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모습도 다양하답니다.
나는 갓생을 살고 있다.
운동도 여러 가지 하고 매일 운동을 하러 간다.
독서와 글쓰기도 열심이다.
남는 자투리 시간에는 무조건 책을 본다.
그리고 최근 몇 달 동안은
5년 동안 취미로 해오던 꽃꽂이 국가기술자격증
취득을 위해 화훼장식기능사 실기 연습에 열중이다.
나도 가끔 나의 모습에 속을 때가 있다.
이렇게 부지런함 그 자체, 갓생을 살고 있는데
내가 정말 중증 우울증 환자가 맞는지 말이다.
가끔 깜빡 속을 뻔 하지만, 틀림없이 환자가 맞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을 해내는 게 벅차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왜
“저렇게 하고 싶은 것 다 하는데 좋아 보이네!!”
“무슨 우울증 환자가 저렇게 하는 게 많아!!”
라는 주변의 눈초리를 받고, 스스로를 의심하면서
이렇게 많은 일을 벌이고 사는 걸까?
그저께는 몸이 정말 힘들었는지,
하루 종일 누워서 잠만 잤다.
질 좋은 수면이 아니었기에 반쯤 잠든 상태로
이런 저런 잡생각을 하며 보냈다.
점점 더 우울해졌다.
점점 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화장실 한번, 물 한잔 마시러 몸을 일으키는 것이
마치 한라산 등반길을 나서는 것처럼 어려웠다.
우울증의 스테레오 증상, 무기력함이 찾아왔다.
적극적으로 죽고 싶지는 않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인생이 끝난다고 해도 조금도 아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우울증이 위험한 이유, 소극적 자살사고가 찾아왔다.
울리는 카톡 알림, 다이렉트 메시지 신호가
눈치 없게 느껴졌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에 대한
예의고 뭐고 그냥 핸드폰이 꼴도 보기 싫었다.
그렇게 며칠간 메시지 답장을 모두 하지 않았다.
우울증 환자가 스스로를 고립에 빠지게 하도록,
사회적 의지가 상실되었다.
나는 여전히 심각한 우울증 환자다.
스스로에게 ‘심각하다’는 극단적인 표현을 붙이는
이유는 나 자신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아무리 우울증이라 해도 적어도
일상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고!
세상을 등지는 건 내 고통을 소중한 사람들에게
배로 돌려줘버리는 가혹한 것이라고!
사람 사는 세상이 아무리 꼴 보기 싫어도 결국 내가
살아가야 하는 세상은 이런 곳이라고!
그래서 오늘도 오늘의 할 일을 꽉꽉 채운다.
우울이라는 블랙홀에 빠지지 않게!
나는 비록 우울 블랙홀에 발을 담그고 있지만
절대 결코 온몸이 빠져버리지는 않겠다는 의지다.
오늘은 3일 남은 화훼장식기능사 실기 시험을 위해
첫차를 타고 꽃시장을 다녀왔다.
출근 시간 지하철을 타지 못하는 상태라
나름 용기를 내서 탄 첫차였고, 첫차 답게 출근 시간
처럼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심박수는 100을 넘고 가짜 숨막힘에 고통스러웠다.
아직 나는 많이 심각한 환자구나.
모든 게 당연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긴 아직이구나.
또 한 번 뼈저리게 느꼈다.
아무래도 나는 계속 갓생을 살아야 할 것 같다.
우울해질 틈을 주지 않게,
가끔 힘들어 주저앉아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나만의 도전을 이어나가고
남는 시간에도 틈새 속으로 무기력이 스며들지 않게
책과 글에 시간을 쏟아야지.
세상 이렇게 부지런할 수 없는 갓생같아 보이지만
이게 내가 우울증을 앓는 방식이다.
때로는 갓생의 혹독한 스케줄에 내가 나를 학대하는
것 같기도 해서 의문이 들지만,
힘들게 버텨가며 바쁜 삶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무기력 블랙홀로 빠져드는 게 왠지 더 기분 나쁘다.
무기력에 적셔진 몸과 마음 상태는 정말 최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