유치원에서 배운 잔 기술만 해도,

청소, 물고기 기르기, 식물 기르기, 곤충 기르기, 종이 빨리 접기, 가방 속 빨리 확인하기, 의자 나르기,

밥 빨리 먹기, 화장실 참기, 복식호흡으로 소리 내기,

180도의 시야로 관찰하기, 뒤로 걷기, 이삿짐 포장하기, 도서 정리하기, 행사 꾸미고 진행하기, 화려한 언변, 쿠션어의 정석, 굿즈 제작하기, 인내하기 등...... 도저히 셀 수가 없다.




대체 이들은 어쩌다 만능 노동자가 되었을까?

아마도 ‘노동 분위기’때문이 아닐까 싶다.

유치원에서는 교육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위에 언급한 초능력과 잡다한 일들을 거부하면,

교사로서의 사명감을 의심받는다.


예를 들면, ‘아이들 사진을 덜 찍고 싶다’라고 한다면

선생님 교사 아니야?
아이들에게 추억을 선물해 줄 생각을 해야지
선생님 앨범 만들기 힘들어서 그런 거잖아.

라는 반응이 돌아오고, 다수가 수긍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결국 사진을 많이 찍다 보면 교육활동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교육활동에 소홀하다는 건 교사 고유의 책무인

교육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교육보다는 노동에 가깝다.

교원 고유의 업무를 제쳐두고 노동하는 셈이다.


그렇게 유치원 교사들이 하는 수많은 일들은

‘선생님이니까 이 정도는 해내야지 ‘라는 암묵적

메시지를 담은 노동이 된다.

교육활동인 척하는 노동.





교사들은 교육활동으로 둔갑한 미묘한 노동을

거부하지 못한다.

사립유치원에서 관리자의 말을 거부하면 고용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공립유치원에서는 공립유치원 사회가 좁다는 점을

빌어 ‘소문’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교사가 본인에게 부여된 역할이 교육활동이 아닌

노동이라는 점을 아무리 외쳐봤자.

“관내에서 소문난다. 이 바닥 좁다.
전보갈 때 사람보다 소문이 먼저 간다.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으로 소문난다.”

라는 은근한 압박이 돌아온다.

사실 나는 이미 널리 소문났을 거다.



소문의 내용은 꽤 억울하다.

교원이, 아이들의 교육활동을 우선시하고

다른 잡다한 노동은 뒤로 미루겠다는데,

당장 관리자가 시키는 것을 거부하면 일 안 하는

교사가 된다. 일보다 교육 먼저 하겠다는데!

아무리 보아도 유치원은

교사 대신 근면 성실한 근로자를 원하는 것 같다.


때로는 교무실분위기를 흐린다는 이유로 교사들

사이의 따돌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교사들 사이의 외톨이가 되면 답도 없다.

최소 1년을 소외감을 가지고 지내야 하고 중요한

내용을 전달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많은 유치원 교사들이 유아교육자를 꿈꾸고 교직에

입문하지만, 교육활동인 척하는 노동을 한다.

심지어 노동 강도도 강해서

이건 절대 해낼 수 없을 것 같은데, 그걸 해낸다.

유치원에서 불가능이란 없다.


노동을 해내지 못하면 교육자의 자질을 의심받는다.

교육자는 노동보다는 교육의 전문가일 뿐이다.

노동 전문가가 아닌데, 교사답지 않다고 한다.

유치원은 참 신기하고 기형적인 조직이다.


교사답지 못하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말도 안 되는 강도의 노동을 해낸다.

그리고 만능이 된다. 유치원 교사는 못 하는 게 없다.

유치원 소속인 나 역시 못하는 게 없다.

그리고 이 모든 기묘한 가스라이팅은 정당화된다.





다수의 유치원에서는 시키는 일에 토 달지 않고

최대한 빨리 해내는 것이 미덕으로 꼽힌다.

교사의 교육활동과 얼마나 관련 있는 일인지,

교육활동에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주지는 않는지

그런 것 따위는 생각할 시간조차 없다.


교사들은 부여된 노동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바른말을 하는 순간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된다.

(일하기 싫은 사람 맞다. 교육하는 사람 하고 싶다.)

유치원에서의 나는 다 잘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정작 교육을 잘하는 교사였는지는 의문이다.





노동자의 날에 쉬지 않는 교사는

노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교육을 하는 사람이다.

이왕 노동자가 될 거라면 ‘교육 노동자’가 되어야지

‘만능 노동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다 잘하고 싶지 않다. 못하는 게 없고 싶지 않다.

그저 교육을 잘하고 싶다.

교육을 잘하는 ‘교육 노동자‘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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