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억울함을 인정받고 싶어
요즘 나는 정말 비효율적인 삶을 살고 있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무언가 하지 않으며 보내고,
행동도 느릿느릿하고 임금노동을 하지 않으며
하루일과는 독서와 운동이 전부다.
오직 내 몸 하나만 건사하며 요양 중이다.
나는 공무상 재해 승인(가결) 공무원이다.
그래서 공식 휴직 사유는 ‘공무상 질병휴직’이다.
공무상 재해 신청을 위해 증빙자료를 정리하며
준비하던 시절, 나는 일반 질병휴직 상태였다.
질병을, 그것도 완치될 수 없는 만성 정신질환을
공무(유치원 교사직)에 종사하며 얻게 되었다.
속이 타들어가도록 억울했다.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고 오히려 더 불안했다.
빨리 나아서 복직하지 않으면 직권면직되니까.
(질병휴직은 최대 2년, 복직하지 못하면 잘린다.)
하지만 내 상태는 인정하기 힘들 정도로,
지금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을 정도로 심각했다.
주치의 소견에 따르면 2년 안에 완치는 불가능했다.
평생 약을 먹으며 살아야 할 수도 있다.
현재도 많은 약을 복용해야 하루를 살 수 있다.
열심히 공부하고, 근무하고, 성장하는 교사가 되고
싶어 개인 시간에도 능력 향상에 매진해 왔는데
휴직 이전까지 제대로 놀아본 기억 없이 살아왔는데
내 인생은 이대로 끝난 것 같았다.
마치 유치원이, 교직사회가, 세상이 날 버린 듯이!
그렇게 이 악물고 피눈물을 흘리며 공무상 재해
보상을 준비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공립유치원 교사는 물론이고
내가 만난 몇몇의 초중등 교사들조차
공무상 요양 승인 사례를 보았다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대부분은 공무상 재해보상제도가 있다는 것
조차 몰랐다.
교사노동조합들에 문의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친절하게 신청 절차는 알려주셨지만,
조합에도 사례가 거의 없는 듯 절차만 안내받았고,
불승인을 각오해야 한다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하지만 불승인되더라도 이 힘든 싸움을 하고 싶었다
그만큼 그 당시의 나는 교사직을 포함한 내 인생
전부를 잃었다고 생각했다.
너무 억울한 나머지 ‘죽으라고 등 떠미는 건가?’라는
위험한 생각과 충동에 시달렸다.
삶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마다
업무용으로 쓰던 핸드폰을 뒤지고, usb를 뒤지고,
외장하드를 샅샅이 뒤졌다.
증거로 작은 것 하나라도 더 제출하고 싶어서!
무려 두 달간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각종 자료를 정리
하고, 주석을 달아 설명하고, 시간 순서에 따라
보기 좋게 정리해 최종 자료를 만들었다.
다니고 있는 병원은 물론, 상담센터에서 받은 심리
검사 결과, 지역 정신건강사업에서 고 위험군으로
분류된 내역, 그리고 건강보험공단에서 무려 10년
치의 의료기록을 준비했다.
이 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양의 자료를 준비해
내 우울증이 ‘공무(유치원)’수행으로 인해 발병하고
악화되었다는 것을 증빙하기 위해 살았다.
나는 일하다가,
그저 충실하게 교육공무원으로서 직무를 수행했고,
성실한 교사가 된 대가로 우울증을 얻었다고!
내 우울증은 내가 나약한 탓이 아니라, 공무수행이
너무했기 때문이라고!
온몸에 힘을 꽉 주고 자료를 업로드해 신청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3개월이 걸렸다.
정말 다행이고 운 좋게 한 번에 승인이 결정되었다.
이제 내 우울증은 내가 나약한 탓이 아니라
공무수행 중 발생한 사고로 인해 발병한 질병으로
인정받았다.
당연히 그 무엇으로도 정신질환자로 살아야 하는
내 미래를 완전하게 보상해 줄 수는 없지만,
당장의 생계와 의료비 및 심리치료비를 국가로부터
지원받으며 휴직을 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재해 보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병이 내 탓이 아니라는 것.
공무상 재해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는 승인 결과가
치료와 요양에 가장 큰 도움이 된다.
개인의 잘못으로 병이 발생했다는 죄책감을 한결
덜어 주기 때문이다.
공무 중 발생한 일로 부상을 또는 질병을 얻거나
사망한 경우, 공무상 재해 승인은 아주 중요하다.
내가 공무상 재해를 입은 ‘공상공무원’으로 승인
되었다는 그 사실, 그 자체!
공식적인 ‘공직의 피해자‘로 인정받는 것!
승인 자체가 가장 큰 위로이자 치료가 된다.
유급휴직의 형태로 지급되는 보상금보다도 훨씬!
나는 공무상 재해를 입은 ‘공상공무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