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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Sep 16. 2023

원장님, 제가 말썽 피웠나요?

아무에게나 말 잘 듣고 싶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이 바닥 돌아가는 생태계를 파악했을 때,

그때부터 관리자의 말을 잘 듣는 교사는 아니었다.

물론 원장, 원감님은 직접 말하시지 않았다.

끝나지 않는 회의와 은근한 압박으로 말했을 뿐,


다 알아들었지만 모른척했다.

내 의견을 말하고, 겉은 웃고 있지만 관리자님들과

나는 서로를 향해 날카로움을 겨누고 있었다.


결국 찍히고, 소문이 났다




관내에서 관리자들 사이에 나는

아~ **유치원 말썽 많은 교사?


라고 불린다는 말을 들었다.

말썽쟁이라니.......

일단 뭐가 말썽인지 이해가 안 되고,  

제 자식에게나 붙일 법한 ’ 말썽‘이라는 단어를

교사에게 붙였다는 게,

공립유치원 관리자들이 교사를 얼마나 손바닥 안의

존재로 생각하는지 단박에 느낌이 왔다.


관리자들에게 교사는 그저 ‘잘 다뤄야 할 존재’인

것일까? 교사는 유치원의 교육을 쥐고있는 핵심인

‘살아있는 교육과정’인데 하녀를 대하는 기분이다.


나는 교사가 되고 싶었지,
**유치원에 취업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다.
갈고닦은 유아교육 전문성을 내 교실 안에서
우리 반 아이들에게 펼치고 싶었지,
교육이 아닌 ‘유치원 놀이’ 속 배역이 선생님인
연기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교육 전문가로 존중받으며 연구하고 싶었지,
관리자에게 교무실 물품을 검사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교사로서 할 책무가 산더미인데

다른 역할을 요구할 때면 늘 반론을 제기하곤 했다.

나는 원장님의 유치원 놀이 세상에 취업한 게

아니니까.

관리자와 교사의 역할은 엄연히 다르고 각자의

역할을 책임감 있게 수행할 때 공동체는 발전하니까.




나에게 ‘교사’라는 정체성은 미련할 만큼 중요했다.

그렇게 관리자들과 나는 조금씩 어긋나더니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유아교육 선후배의 관계는 절대 아닌 사이.

그리고 나는 ‘말썽 많은 교사’로 소문이 났다.

대놓고 이 바닥 소문 빠르다며 압박을 주기도 했다.


소문 이야기로 압박을 주실 때마다.

저는 소문 무섭지 않아요.
저랑 일주일만 일 해보면 마음이 달라질 텐데,
그럼 소문낸 사람이 이상해지겠죠?

라고 맹랑하게 대들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예의는

없지만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난 똑같이 말할 거다.

누구보다 교사직에 대한 사명이 진심이고,

책잡히지 않기 위해 업무도 빈틈없이 쳐냈다.

그런 내게 관리자들은 아무 답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결국 날 타 죽게 하는 행동이었다.

물론 난 내 말썽쟁이 교사생활에 후회하지 않고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말을 잘 듣는 성격은 못 된다.

어느 정도 예상된 결말이었다.


결국 나는 많이 아프고, 과도하게 긴장을 하며 지낸

 탓에 유치원에서의 시간이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리고 우리의 관리자님은 잘 지내신다.






아마 길에서라도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면,

우리는 가식으로라도 웃으며 인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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