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비 물어내는 유치원교사

말도 안 되는 혁신 갑질

by 해봄

세종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립유치원의 비중이 공립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물론 올바른 교육적 가치관으로 경영되는 유치원도 드물게 있지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사업'도 사립유치원이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유아들이 다닌다 해도 과언이 아닌 사립 유치원에서,

우리 아이의 선생님은 어떤 일을 겪고 계실까?



며칠 전 사립유치원에 근무하는 친구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사립유치원의 고충은 나도 경험해 보았고, 숨쉬듯이 들려오는 내용이라 별 생각 없이 카톡을 눌렀는데


친구의 카톡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해봄아, 우리 반 티비가 망가졌는데 내가 수리비를 내야 하는 것 같아.

????????!!??!!!!!!??!!?!?????!!!????뭐라구????!!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싶어서

그 충격에 한동안 읽고도 답장을 하지 못했다.


겨우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어떻게 된 일인지 친구에게 물어보니


윗분께서 아이들에게 학습지를 시키라 하셔서,

칠판에 학습지를 잘 보이게 붙여두고 아이들의 학습지도를 하던 중,

칠판을 한 손으로 옮기다 칠판이 쓰러졌다.

그 칠판은 그대로 티비에 부딪히고

그렇게 티비 액정이 고장나게 된 것이었다.



나는 이 사건의 전말을 듣고 이런 생각을 했다.

1. 교사가 고의로 티비를 망가뜨린게 아니다
2. 교육활동 중 윗분이 지시한 행위를 하던 중에 일어난 사고일 뿐이다
3. 여러 아이들이 학습지를 들고 와 사방에서 선생님께 말을 걸었을게 틀림없는데.....! 그 정신없는 와중에 아이들과 상호작용하며 한 손으로는 칠판을 옮겼다는게 안타까웠다(상황이 눈에 훤하다)
4. 그 무거운 칠판이 쓰러졌다면 아이들과 교사의 안전을 먼저 확인해야 하는게 관리자의 역할이며 그릇이 아닌가?

그런데 이 사건의 모든 전말을 모두 전해 들은 중간관리자는 가장 먼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거 선생님한테 물어내라고 할 수도 있어



그 말이 전해진 이후

해당 교사에게 직접 수리기사를 부르도록 하고,

수리비는 40만원가량이 발생했다.

중간관리자는 '선생님이 반쯤 부담해야 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은근히 전달했다.


안그래도 박봉으로 유명한 사립유치원 교사에게,

교육활동 중 발생한 일로 파손된 유치원 기물에 대한 수리비를 교사 개인에게 요구한다는게 나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 교사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저 열심히 시킨 대로 교육활동을 한 죄밖에 없다


이후 교사는 관리자를 만났고,

관리자는 교사에게,

“원생이 적어서 경비처리가 어려워서..나도 내 개인카드로 결제했어. 그리고 이런거 무상으로 수리해주면 선례가 남을 수 있으니 섭섭하더라도 선생님이 부담할 수 있는 금액을 생각해봐”

사립에 오랜 시간 길들여진 순진한 교사가 반 정도를 이야기하니,
“아유 반이면 이십만원인데 그정도가 얼마나 큰데~ 십만원도 큰데 무슨! 그러지말고 차분히 잘 생각해봐." 라고 답변하고는

이후에 선생님의 의견을 결국 묻지 않고,
중간관리자를 통해 영수증을 보냈다고 한다.
결국 교사는 수리비의 반을 개인부담했다.

네? 원생이 적어 경비처리가 어렵다구요?

교육청에서 지원받는 유아학비와 학부모님이 부담하시는 원비를 합하면 금액이 꽤 될 텐데요?

경비처리가 어렵다면 이 사업체의 주인인 관리자께서 개인 부담하시는게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리고 무상으로 수리해주면 선례가 남는다구요?

대체 무슨 선례일까.

앞으로도 유치원에서 교육활동 중 발생된 기물파손 처리비용은 모두 교사가 부담하는게 맞다는 가스라이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사립유치원은 말 그대로 사립.

'기관장이 소유하고 있는 유치원이다'

교육기관인 동시에 개인의 사유재산인 것이다.

어떤 사업체에서 고용인에게, 그것도 정당한 교육활동중 발생한 기물파손에 대한 물질적 책임을 묻는가?


난 이건 절대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유치원 문화에서는 이 상황에서 내가 왜 수리비를 내야 하는지 반문하는 교사가 있다면, 그 교사가 집단 내에서 이상한 사람이 된다.


하다못해, 음식점에서 손님이 실수로 컵을 떨어뜨려 깨트려도 파손된 컵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세상이다.


유치원이, 사립유치원이 이렇게 비상식적이다.

(물론 공립유치원도 '비상식'면에선 만만치 않다)

시대를 역행하는,

2022년이라는게 믿기지 않을 만큼,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사립유치원이다.


유치원 교사들이 이렇게 고된 곳에서 길들임 당하며 마치 본인이 죄인이 된 양 살아내고 있다.


그 와중에 아이들을 예뻐하는 마음 하나로 '버텨내며' 우리 아이를 가르치는 상황이다.


부디 유치원교사를 아이돌보미나 서비스를 요구해야할 대상이 아닌,

말도 안되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만은 최선인 사람들이라는 걸
세상이 알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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