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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Aug 07. 2023

2년째 우울증

이 정도면 익숙할 법도 한데,

이젠 방황이라는 단어보다는

안정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다.

그렇다고 누가 정해놓은 것도 아니고

정해진 대로 사는 나도 아니지만,

이 사회에 속한 개인으로서 전혀 모른척하긴 어렵다


우울증 진단 2년째

이 정도면 좀 괜찮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그저 우울한 나를 ‘조금’ 다룰 수 있게 되었을 뿐.




거의 일주일에 하루이틀을 빼고 매일 하던 운동을

이번에는 6일이나 쉬었다.

명목 상으로는 ‘발레 학원이 휴가다.’

‘생리와 생리통으로 수영은 할 수 없다.’는 이유지만

내가 요즘 꽤 우울한 탓도 있었다.


냉정하게 보면, 얼마든지 집 안에서도 운동을 할 수

있었는데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누워 있었고, 대부분의 시간은 약과 잠에 취한 채

의식이 반쯤만 들어 있는 상태였다.

제대로 쉰 것도 아니고 제대로 아픈 것도 아니었다.

이게 바로 내가 느끼는 ’ 우울하다 ‘의 상태다.




쉴 거면 푹 쉬어버리지,

아플 거면 확 아프고 나아 버리지,

우울증 환자의 고통은 일반적인 상식의 범주로 쉽게

떠올릴 수 없어 더 우울하다.


미친 듯 운동을 하는 것은 우울한 시간을 회피하기

위함이다. 우울과 무기력함에 빠져있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운동이었다.

그렇게 학창 시절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

수학보다 ‘체육’이었던 내가 운동 마니아가 되었다.

이 힘든 하루를 어떻게든 살아내 보겠다고!





이제는 내가 내 몸 상태를 어느 정도 알고

적당히 다룰 수 있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부족하다.

며칠 전에는 평소처럼 주 1회 러닝을 하고 집에 오는

길에 저혈압 쇼크가 왔다.

다행히 함께 있던 친구가 살뜰히 보살펴주어 안정을

되찾고 귀가했지만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이제 이 아픈 몸을 데리고 살기에 숙달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직 부족했던 것이다.

아마 한참을 더 아파보고, 아픈 몸으로 살아보고,

하고 싶은 것과 몸 상태 사이에서 타협을 해야겠지.


최근 읽은 ‘돌봄과 작업’이라는 책에서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 많을 것을 포기하고 ‘타협’

하며 살아가는 어머니들의 고백을 인상 깊게 읽었다.


어쩌면 나는

내가 아픈 나를 양육하고 돌보는 셈이다.

아픈 몸과 마음이 아픔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내 개인적인 소망과 욕심을 ‘타협’하고 살아가는 것!





2년 정도 우울증을 앓으면 괜찮을 줄 알았다.

약만 잘 복용하면 어렵지 않게 일상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교사의 역할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두 다 오만한 생각이었다.

우울증은 날 성숙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확실하게 내 몸과 마음을 망가뜨렸다.

고작 2년 임금노동 안 하는 걸로는 눈에 띄는 차도가

보이지 않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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