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수영 도전
열 살쯤이었나?
조용히 바닷가에서 찰방찰방 파도를 밟으며 걸었다.
신이 나서 파도만 보고 성큼성큼 걸었다.
내가 앞으로 가는지 옆으로 가는지도 모르고,
어느 순간부터 바다에서 균형을 잃었다.
허우적거리며 파도에 휩쓸렸다. 물에 빠진 것이다.
다행히 세상에서 제일 든든한 우리 아빠가
머리끝만 보고 딸을 알아보고 달려와 건져주었다.
아빠가 아니었다면 익사할 뻔했다.
그 영향으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에게 물이란
무서운 존재, 내 생명을 집어삼킬 수 있는 존재였다.
20년이 지났는데도 물에 빠져 공포에 휩싸였던
시간들을 몸과 머리가 선명하게 기억한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상상만 해도 숨이 조여 온다.
그래서 남들 다 가는 워터파크도 가본 적 없다.
놀러 가서 물이 내 무릎 위로 올라오는 일은 없었다.
물가에 서기만 해도, 균형을 잃을까 두려웠다.
그랬던 내가 수영을 배운 지 한 달 째다.
솔직히 말하면 무섭다. 너무너무 무섭다.
씻고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에 입장한다.
간단한 준비 운동을 하고 물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강습이 끝나는 50분 동안 숨이 조이는 느낌이다.
선생님이 시범을 보이실 때에도 수경을 쓰고 있다.
무서워서, 수경을 쓰면 빠져도 앞은 보이니까.
힘도 없는데 온몸에 힘을 꽉 준다고 지적받는다.
어지간히 무서운 모양이다.
솔직히는 수영 가기 전에 공황발작 약을 복용하고
심호흡까지 미리 하고 간다.
이렇게 숨 막혀도 죽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수영은 특히 긴장된다. 익사할 수도 있으니까.
공황장애도 있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고통받으며
무서워서 죽을 것 같은데 대체 왜 수영을 배우는진
아무도 모른다. 나만 안다.
혹시 내가 투신하면 살아야 하니까.
주변 사람들과 가족들에겐
남들 다 누리는 스포츠를 즐기지 못하니 억울해서
배우는 거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아니다.
나는 종종 자살사고를 하는 우울증 환자이고,
내가 저지를 확률이 가장 높은 자살 방법은
물에 빠지는 것이니까.
죽은 내 모습을 사람들에게 바로 들키지 않고
확실히 죽을 수 있는 방법.
나에게 확실한 자살 방법은 익사였다.
투신을 하게 된다면 난 정말 빠져나올 능력이 없다.
그래서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혹시 내 건강상태가 심해져서 우울에 잠식되었을 때
합리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시점이 왔을 때
그러면 안 되지만 혹시라도 자살시도를 한다면
난 분명 아무도 없는 새벽에 물에 들어가는 방법을
선택할게 틀림없다.
2월에 유치원의 인사이동 시즌을 거치고,
해결되지 않는 공무상 재해 보상 처리에 질릴 대로
질렸더니 결국 우울증이 심해지고 말았다.
약물을 추가했고, 부작용으로 살이 쪘고, 하루 종일
약기운에 버거워하는 시간을 보냈다.
심해진 우울을 무사히 보내려면 그 방법뿐이었다.
한동안 들지 않던 자살 사고가 다시 피어났고,
아직 절대로 죽고 싶지 않은 나는 자살을 떠올리는
내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상담심리학을 전공하며 더욱 잘 알게 된 우울증은
상상 이상으로 깊고 지독하게 고통을 주는 병이니까.
얼마 전 새 관리자께
내 공무상 요양 처리에 대한 확답을 받았다.
그리고 조금씩 무기력이 흐려지고 있다.
무언가를 연기가 아니라, 하는 척이 아니라
진짜로 시도할 수 있는 힘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절호의 기회인 타이밍에
수영을 배우고 있다. 한 달 동안 물에 뜨지 못한 건
이 수업에서 나뿐이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
공포를 느낄 정도로 무서운데 물에 들어간다는 것,
물속에서 움직인다는 것,
무서워도 마음을 가다듬고 수영장에 간다는 것,
많이 버겁지만 내게 꼭 필요한 것을 배우는 중이다.
일단 이번에 찾아온 우울의 터널에서는 빠져나오고
있으니, 다음 터널이 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거다.
물론 터널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하지만 이제 깊은 우울 터널이 다가오는 게 조금 덜
무섭다. 내가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없애는 중이니!
혹시라도 내가 투신하게 되면,
스스로 날 살려낼 수 있게 할 테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