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 있으면 뭐해! 펼칠 수 없잖아
나는 꽃과 꽃꽂이를 굉장히 사랑한다.
단순히 그 기술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꽃과 소재를 느끼고, 만지고, 정성껏 다듬고
고민을 거듭해 한 송이 한 송이 정성을 다해 배치해 나만의 디자인을 만들어 나가는 것,
그리고 그 작품을 완성한 뒤에도
틈이 날 때마다 들여다보고,
애정 가득한 손길로 관리하게 되고,
시들어 가는 순간마저 눈에 담고 싶은 마음이 참 좋다.
꽃은 나에게 평화이고, 행복이다.
이 벅찬 경험을 꼭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곧 어버이날이 다가오는 시점이었다.
꽃 수업을 제안하기에 딱 좋은 타이밍!
동연령 선생님들께 생화 꽃바구니 만들기를 해 보는 것을 제안했다.
관리자께서 분명 강사 부르는 것을 싫어하실 테니
(강사를 부른다는 것은 교사가 하는 일이 없고, 곧 자질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신다. 유치원 교사라고 만능은 아니고 그 분야의 전문가는 따로 있는 건데!)
이번에는 내가 일일 강사가 되어 주겠다고,
어디 가서 감히 플로리스트라는 명함은 못 내밀어도, 적어도 아이들 꽃바구니 수업 정도는 가능하다며
동료들에게 어필했고, 흔쾌히 승낙해주셨다!
(이래서 교사에겐 취미생활도 가르침의 원천이 된다)
이제 남은 것은 그분 설득하기.
난 아직도 왜 교사가 교육활동을 하는데,
교육활동 결과물을 가정에 보내는 활동이라면 왜 그분께 허. 가. 를 받아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교사의 전문성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미로밖에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가정에 보내는 건 다 검사 맡아! 교사 네가 라떼의
기준에 제대로 했는지 봐야겠으니까!" 이런 느낌.
어쨌든 난 원예 수업에 진심이었고,
우리 아이들과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수업이었다.
온갖 꽃꽂이 키트 납품 업체를 찾아 단가를 알아보고,
제 날짜에 납품 가능한지(어버이날 시즌은 경쟁이 치열하다)
꽃은 주로 어떤 소재를 사용하는지,
아이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적당히 단단하고 매끈한 가지의 소재인지,
수명이 비교적 긴 소재인지 꼼꼼히 따져 적당한 업체와 이야기가 완료되었다.
업체에서 제시한 가격은 만 오천 원.
어버이날 시즌이라 꽃시장 단가가 오른 상태이고,
시장에서 산 꽃을 다 다듬어 소분해 보내주시고,
플로럴 폼 또한 바구니에 맞는 크기로 소분해서 보내주신다고 하셨다.
원재료 가격, 손질 가격, 배송비를 고려했을 때 난 꽤 괜찮은 가격이라고 생각했다.
수령한 뒤 교사는 딱 수업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뒷정리가 어마어마할 테지만)
그리고는 바로 그분을 찾아갔다.
말하지 않고 재료 품의만 달랑 올려놓으면 아무 말 없이 결재를 안 하고 버티실게 뻔하기에.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생화라니, 특별할 것 같아요.
그런데 비싼 것 같아 고민이 되네요.
아니 아이들 꽃바구니에 만 오천 원이 비싸다니?
꽃바구니 안 사본 지 오래되셨구나... 이해를 하며
생화 기준에 절대 단가가 비싼 게 아님을 어필했고
고민 끝에 구두 승낙하셨다.
나는 솔직히 내 교육활동에 필요한 수업자료를,
명백히 수업자료 구매를 위해 책정된 예산 항목에서 구매하는데(심지어 예산은 아주 넉넉히 남아있었다)
대체 왜 내 수업자료를 구두로 검토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엄연히 말해서 관리자 돈으로 사주는 것도 아니면서.
말 그대로 관리자에 의한 교권침해
수업의 자율성을 뺏긴 교사,
자유롭게 우리 반 아이들에게 적당한 교육을 실시할 권리를 빼앗긴 교사
배움을 경험할 기회를 빼앗긴 아이들이다.
속전속결로 업체에 필요한 서류들을 받아 재료를 구매하기 위한 품의를 올렸다.
