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불과 얼마 전 마음 아픈 소식이 있었다.
언제나 밝고 씩씩한 모습으로 반짝반짝 빛나던
한 아이돌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
또래 아이돌 여럿을 극단적 선택으로 떠나보낸 뒤
오랜만에 슬픈 소식이 들려와서 나도 참 슬펐다.
그런데 이전에 슬펐던 기분과는 조금 달랐다.
남 일이 아닌 것 같아 슬펐다.
아이돌들의 극단적 선택의 원인은 유사한 것 같다.
바로 나도 앓고 있는 병인 우울증.
누가 뭐래도 내 생각에 우울증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이다. 스스로를 죽일 수 있기 때문에.
하늘로 간 별의 소식을 듣고, 곧바로 들었던 생각은
‘얼마나 사는 게 생지옥이었으면...’이었다.
고인의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고인이 생전에 우울증인 티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물론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있긴 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 힘들다는 신호였을 뿐,
극단적 선택의 사전 예고로 보기엔 어려웠다.
우울증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감출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우울증을 감추고 괜찮은 척한다.
‘괜찮은 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우울증은 심해진다.
괜찮은 척을 하다 보면 내가 사실 괜찮은데 우울한
것으로 여기는 게 아닐지 의심하는 순간들이 생긴다.
결국은 나약한 나를 자책하며 우울증이 악화된다.
아무 잘못이 없는데, 스스로에게 잘못을 부여한다.
그렇게 감출 수록, 밝은 척 괜찮은 척할수록
우울이 몸과 마음 깊이 자리 잡는다.
우울함의 가장 큰 문제는 우울에 잠식되는 순간
내 우울함에 빠져 판단력을 잃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지 우울한 기분이 아니라 병인 것이다.
참 많은 댓글을 접했다.
고인을 대놓고 비방하는 댓글은 못 봤지만,
고인과 같은 병을 지닌 환우로서 답답한 내용들이
많았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남긴 말 같지만, 우울증 환자가
보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내용들!
예를 들면 베르테르 효과에 관한 댓글이라던가,
평소 동생을 아끼던 고인이니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버텼으면 좋았을걸 하는 댓글들이었다.
참 답답했다.
고인인들 소중한 가족과 친구들을 등지고 하늘의
별이 되고 싶었을까?
자신의 극단적 선택으로 인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들이 힘들어할 것이라고 생각을 못 했을까?
환우로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윗 문단에 적은
내용들을 고인은 이미 수도 없이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아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앞에서 웃으며 견뎌왔을 것이다.
행여 소중한 사람들이 걱정할까 힘든 티도 좀처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마치 나처럼, 힘들다고 크게 소리칠 수 있었겠지만
연예인인 고인에겐 쉽지 않았을 거다.
우리 사회는 힘들다 말하면 징징댄다거나,
단순 감정 표현을 감정 쓰레기통이라는 단어로 묶어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기 어렵게 만드니까.
그렇게 혼자서 수백 번을 마음을 고쳐 먹었을 거다.
우울을 숨긴다는 건 매번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우울증의 무서운 특징은
깊은 우울에 잠식되면 머릿속이 부정적 사고편향
으로 가득 찬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울에 깊이 잠식되는 순간이 오면
그동안 마음을 다 잡고 또 잡았던 힘마저 사라진다.
사람이 이럴 수 있는 건가 싶을 만큼 무력해지고
살아서 숨 쉬는 일 분 일 초가 지옥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
소중한 사람을 위하는 마음으로 버티고 살아낼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난 후다.
내가 극단적 선택을 한다면 발생할 영향은 알지만
알아도 그 힘을 잃는다.
우울에 잠식된 사람은 이 찰나의 순간이 생지옥이다.
고인이 이제는 좀 숨 쉴 만 해졌으면 좋겠다.
비록 극단적 선택으로 하늘의 별이 되었지만
그래도 합리적 생각으로 버티고 끝까지 버텼을 테니,
정말 고생했고 장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이 세상에 없다는 소식에 우리는 슬프지만
당신은 그 무거운 짐을 놓았기를 바란다.
그동안 우울의 생 지옥에서 남 모르게 버거워했을
고인에게, 고인의 선택은 안타깝지만 병으로 인한
것이니 고인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늘에서조차 자책하지는 않으면 좋겠다.
하늘의 별이 되었으니,
때로는 어둡고 때로는 밝은 하늘에서
빛나고 싶을 때 마음껏 빛나고
빛을 내기 싫을 땐 마음껏 빛을 내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도 우리는 당신을 빛나는 사람으로 기억할 거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