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기 위한 유치원 교실

누구를 위한 환경 장학인가

by 해봄

갑자기 도착한 메신저.

"0월 0일 (0 요일) 0시 환경 장학 실시합니다"


이 메신저를 보는 순간 떠오르는 생각은

"아, 또 외부 손님이 오실 모양이구나"




우리 유치원은 환경 장학을 항상 불시에

(정확히는 손님 오실 무렵에) 실시하곤 했다.

물론 절. 대. 교사가 요청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반드시 환경 장학을 실시해야 한다는 근거 또한

그 어디에도 없다.


환경 장학이라는 명목 하에

그저 관리자의 눈에 '라떼 기준으로 보기 좋은'

손님이 왔을 때 '잘 꾸며져 있는'

유치원으로 보이기 위해

그분들의 의견이 마치 유아교육 환경의 진리라는 사상을 주입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으로 느껴졌다.


교사의 전문성을 신장하거나,

아이들의 놀이공간이 풍성해지도록 도움을 주는 시간이 절대 아니었다.


2019 개정 놀이중심 교육과정이

2020학년도부터 적용되어

놀이공간 구성에 유아가 주도성을 가지도록 '유아'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개별 학급이 자유롭게 구성하도록 추구하는 것으로 교육과정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시대를 역행하는 환경 장학,

시대를 역행하는 유아교육계답다.


하지만 수직적, 폐쇄적 유치원 조직문화의 상징과 같은 공립 단설 유치원에서,

일개 평교사가 환경 장학을 감히 거부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환경 구성을 위해 초과근무를 하고,

어쩔 수 없이 업무시간을 쪼개어 모든 담임교사들과 관리자가 교실 투어를 다니며 서로의 교실을 평가하는 것에 참여해야 했다.



환경 장학 전날,

다른 선생님들이 초과근무를 신청하시고,

교구 바구니에 부착할 교구 사진과 이름을 적은 라벨을 만드시는 것을 보고는,


"7세인 우리 반에는 필요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교실 정리만 내 기준에서 깨끗하게 한 후 퇴근했다.

물론 퇴근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윽고 환경 장학의 시간이 오고

우리 반 차례가 되었다.


동료 선생님들은 좋은 것, 교실 속에서 참고할만한 재미있는 아이디어 위주로 찾아봐 주셨지만

관리자들은 역시 달랐다.


나는 쏟아지는 질문 세례(지만 질책 느낌)에 정확한 신념과 근거로 또박또박 답변을 해내야 했다.


우리 반 교실을 나와 아이들이 아닌 관리자 취향에 맞추기는 죽어도 싫었기에......!


Q: 왜 바구니에 교구장에 교구 사진이 없나요?

이 반은 그럼 정리를 어떻게 하는 건가요?


A: 교구의 자리는 아이들이 스스로 편한 곳에 넣도록 지도하고 있어, 교구장에 정해진 자리 없습니다.

그때그때 놀이에 필요한 놀잇감을 자유롭게 가져와 놀다가 정리 시간이 되면 놀잇감들을 비슷한 위치에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정리해 둡니다.

다음에 또 놀이가 이어지고 확장되는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7살쯤 되면 교사보다 유치원 생활에 능해 절대 사진이 없다고 정리를 못하지 않는다. 완전 옛날 스타일)



Q: 이 일회용 비닐팩과 일회용 수저, 젓가락은 누구의 물건이죠? 왜 아이들 손에 닿는 곳에 있는 건가요? 교사의 물건은 아이들에게 보이면 안 돼요.


A: 이 일회용품들은 제가 사용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만들기 재료로 사용하거나, 집에 가져갈 작은 물건이 많을 때 자유롭게 비닐봉지를 사용합니다.

공용 물건이니 공용 장소에 둔 것뿐입니다.

(별거 다 가지고 트집이야.....)


그랬더니 눈에 보기 안 좋으니 치우라는 말만 돌아왔다.


역시 영양가가 하나도 없는 환경 장학이었다.

교사에게 도움이 하나도 안되는데 이걸 어떻게 장학이라 할 수 있는 건지,

교육환경을 자유롭게 구성할 권리가 있는 교사의 교육할 권리에 대한 부당한 간섭일 뿐이다.



나는 그날, 납득할 수 없는 피드백들을 하루 만에 고쳐놓기 위해 정신없이 일하는 소중한 동료들을 애써 못 본 체하고 찝찝한 기분으로 퇴근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분의 손길이 다녀가신 듯했고


아이들은 놀이를 시작하자마자 나를 찾았다.

선생님 저 나무젓가락 필요한데
사라졌어요!!!!


제발 아이들과 담임교사만의 작고 소중한 놀이공간을 지켜주셨으면 좋겠다

교실의 주인인 교사와 아이들이 편하고,

마음에 든다면 그것이 최고의 교실 환경이 아니겠는가!!!


내 생각은 교실에 없는 지금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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