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간을 뭐라 불러야 할까
휴직자라는 걸 숨기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물론 굳이 숨길 생각이 없긴 하지만
때로는 설명하는 것조차 지쳐 말하기 싫다.
그래도 결국엔 설명해야 한다.
내 나이에, 나 정도의 사회 경험을 가진 사람이
평일 낮에 임금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건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왜 이 시간에 일을 안 하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
내가 프리랜서일 수도,
근무시간이 9-6시가 아닌 직업일 수도,
또는 직업이 없을 수도,
출퇴근이 없는 직업일 수도,
직업이 필요 없는 부를 가진 사람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중 아무것도 해당되지 않는다.
나는 휴직자다. 그중에서도 질병휴직.
또 그중에서도 공무상 질병휴직. 사연이 정말 길다.
또래의 대부분이 근무할 시간에 근무를 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내 사연이 정말 길다.
그런데 다들 궁금해하더라. 내 입장에서는 지친다.
일단 “사정이 있어 휴직 중이다. “로 얼버무린다.
다음 질문은 뻔하다. 휴직에 대해 궁금해한다.
이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던 게, 휴직을 할 수 있는
미혼의 비임신 상태인 여성은 생각해 보니 드물다.
‘보이는 외상이 하나도 없는’ 정신질환 휴직자는
이 사회에서 정말 찾기 드문 존재였던 것이다.
본업은 유치원 교사이고, 사정이 있어 휴직 중이고,
그다지 건강하지 않고, 유치원 교사임에도 휴직을
할 수 있는 건 내 신분이 교육공무원임을 설명하면
그다음 질문도 뻔하다.
복직은 언제 하세요?
그런데 사실 나도 내 복직 일자를 모른다.
나만 모르는 게 아니라 내 주치의도 모른다.
어쩌면 내 인생에 복직이 없을 수도 있다.
내 자리에 근무하시는 기간제 선생님께서는
본인이 언제까지 근무할 수 있는지 모르는 상태로
(원래는) 우리 반에게 최선을 다하고 계신다.
딱히 답할 말이 없으니, “모른다.”라고 답한다.
질병휴직자가 복직하려면
‘정상근무가 가능할 만큼 호전‘되거나 ’ 완치‘라는
문구가 들어간 의료인의 진단이 필요하다.
내가 복직하고 싶다고 해서 돌아가는 게 아니다.
아파도 휴직하기 쉽지 않지만, 질병휴직으로는 복직
하기도 쉽지 않은 게 낯설지만 현실이다.
그리고는 익숙한 시선을 받는다.
부러움의 시선.
아하 놀고 계시는 구나.
백번 이해한다. 겉보기에 외상 없이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휴직, 심지어 유급 휴직 중이고 남들이 다
일하는 시간에는 취미 활동을 한다.
왜냐하면 일하지 않는데 활동을 하는(하지 않는) 걸
세상은 “논다.”라고 표현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모든
활동은 취미가 된다. 사실 생존인데...
논다... 논다...? 논다...!
약에 취해 잠든 게 왜 노는 거지?
세로토닌 합성을 위해 힘들게 나온 산책이 왜 노는
거지?
운동을 하러 나온 게 왜 노는 거지?
병원에 가는 게 왜 노는 거지?
나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기쁨이 없는데
그저 아무 감정 없이 일상을 ‘버티는’ 중인데
이게 노는 거라고?
일하지 않는 시간은 무얼 하던, 하지 않던
‘노는 것’으로 여겨지는 게 당연했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프다고 놀고 있다’라는 게
이 사회에서는 당연하지만 왠지 억울하고 불편하다.
일을 안 하면 노는 걸까?
한창 임금 노동을 할 나이의 청년은 일을 안 하면
‘놀기나 하는’ 잉여 인간이 되는 것일까?
누군가에겐 아프고 있는 시간
누군가에겐 쉬고 있는 시간
누군가에겐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시간
누군가에겐 무언가를 배우는 시간
한 가지 표현으로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시간.
일하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면 무조건 ‘논’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2년째 놀고 있는데
놀았다기에 지난 2년은 버티기의 연속이었다.
결국 대화의 끝은 언제나 나의 당돌함으로 끝난다.
저 노는 거 아닌데요?
눈물 나게 치열한 하루를 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