그 런 데
이틀이 지나도 관리자 단계에서 결재가 나지 않는 것이다!
나도 솔직히 기분이 나빴다.
내 돈과 시간을 들여 취미생활 한 걸 아이들 수업에 전문성으로 적용하겠다는데!
내가 재능과 기술이 있어서 전문 강사 부르지 않고 직접 힘든데도 불구하고 3학급을 모두 수업하겠다는데!
수업자료를 위한 예산은 넘쳐나는 상황인데!
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인 건지,
불만이 있으면 연락을 하던지.
결재 거부 사유를 적어 반려처리를 하던지,
마치 안하무인 공주님처럼 아무 말 없이 결재를 안 해주고 진행이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
결국엔 내가 찾아오도록 버티는 이 의도가 너무 뻔했다.
교사를 길들이겠다는, 교사는 관리자 허락 없이 자유롭게 수업자료조차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교사 너는 내 아랫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히 하겠다는 의도로 느껴졌다.
그렇다. 나는 관리자가 '관리'하는 대상인 공립유치원이라는 교육기관의 소속 교사이다.
하지만 아무리 관리자라고 해도 교사의 교육활동에 제지를 가할 자격은 없다.
우리 반 아이들을 교육할 권리는 담임교사의 고유 권한이고, 아무리 관리자라 하더라도 수업에 교사의 허락 없이 관여하는 것은 교권침해이다.
이는 곧 아이들의 배울 권리, 즉 학습권까지 침해하는 행동이다.
나는 바로 그분을 찾아가 나름 정중히 여쭤보았다.
교사: 원예활동 자료 결재가 안되어 있던데 혹시 이유가 있으실까요?
관리자: 아 선생님 "아무리 생각해도 활동 하나에 만 오천 원은 비싼 것 같아"
교사: 어버이날을 맞이해 평소 경험하기 어려운 특별한 체험 활동으로 계획했고,
저도 원예 분야에서만큼은 자신이 있어요.
지금 예산도 많이 있는 상황인데 원예활동 자료가 비싸다고 여기시면 이번 달 다른 활동 자료비를 줄이겠습니다.
그리고 절대 이 가격으로 이 정도 수준의 원예활동은 어렵다는 점은 기억해주세요.
관리자: 아니, 선생님, 내가 봤을 땐 아니야. 품의 회수하세요.
교사: 저희는 이 활동을 기대하고 있고, 준비도 다 되어있는데 관리자님께서 못하게 하신 거니 제가 스스로 회수 못하겠습니다. 반려해주세요.
관리자: (어이없다는 표정)그래서 회수 못하신다고요?
교사: 네. 사유 적어서 반려해주세요. 그리고 저희는 덕분에 특별한 원예체험은 못하고 매년 해왔던 어버이날 카드 만들기로 대체하겠습니다.
그리고 적혀온 반려 사유는
'교육활동 자료 선정 부적절'이었다.
본인 마음에 안 든 것이면서 끝까지 교사 탓.
대체 난 무얼 잘못한 걸까
감히 관리자님이 별로라는데 되바라지게 내가 하고 싶은 수업을 주장한 것?
내 돈과 시간을 들인 취미 생활을 교육자원 삼아 수업하겠다는 것?
감히 그분께서 품의 회수하라고 하시는데, 당당히 반려해달라고 요청한 것?
이 중에서도, 이 외의 이유라도 절대 납득할 수 없다.
그 사건 이후 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공립유치원에서도, 공교육 기관에서도, 관리자의 사유재산이 아닌 국가의 소유인 교육기관에서도,
유치원 교사에게 수업의 자율성(권리)은
없는 것이구나.
관리자 말이 법인 것처럼 따라야 하고,
교사가 아무리 자기 계발로 전문성을 늘린다 한들 전혀 소용없겠구나.
무기력함과 허무함이 몰려왔다.
난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교육을 하고 싶어 그 힘든 임용고시 과정을 거쳐 공립유치원에 왔는데,
내가 우리 반 아이들을 위해 자율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교육은 없었다.
우리 아이들도 배울 기회, 학습할 권리를 빼앗겼다.
모든 공립유치원이 이런 건 아닐 거라고 믿지만(제발)
이게 공교육 기관으로서 공립유치원의 현실이었다.