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못 버는 책방지기

제주 독립책방 책방지기 이야기

by 해봄

올해만 해도 겨울 제주살이, 봄 제주살이

그리고 며칠씩 여러 번 제주에 다녀왔다.

이젠 제주에 간다는 것이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

그렇다고 싫은 건 절대 아니다.

나에게 제주는 설렘보다는 편안함의 공간이다!


짧게 제주에 다녀올 때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가장 최근에는 제주공항 부근의 독립책방에서

일일책방지기 체험을 하고 잔뜩 충전해서 왔다.




이번 일일 책방지기 근무는 두 번째였다.

이 말인즉슨, 이미 책방지기 체험을 해보았는데

다시 찾아왔다는 것이다!

남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내게 일일책방지기는,

내가 쓸모 있는 사람임을, 인류애가 남아있음을,

그래서 아직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책방지기를 하려는’ 목적으로 제주에 내려왔다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의문의 눈빛을 보낸다.

왜냐하면 일일책방지기는 무급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소정의 참가비를 내는데,

이 때문에 제주도 사람들 중에는 ‘돈 내고 일하는

책방지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겸직을 하지 못하는 휴직 상태인 나에겐

오히려 무급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참가비를 내긴 하지만 책방지기로 근무하는 기간

동안 매우 쾌적한 숙소를 제공해 주시기 때문에

내 느낌에는 사실상 노쇼방지 금액 정도로 여겨졌다.




이번이 두 번째 책방지기!

한 번 근무하면 보통 3일 정도 책방지기의 시간으로

보내기 때문에 숙소와 책방, 그리고 책방의 동네가

모두 익숙하고 반갑게 느껴졌다.

마치 날 기다렸다는 듯이!


제주도에 오는 것은 설레지 않았지만 책방지로서의

출근은 어찌나 설레었는지...!

책방지기로 있는 3일이 나에겐 꽤 소중했는지

나도 모르게 출근시간보다 일찍 나가서

책방의 분위기를 만끽하고 여유 있게 준비하곤 했다.


마음대로 내 취향의 피아노 음악을 선곡해서 틀고,

(근무한 3일 동안 손님들은 피아노 음악만 들었다)

가지런히 책을 가다듬고, 매대와 서가의 책들을

보고 또 들여보았다. 두 달 만에 근무하러 왔지만

그새 구미를 당기는 책들이 잔뜩 입고되어 있었다.




6시간의 근무 시간 동안, 책을 읽고 또 읽고를 반복.

그러다 손님이 오시면 반갑게 인사드리기.

부담 없이 마음껏 살펴보시라는 친절 건네기.

손님이 책을 살펴보시는 동안 부담스럽지 않도록

나의 할 일에 몰두하는 척 연기하기.

구매로 이어질 경우, 침착하게 계산해 드리고

이런저런 반가운 이야기 나누기.

구매로 이어지지 않아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다정한 인사 건네기.




내가 책방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도 한몫했겠지만,

사람을 재지 않고 모두에게 다정하게 손 내미는 것.

손님들에게 책방에서 보낸 시간이 좋게 기억되길

바라는 그저 순수한 마음.

다정한 한 마디에 돌아오는 따뜻한 미소.

사람의 온기가 머물다 간 책을 가지런히 다듬는 것.

6시간 근무를 끝내고 책방 문을 닫았을 때의 뿌듯함.

‘나도 아직 이 세상에서 쓸모가 있는 사람이구나.’

‘교사 생활은 못하지만, 그렇다고 무가치한 사람은

절대 아니구나.‘

‘비록 정신질환자이지만 내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부족함 없이 해낼 수 있구나.’




돈 못 버는 책방지기지만,

책방지기로 근무하며 하루 일당과는 바꿀 수 없는

성취감과 이 사회에 대한 소속감을 번다.

그렇게 책방에서 살아 낼 용기를 얻는다.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오면 아직 많이 아프다는 걸,

아직 제약이 많다는 걸, 환자로 살기 힘들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지만


그럼에도 책방에서 얻어온 용기를 품고 천천히

현생의 한 발짝을 내딛는다.

힘이 부족하더라도
쉬면서 느리게 가더라도
그럼에도 나는 할 수 있는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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