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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Sep 15. 2023

엄마가 교사 그만두라고 말했다

인생 첫 개입

우리 부모님은 대한민국 부모님의 전형적인 모습과

거리가 멀다.

일명 ‘자유책임주의’

우리 남매는 학창 시절 내내 공부 압박을 받은 적도,

대학 생활 내내 취업 계획을 답할 필요도 없었다.

부모님은 나의 선택이라면 ‘그래 그렇구나’하셨고,

대신 선택으로 인한 과정과 결과를 감당하는 걸

오롯이 내가 책임지면 되었다.




그랬던 우리 엄마가 최근에 진지하게 내게 말했다.

복직할 생각이니?
안 했으면 좋겠어. 교사 하지 마.

일단 복직은 내 의사와 관계없이 건강이 회복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근무가 가능할 만큼’ 회복되어야 하고,

근무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건강상태가 된다는

의사의 진단서도 필요하다.


내 의사 선생님 역시 복직을 위한 진단서를 주시면,

‘근무가 가능할 만큼의 건강 수준‘을 증빙하게 되니

쉽게 나를 복직시켜 줄 것 같지 않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래서 복직은 언제 해?”라고

묻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다.

아무도 모르니까, 나도 모르니까





그래서 나는 복직을 하고 싶은가?라고 묻는다면

그 또한 쉽게 대답할 수 없다.

건강이 회복되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유치원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다시 아프게 될 테니까.


그렇다고 복직을 절대 안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나도 어렵사리 유아학교 임용고사에 합격했고,

근무해 본 기관은 단 1곳이기 때문에

다른 유치원에서도 근무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물론 기관이 달라진대도 크게 다른 건 없겠지만.

일단 해보고, 직접 느껴야 직성이 풀리는

내 피곤한 성격 탓이다.


그래서 사실 벌써 고민할 필요 없는 일이지만 항상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나는 과연 유치원으로 돌아갈 것인가?





이 고민을 머릿속에 계속 담아둔다는 걸 눈치챘는지

얼마 전 엄마가 나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복직할 생각 하지 마.
교사 안 해도 잘 살 수 있어. 교사하지 마


조금, 아니 사실 많이 놀랐다.

30년을 부모님과 살아오며 이렇게 단호한 모습은

처음 봤으니까.

그것도 ‘내’ 진로에 관한 문제에 ‘내가 아닌’ 가족이

단호하게 의견을 말하다니.

우리 집 문화에서는 혁명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덧붙이셨다.

실습생 시절부터 교사를 쉬고 있는 지금까지,

사실은 제발 교사하지 말라고 말리고 싶었다고.

퇴근 후 매일 초점 없는 동공과 영혼 없는 표정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며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나를 가장 잘 아는 엄마가 그렇게 말하니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어쩌면 복직을 꿈꾸는 것은 두려움이었을지 모른다.

아무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새로운 미래를 향해

걸어가기 두려워 익숙한 일의 복귀를 생각한 거다.

그렇게 괴로워해 놓고,

그렇게 서러워해 놓고,

그렇게 떠나고 싶었는데 말이다.



엄마의 말에 다시 한번 중심을 되찾는다.

나는 교사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


뭐라도 해보다 보면 길이 열리겠지,


정해진 길로 가야 하나? 내가 가면 길이지.


나는 언제나 최고보다는 최초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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