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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Jul 27. 2023

위태로운 교직, 벼랑 끝 유치원

유아교육은 존재할 수 있을까

서이초 교사의 교실 자살 참사를 도화선으로,

교사들이 하나 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학교의 현실에 대해, 교사의 교권에 대해

누군가 희생되자 사회의 관심이 교사에게로 향했다.


이 와중에 유치원은 교권과는 별개로 벼랑 끝이다.

우리는 교권 관련 PTSD에 시달리면서도

유아교육의 존재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다.




최근 sns밈으로 교권침해 빙고를 해본 적이 있다.

무려 7빙고!

결과는 충격적.

한 칸 빼고 다 채우는 바람에 7 빙고가 나왔다.

지인, 친척을 동원해 교실에 난입한 적은 없지만,

학부모님과 조부모님이 유치원에 찾아왔다면

반쯤은 해당되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슬픈 사실은,

교권침해에 매우 민감한 편인 나도

저 빙고의 내용 대부분이 교권침해라고 인식한 적

없다는 것이다.

빙고의 말들을 듣고 나면 힘도 쭉 빠지고, 머릿속이

찢어지는 것처럼 편두통이 오곤 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라는 몸의 외침이었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정도는 일상이었으니까.





지금 우리 학교는, 지금 우리 사회는

교권에 관심을 쫑긋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이 와중에 조용히 무섭게 진행되는 유보통합

이번 주에는 영유아보육법과 유아교육법 통합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몹시 불안하다.


유아교육법은 교육기본법에 근거해 유치원이라는

만 3-5세 유아의 학교를 위한 법률이다.

그런 유아교육법이 ‘보육법’과 통합을 논의하다니

정녕 유아교육은 교육과 학교의 범위에서 이탈되는

것일까?


가장 슬픈 것은 이 현실을 눈뜨고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나에게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

그리고 가진 최소한의 힘마저도 교권 PTSD로 인해

위태롭다는 것.






유보통합을 막거나 교육적 방향으로 추진되도록

힘을 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기 위해 각종 토론회에서 유치원교사의 목소리를

내어 왔다.

토론회 한번 다녀오고, 온갖 관리부처에 인상을

남기며 소위 찍힐(?) 때마다 그래도 내 몫은 했다는

후련함과 함께 이게 무슨 소용일까 하는 무력감에

한참을 고생하곤 했다.



매번 무력감에 휩싸여도 이겨냈지만,

이번에는 무게감이 다르다

서이초 교사가 겪은 일은 내 경험과 몹시 흡사해서

역대급의 외상 후 스트레스가 찾아왔다.

당분간은 내 몸과 마음을 먼저 보살펴야지 싶다.


하지만 그 와중에 매우 불안하다

유치원이 정말 벼랑 끝인 것 같아서,

벼랑 끝에 처했는데 이제 나는 그나마 가지고 있던

패기조차 잃었다는 것. 절망적이다.


그래도 일단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로만 관심을

가지고 내 몸과 마음을 돌보려 한다.

이제 여름방학이니 잠시 선생님들께 맡겨두어야지.

우리 유아 선생님들은 위대하니까.

이 벼랑 끝에서도 믿을 구석은 유아교사들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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