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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May 05. 2023

어린이날은 빨간색

어린이에게 가족을 돌려주는 날

기사에서 보았는데, 올해 어린이날은 18년 만에

비가 많이 오는 어린이날이라고 한다.

지금 창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일기예보에 따르면 이 비는 하루종일 내릴 예정이다.

그리고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날은 무려 법정 공휴일이다.

어린이에게 가족을 돌려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유치원 교사 시절 어린이날은 매번 전쟁이었다.

어린이날이 오기 전부터 회의가 소집되어

올해 어린이날 행사에 대해 끝없는 의논을 하고

어린이날 행사 직전에는 이벤트 업체 직원으로

이직을 한 것처럼 행사를 준비하곤 했다.


유치원에서 어린이날 행사를 치르며

그저 아이들의 즐거움을 위해 온몸을 불사르고,

정작 어린이날엔 어린이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지쳐서 절대 안정을 취하곤 했다.


비로소 휴직을 하고 나서야,

어린이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린이날은 그저 어린이의 즐거움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일회성 이벤트인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평소 잘 가지 않던 어딘가를 마음먹고 데려가면 끝인 걸까?


어린이날은 어린이의 인격을 소중히 여기고

어린이의 행복을 도모하는 날이다.

그런데 요즘 어린이날은 어린이를 행복하게 해주는

하루짜리 이벤트이자, 어린이를 타깃으로 한 상업적

업체가 특수를 누리는 시기가 된 느낌이다.

“요즘 아이들은 이전 세대보다 풍요로워서 365일이

어린이날 아닌가? “하는 일부 어른들의 생각과도

묘하게 결을 같이 한다.


정말 어린이날 하루만 이벤트로 행복하면 끝인가?

요즘 어린이날은 어린이날의 의미 중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은 빠지고

’ 행복하게 하는 것‘에만 초점을 둔 모습이다.

방정환 선생님이 원한 어린이날이 이게 맞는 걸까.



1922년 최초의 어린이 인권선언인

<어린이날 선전문>이 발표되었다.

1. 어린 사람을 헛말로 속이지 말아 주십시오
2. 어린 사람을 늘 가까이하시고 자주 이야기하여 주십시오
3. 어린 사람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십시오
4. 어린 사람에게 수면과 운동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십시오
5. 이발이나 목욕 같은 것을 때에 맞춰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6. 나쁜 구경을 시키지 마시고 동물원에 자주 보내주십시오
7. 장가와 시집보낼 생각 마시고 사람답게만 하여 주십시오


101년이 지났으니 요즘 시대적 배경과는 맞지 않는

조항도 있지만, 이 선언문이 던지는 중요 메시지는

어린이를 하나의 인간으로 존중해 주세요.

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라면 101년이 지난 지금도

어린이는 크게 존중받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

공공장소에서 어린이들의 작은 목소리에도
눈살을 찌푸리는 일부 어른들!
마치 낳기만 한 것처럼 어린이들을 기관에 오랜
시간 보내두고, 대놓고 선생님께 아이를 보기 싫다 말하는 일부 학부모들!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인 양, 보호라는 이유를 들어과하게 아이의 삶을 통제하는 일부 양육자들!
아이들을 위한 정책이라면서 정작 열어보면
경제 논리에 의한, 어른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는
일부 정치인들!
가족들이 일터로 나가야만 하는 현실에서
가족과 소소한 시간을 보내는 것조차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아이들!


어린이는 여전히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한다.

가장 기본적인 가족과의 시간마저 누리기 어렵다.

어린이의 입장은 대부분 어른의 입장보다

뒷 순위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원하는 건 무엇일까?

유치원에서 아이들의 표정은 주말 지낸 이야기를

하며 가족들과 보낸 시간을 소개할 때 가장 밝다.

특별히 어디를 가거나, 특별한 경험을 하지 않아도

주말에 가족들과 과자 먹었어요!

를 말하며 행복해하는 게 아이들이고,

어떤 과자를 먹었는지, 가족 중 누구와 먹었는지를

반짝이는 눈빛으로 궁금해하는 게 아이들이다.


아이들에게 어린이날이란

갖고 싶던 선물도 받고, 놀러 가기도 해서 좋지만

무엇보다 가족과 시간을 함께해서 행복한 날이다.


어린이날은 빨간 날이니까!


아이들에게 평소에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가족을 돌려받는다는 건 즐겁고, 존중받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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