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
서이초등학교 선생님의 교실 자살이라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후,
감사하게도 주변에서 많은 걱정의 메시지를 받았다.
내 공무상 휴직 사유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상황이 너무 비슷한 탓에 걱정을 한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정말 괜찮고 씩씩했다.
슬프고 분노하고 애통했지만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사건 이후 시간이 몇 주 흘렀지만,
여전히 머릿속엔 기사를 처음 본 순간이 남아있다.
잊고 있던 유치원에서의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서이초 사건 이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하지만 쇄골 아래에 돌덩이가 얹힌 느낌이 든다.
뇌의 감정을 느끼는 부분이 고장 난 걸까?
아니면 너무 슬플까 봐 잠시 기능을 하지 않는 걸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소름 돋을 만큼 이성적이다.
수면장애는 더욱 심해졌다.
열심히 활동하는 듯해도 하루의 반은 누워있는데,
눈을 뜬 채 그 긴 시간을 누워있는다.
천장을 보면서, 멍하니,
역시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이쯤 되면 다 울고 털어내고 싶은데 뇌는 멈춘 기분
안 그래도 짧은 수면 지속시간은 더욱 짧아져서
약을 복용하지만 최대 수면 지속 시간은 3시간이다.
길게 자야 3시간, 하루종일 누워 있어도 피곤하다.
최근 운동을 많이 하고 운동한 만큼 부지런히 먹어
체중 증량에 성공했지만 다시 입맛을 잃었다.
이건 더위를 먹은 걸까, 충격을 먹은 걸까?
다시 요거트, 연두부, 바나나를 으깨 먹던 시절로
돌아왔다. 물론 외출이 있으면 외식이 가능하지만
소화시키는 게 참 괴롭다.
무엇보다 무력감이 너무 크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사들의 미투가 끊이지 않고
나 역시도 여러 건의 사례 제보를 했다.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인터뷰 제안을 받기도 했다.
물론 다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
교직의 피해자 경력 n년차,
이제는 무력해도 할 말은 해야 나중에 덜 억울하단
사실을 생각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못 먹고 못 자는 와중에
단백질 음료와 포도당 캔디를 깨 먹고 무더위 속에
교육권 보장 집회도 열심히 다니고 있다.
원래도 약한 면역력은 깨졌고 피부발진이 올라온다.
생리주기도 깨졌고 생리통이 심해졌다.
면역력의 직격탄을 받는 구내염과 질염은 기본.
항상 몸의 어딘가가 불편한 삶을 살고 있지만,
요즘은 꽤 불편한 삶이다.
이게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인 걸까.
나 분명 몸이 불편한 상황에 나름 적응했는데,
기껏 적응시켜 놨더니만 훨씬 더 불편해져 버렸다.
이 와중에 감정은 없다.
더 정확히는 아무 생각이 없다. 뇌가 멈춘 것 같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도 괜찮지 않다.
힘내란 말도 듣고 싶지 않다.
‘힘낼 수 있었으면 진작 냈지’라는 생각뿐이다.
내가 굉장히 이상해졌다.
또 고장 났구나.
제일 별로인 건,
충격으로 고통받는 교사가
생각보다 많을 게 틀림없다는 점이다.
왜 교육을 했을 뿐인데 PTSD에 시달려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